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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건너 그곳
최임순
소설
신국판/224쪽
2020년 11월 20일
979-11-5860-906-1(03810)
13,000원

■ 작가의 말


삶이란 무엇인가? 누구나 하는 질문에 유독 지나치게 집착을 하며 살아왔다. 그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하면 당장이라도 잘못될 것처럼 조급하게 굴기도 했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부지런히 알아보았지만 답은 찾아지지 않았다. 여러 분야의 책을 보면서 공부를 하면 알아지는 게 있을 줄 알았다. 훌륭한 선생님들에게 배우면 알아지는 건 줄 알았다. 학과 공부를 하는 학생처럼 지식을 쌓으면 그 질문에 해답을 얻을 줄 알았다. 어느 날, 나는 모르는 게 없어요, 하고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더 이상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던 것이었다. 그것은 그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상대방이 어리둥절해 하다가 나를 경멸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상대가 왜 그러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모르는 게 없다고 말은 했는데 여전히 나는 인생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숙제를 미룬 학생처럼 불편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살았다.
어리석게도 환갑이 넘어서야 비로소 나는 내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전에는 남들이 말하는 세상을 보았다. 과학자들의 원리와 철학자들의 개념, 예술가들의 정신, 사상가들의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머리로 배운 인생이었다. 내 눈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내가 눈을 감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에 좌충우돌하면서 살았다. 착각 속에서 무례하게 굴기도 하고 잘난 척하기도 했다. 적을 친구로, 친구를 적으로 잘못 판단하기도 했다. 적도 친구도 없고 다만 사람이 있었을 뿐인데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무엇에 둘러싸여 눈
을 감긴 채 살았나? 남에게 주워들은 얄팍한 지식을 창과 방패로 삼아 살았던 것 같다. 어쩌면 아이들 앞에서 아는 척해야 했기 때문에 일종의 직업병에 걸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좀 더 일찍 교직을 그만두었어야 했다.
세상을 내 눈으로 볼 수 있기까지 그렇게 긴 수고와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내가 세상을 안다는 게 아니다. 여전히 모르지만, 이제는 삶이 무엇인지 질문을 하지 않는다. 세상을 내 눈으로 보면서 살아갈 뿐이다. 막상 눈을 뜨고 세상을 보니까 어때요? 하고 누가 묻는다면 삶이란 게 별거 아닙니다, 라고 나는 대답할 것이다.
소설 공부는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인생 공부가 다급했기 때문이라고 굳이 변명을 해 본다. 소설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썼다. 그저 내 눈으로 본 세상을 내 입으로 말했다. 이제 와서 보니까 인생이 별거 아닌 것처럼 소설도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아쉬운 게 있다면 젊은 날처럼 날카로운 관찰력이나 풍부한 상상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흐린 눈으로 보고 굳은 혀로 말할 뿐이다. 선명하던 내 얼굴의 윤곽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내 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뭉개진 얼굴처럼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글이다. 그래도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그간 쓰고 정리했던 글들을 묶어 소설집을 내기로 했다.
산다는 게 뭔지 몰라 삶이 끝나는 날까지 불안하고 막막했을 어머니를 뒤늦게 위로하며, 그 어둠을 헤치면서 나를 길러주신 어머니에게 감사드린다.

 

2020년 초가을 최임순

 

 

