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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 후에
조경선
소설
국판/240쪽
2020년 11월 20일
979-11-5860-884-2(03810)
13,000원

■ 작가의 말


여기 나오는 주인공들은 나 자신이며 여러분 자신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서점을 하던 사람, 내 연인이던 남자가 의붓딸의 애인으로 변한 경우, 어머니의 상처 얘기, 성공을 쫓지만 선생님만으로 만족해야 했던 남자이야기, 대학을 나왔으나 본격적으로 IT 시대에 밀려서 허둥대다가 택배 일을 하는 보통의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나름의 꿈과 가치관을 갖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저나 여러분들 역시 변화무쌍한 환경을 살면서 예까지 왔습니다. 이번에 묶은 소설집은 부침이 많았던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글로 그렸습니다. 바람에 털리고 꿈속에서 머뭇대다가 길을 헤매지만 결코 그들 나름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도 입증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입니다.
코로나에 갇히자 일상에 바쁘던 작가들은 이때다 싶었던지 요즘 부쩍 많은 작품집이 제집으로 배달됩니다. 저마다 혼자 잘 논 결과입니다. 저도 5년 만에 3번째 소설집을 내놓습니다. 이번 작품집은 벽을 보고 고민한 세월만큼 자랐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만 글쎄요. 이 작품집이 머잖아서 제게 아쉬운 눈길을 보내면서 떠날 테죠. 석양을 등지고 도시로 가는 자식을 연상시키는 이 장면은 제게 기대와 아쉬움과 불안을 안겨줄 테죠. 어디를 가든지 아들이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잘 살기를 바라는 어미 맘처럼, 이 책도 독자의 사랑 속에 살기를 바랍니다. 더불어서 covid-19로 고통과 번뇌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차분해진 창밖을 보면서
10월에
조경선

 

■ 본문 중에서


- 존 레논, 김시습 되기

나도 탐욕스럽게 사랑했던 때가 있었구나!
월남전에 참가한 기념으로 가져온 것들 중 하나였던 엘피판이 없어졌다고 난리치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래도 내 대학시절이 엘피판을 훔쳐다가 선물할 정도로 뜨거운 때도 있었구나 싶어서 웃음이 났다. 사랑의 노래가 흐르던 그때에는 아버지의 다랑논이 한몫했다. 하지만 몸이 배고픈 지금은 빵이 문제였다.
하란은 그 엘피판을 친구에게 빌려줬다.
“하란아, 너 유학 못 가면 유흥업소에 가서 춤출 거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완준이가 뭐라 했다고?”
“낙타 한 마리 살 돈 마련해서 사막에 가자했지.”
“낙타는 종일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아. 거기다 비라도 와 봐. 눈을 껌뻑이면서 먼 하늘을 향해 제 어미를 부르는 것 같단 말이야.”
- 엄마의 가시
수 년 만에 방문하는 고향인데 빈손으로 갈 수 없었다. 고향사람들 모두가 하나의 정의 벨트였다. 떡 한 개, 부침개 한 장이라도 이웃과 나눴다. 농촌은 나누는 것을 잘해야 평이 좋다.
내가 찾아간 방앗간은 우리 집에서 다섯 정거장 거리에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의 방앗간은 큰 마을에 하나씩 있었다. 명절 때와 자식들 등록금 낼 때에는 방안에 꽁꽁 묶어둔 나락을 찧기 위해서 어머니는 동네 방앗간에 갔다. 나는 지금 불린 찹쌀을 차에 싣고 방앗간에 가는 중이다. 주인은 내가 건넨 불린 쌀을 받아서 사각주둥이에다 주르륵 부었다.
“탈탈, 탈탈…”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나자 방앗간 주인은 기계에서 떨어져 나와 자기 의자로 가서 앉았다.
“요즘은 방앗간 수입이 그전 같지 않죠?”
“내 손으로 직접 하니께 그럭저럭 유지가 되지, 아니면 힘들지요. 내손으로 기계를 수리하고 관리하고, 쌀도 직접 도정하니께 여태 버티지요. 아님 벌세 일 났지요. 뭐, 다 자기 복 탄대로 사는 거지요. 달달달, 이제 정미소 기계도 늙어서 그악스레 소리 질러요. 탈 탈 탈…”


- 사랑한 후에

교회 지붕 위, 하얀 십자가 위에 새 한 마리가 앉아있다. 청색 옷을 곱게 차려입은 동고비다.
“비비비.”
“비비.”
“비비비….”
동고비는 교회 청년들이 암 수 한 쌍을 키우는 중이다. 예배당이 있는 본당보다 조용한 부대 건물 창가에 새집을 매달아 키운다. 동고비는 교회 주위를 날아다니며 논다. 가끔은 깊은 숲속까지 갔다 오기도 한다. 한 달 전에는 동고비가 사는 새장 쪽에다 푸른 챙을 내달았다. 청색 옷은 더 짙게, 흰색으로 치장한 배 부분은 살짝 푸른빛이 도는 동고비, 새들도 오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서 멀리 가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지금 속으로 울고 있다. 우리 집 누렁이도 심상치 않은 주인의 기분을 알아차렸는지 들뜬 다른 개들과는 달리, 주둥이를 제 다리 사이에 박고 내 눈치만 살핀다.
나는 누렁이를 데리고 교회 정문을 나온다. 멀리 고속도로와 연결된 큰 도로가 보인다. 그 도로는 큰 도시와 연결되는 길이다. 먼발치로 보이는 그 도로에 방금 대형 트럭 두 대와 자가용이 지나간다. 목련꽃, 매화, 벚꽃들로 동네가 꽃밭이다. 나는 화창한 이 봄날이 싫다.

작가의 말


존 레논, 김시습 되기
원 나잇 스탠드
엄마의 가시
섹시한 신이라니
사랑한 후에
어둠 속 살쾡이
향숙이, 그녀는 내게떨림이다
연희동의 봄

조경선

 

2004년 문학21 소설 문학상
2012년 아시아 황금사자 문학상
2015년 한국소설 작가상

<창작집>
『글루미 선데이』 시지시출판사
『사막의 환』 도화출판사
『사랑한 후에 』청어출판사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한국문인협회 문학사료발굴위원
국제PEN문학 한국본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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