■ 서문
바다는 항상 아름답다. 푸르기도 하고 붉기도 하고, 검기도 하고 희기도 하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변화무상한 바다는 신기루처럼 환상적이다. 흉년에도 부지런한 사람은 밥을 굶 지 않는다고 했다. 먼동이 틀 때면 바다에서 피어오른 물안 개가 구절산 중턱을 휘돌아 감고 구름 위에 드러낸 봉우리가 천상을 거니는 듯 신비감이 엄습하여 온다. 인간이 아직 잠 에서 깨어나지 않는 여명에 바다는 고니, 두루미, 갈매기, 물 오리 등 온갖 철새가 날아와서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난 듯 조 잘거린다. 그때쯤이면 거제 앞 바다에서 밤새 잡은 고깃배가 예일목 을 통하여 당항포로 들어온다. 때를 맞추어 부지런한 장사꾼 들은 새벽에 일어나서 소쿠리, 다라이 물통을 들고 선창가로 모여든다. 고기를 배당받은 장사꾼들은 고기가 상하기 전에 재빨리 농촌을 다니면서 싱싱하고 맛있는 반찬거리를 제공한 다. 어부와 장사꾼과 농민들이 삼위일체가 되어 상부상조하 면서 사는 것이 바닷가였다. 당항포는 진동앞 바다에서 예일 목이란 목을 지나서 강처럼 좁은 수로를 한참 들어오면 당항 포란 포구가 있는데 옛날에는 당목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고성이라고 하면 강원도 고성인 줄 안다. 강원도 고성은 금강산이 있고 설악산이 있고 삼일포가 있고 송강 정철 의 관동별곡으로 유명하여 강원도 고성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경상도에 고성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어 쩌다가 행사 때 사람들을 만나면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다. ‘고성’이라고 하면 “말소리를 들으니 고성 말이 아니 것 같은데.” “경상도 고성이요.” “거기도 고성이 있어요?” “있습니다.” “어디쯤 있어요?” “진주에서 남쪽으로 70리, 마산에서 서쪽으로 80리, 통영 에서 북쪽으로 50리에 있어요.” “아이구, 거기서 서울까지 왔으니 출세했네요.” 결국 끝에 가서는 그런 말을 듣는다. 그래서 대충 진주나 통영, 마산이라고 하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당항포에 공룡 엑스포가 개최 된 뒤로는 “공룡엑스포가 있는 고성입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여기에 여담을 소개한다. 옛날 공화당 때 고성의 어떤 분이 내무부에 근무를 하였는 데 자기 처남이 국회의원을 했다. 퇴직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고향에 가서 군수를 한 번 하고 퇴직하는 것이 소원이어서 처 남한테 사정을 하였더니 처남이 내무부장관한테 부탁을 하여, 하루는 장관실에서 군수발령장을 받으러 오라고 통보가 왔다. 기쁜 마음에 장관실에 올라가서 발령장을 받고 보니 뜻밖에도 강원도 고성군수였다. 고성군수를 시켜달라고 부 탁을 하니 장관은 당연히 강원도 군수인줄 알았던 모양이다. 다시 바꿀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속초에 가서 강원도 고성군 수로 3년을 근무하고 퇴직했다. 고성은 큰 강, 높은 산, 넓은 들도 없고 이름난 명승지나 유서 깊은 문화재도 없고 바닷가이지만 항구도 없다. 거제, 통영, 사천, 진주, 마산, 창원 등은 다 시로 승격되었지만 고 성은 아직도 읍, 면으로 남아 있다. 작가는 당항포를 중심으로 옛날부터 지금까지 실제 있었 던 일, 어른들한테 들은 이야기, 동부 고성의 시대적인 변화 와 농촌의 생활상, 삶에 대한 에피소드 등을 소설을 엮어보 았다. 독자들의 많은 이해 바랍니다.
■ 본문 중에서
*옥천사
산두골댁은 남편이 인민군에 끌러간 뒤 매일 야월삼경 깊은 밤에 물동이를 이고 산속 약물샘터에 가서 물을 길러왔다. 노루가 왜액-, 꿩이 푸드득, 토끼가 후닥닥, 여우가 부스 럭, 사람을 놀래키지만 남편이 살아 돌아오기를 일구월심 기 다리는 신념으로 무서운 것도 모르고 정화수를 떠 와서 칠성 당에 올려놓고 치성을 드렸다. 그해 동지 날 산두골댁은 쌀 두되, 콩 한 되, 깨 한 되, 소지종이 한 묶음, 양초 한 봉지를 이고 옥천사로 갔다. 한겨울이라 봉치고개에서 넘어 오는 세 찬 바람이 겨드랑 밑까지 파고들지만 산두골댁은 추위 따위 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면 소원이 이 루어질 거라는 기대감에 힘든 줄도 몰랐다. 옥천사는 연화산 중턱에 있었다. 지리산에서 떨어져 나온 낙남산맥이 사천 고성 함안 창원을 지나 김해 신어산까지 이 어진다. 연화산은 경남의 명산으로 산세가 수려하고 아름다 워 사시사철 등산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절이 있을 만한 장소가 못될 것 같은데 그 안에 들어가면 새가 알 을 품듯이 아늑하고 옴쏙하여 큰 가람도 거뜬히 품고 있는 명 산이었다. 그래서 옛날부터 옥천사에 불공을 드리면 한 번은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났다. 옥천사는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한 일천오백년 전통으로 인근에 청연암과 백연암을 거느린 대 사찰로 진주 마산까지 그 명성이 나있었다. 봄이면 진달래, 가을이면 단풍이 산야를 이루고 알밤과 도토리, 개암이 지천으로 흩어져서 산짐승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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