■ 본문 중에서


- 전화기 속에서

나는 꾸준히 책을 사 모았다. 언어의 한계와 위험성을 어렴풋이 알아챈 뒤에도 책을 사들였다. 책장에 책이 겹겹이 쌓이면 다시 읽을 것 같지 않은 책들을 뽑아내고 그 자리에 새 책을 넣는 작업을 하면서 세월이 흘렀다. 그 방에 누워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긴 소파도 놓아두었는데 일찍 노안이 오면서 그 방 출입이 뜸해졌고, 잡동사니를 하나 둘 들여놓다 보니까 저절로 창고 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수납장에는 일기장들과 버리기 아까운 팸플릿 같은 것들도 넣어두었는데 수납장이 차면서 유리문 너머로 올라온 일기장들도 있었다. 일기 쓰기는 퇴직 무렵부터 중단되었지만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래 오랜 기간 써 왔던 일기장들은 책장 안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주로 감정이 어둡고 머리가 복잡할 때 일기를 썼다. 그래서 우울로 얼룩진 내 일기장은 부정적 감정의 배설소이고 죄책감의 고해소 같은 것이었다. 그 시간의 나로서는 도무지 풀 수 없는 문제에 부딪쳤을 때도 일기를 썼다. 훗날의 나에게 묻기 위해 그 사건을 일기장에 상세히 기록해 두었다. 그런 날의 일기에는 나, 이상하지 않나요? 나, 지금 괜찮은 걸까요? 나,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하는 말이 붙어 있을 것이다.


- 바다 건너 그곳

어른이 되면 확연하게 그 정체를 드러낼 것 같았던 세상은 어린 시절이나 학생 때보다 오히려 더 복잡하고 혼돈스러웠다. 바다 건너 그 먼 곳을 자주 바라보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바다 건너 섬들을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 도시에 부속된 섬은 유인도만 서른 개가 넘었다. 어떤 섬들은 백 번도 더 갔고, 어떤 섬은 수십 번을, 어떤 섬은 한 번 다녀왔다. 배를 타고 섬으로 가는 길은 아웅다웅 복닥거리며 살고 있는 지구를 빠져나가는 일이었다. 거미줄처럼 나를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던 잡다한 번뇌와 망상 같은 것들은 바닷바람이 흩어버렸고, 육지에서는 심각했던 일들이 섬에서는 도무지 별 거 아닌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신기하게도 섬에서는 타인은 물론 나 자신의 누추함과 부끄러움에도 너그러울 수 있었다. 배를 타고 떠나는 탈 일상의 섬 여행이 나를 건강하고 무사하게 일상으로 복귀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것이다.
(…)
조상굿을 끝낸 소래 만신은 쓰러지듯 벽에 기대어 앉았다. 돌아가신 분들의 혼을 맞아들여 우리와 상봉하게 하고 다시 춤을 추어 그들을 돌려보내기를 거듭했던 만신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나는 그 만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도 모르게 자꾸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만신은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면서 웃었다.
“굿 장면을 전부 캠코더에 담았더라면 좋았을 걸, 아깝다.”


- 인어공주

학교에 들어가기 전 새벽하늘에 뜬 달을 보고 왜 그토록 서럽게 울었는지 그 이유를 나는 그때 알았다. 나는 얼른 고개를 떨어뜨렸다. 다시는 밤하늘을 바라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우주의 바닷물에 흡입되어 인어공주처럼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우주에서 내 존재는 물거품 같은 것이었다. 내 머릿속으로는 외로움, 허무 같은 절망적인 낱말들이 헤엄치듯 떠돌았다. 무력감과 공허감 속에서 나는 우울한 사춘기를 보냈다. 고등학교 때는 잠시 밤하늘 우주 공간과 인어공주의 물거품에 대한 생각을 잊고 지냈다. 시험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그것들을 의식의 수면
아래로 밀어뜨렸던 것 같다.

인어공주의 물거품이 내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올라 나를 완전히 지배한 것은 대학 때였다. 매우 불행한 일이었지만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었던 그 시절을 나는 무섭도록 우울하게 보냈고 그 시간의 기억을 한층 더 어둡게 만든 건 내 친구 명희였다.

작가의 말

 

전화기 속에서
바람 부는 날
어머니의 담장
어디로 가는가
바다 건너 그곳
호랑나비
인어공주
우리 마을 전설
나는 없다

최임순

 

인천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외출」이 당선되었다.
36년 동안 인천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글쓰기를 잊고 살다가 은퇴 후
다시 쓰기 시작했다.
2016년 포토 에세이집 『공갈빵』을 발간했다. 2020년 인천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소설집 『바다 건너 그곳』을 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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