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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이야기
전민정
시집
국판변형/112쪽
2021년 6월 30일
979-11-5860-341-0
10,000원

■ 시인의 말


반쯤 비어있는 것들로 채워진 저녁
나름 틀을 정해놓고 어루만져 놓은 하루가
가끔은 까닭 없이 서럽다.
더 이상 내려갈 곳 없어 바닥 치고 올라오는 공처럼
길 끝에서 길을 만들다 만 건조한 기운.
0시는 시간의 국경을 넘고
거친 숨들을 동그랗게 버무려
무채색 그림을 그린다.
비틀거리며 거꾸로 붓을 들고 쓰려니
참 고되고 쇠약하다.
내게 말 걸어오는 모든 진실에 소박함을 담아
조심스레 실타래를 푼다.


2021. 봄에
소운 전민정


■ 본문 중에서


**바코드


저녁 무렵이다
장을 보러 나갔다
나란히 누운 고등어
그들에겐 가격표가 없었다

검은 비닐봉지 안으로 들어와
내 것이 되기까지
수없이 뒤적거림 당하며
몇 번의 이력서를 썼을까

해동으로 풀린 빨간 눈의
생선을 들고
해피 포인트에 덧셈을 한다
지금 이 순간 선택되기까지
수없이 이력서를 쓴 나도
어딘가에서 바코드로 찍힐까
얼마의 해피 포인트로 기록될까

집으로 가는 보도블록 위로
나의 바코드가 찍힌다
2 0 6 9 5 1 9



**꽃도둑


오른쪽으로만 감아 돌며 맺힌
콩꼬투리 속 4개의 씨앗
잎 겨드랑 사이에서 형제들은
모두 굵직하게 잘 자라주었다

철없던 시절 동네 꽃이란 꽃은
이름도 모르고 죄다 꺾던 날부터
나는 꽃도둑이 되었다

화병에 물이 마를 때
밤 깊도록 꽃 찾아 맴돌다 돌아온 밤
꽃향기까지 따라와 멀미를 하던 순정

곱기만 한 꽃들의 사연들은 나 몰라라,
야생화가 최고여, 어머닌
은근히 꽃을 꺾어오도록 부추겼다

보잘 것 없는 덩굴나무 가지를 휘어잡고
보랏빛 한 세기를 사신 어머니,
살아계실 동안 꽃도둑은 면할 수 없으리



**절반의 행복


미끄러지듯 집으로 향하는 밤이면
오후를 갉아먹은 불빛이
포장마차 빈틈으로 새어 나온다

가슴팍까지 파고드는 추위와 허기
매달려 있던 그리움조차
대열에 끼어 앉아 자리를 펴고
따끈한 국물 한 사발에
녹아지는 영육이 가볍다

장맛처럼 묵직한 추억을 마시면서
오늘도 채워지지 않은 그 절반을 찾아
겨울 긴 의자에 앉아 미로를 걷는다



**나를 찾아서


조각난 단어들을
여러 개의 이름으로 갈라놓고
아픈 소리로 조율하다보니
반쯤 감긴 쉰 목소리

헐거운 옷을 반쯤 걸친 채
누구도 의식하지 않은
조용한 혁명을 한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나라는 한 권의 책 속에
결박당한 채 꼼짝할 수가 없다

단어들이 몸 안으로 퍼지면
중추신경은 페이지마다 날카로워지고
추스르는 숨소리는 책갈피 속 언어가 된다



**찻잔에 띄우는 고요


아픔을 통해 깊어지는가
온몸 뒤틀며 빼앗긴 수분
명치끝이 아리더니 체기는
물 한 방울 허락하지 않는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마음과 몸속에 쌓였던 적
한 땀씩 질기게 풀어내고
비로소 깨달은 부질없는 집착

허겁지겁 소유했던 탐욕
정신줄 놓으며 떠밀려가던 시간
일엽차 한 잔을 우려낸다
찻잔에 띄우는 고요
비로소 온전해진 마음

맑게 퍼지는 사유의 향기
문 밖에 섰던 마음이 걸어온다

시인의 말


1부
Bar Code — 바코드
An Ashcan — 쓰레기통
Temptation — 유혹
A secret — 비밀
I Get into Debt to Body — 몸 빚
An Ardor of Youth — 청춘
Healing Field(Warm Evening) — 따뜻한 저녁
A Garret — 은밀한 곳
Adoption — 입양
The Day giving an Air to Clothes — 거풍하던 날


2부


세족식
꽃도둑
나는 누구인가요?
손편지
청계천 다리에서
어떤 그림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탑
가야 하는 곳이 어딘들
움직여라
자유롭게 구부린 일상
그림자가 그린 액자
재스민(jasmine)
블루마운틴
단지 세상의 끝


3부


짝짝이로 돌아온 시간
무형의 문자
울타리
0에서 1 사이
절반의 행복
가벼운 추락
내장산
바람의 무늬가 움직인 자리
나에게로 열린 문
꿈밖의 세상으로
부질없는 사랑
오리가족
먼 곳은 항상 마음에서
만주리 벌판
낯선 존재


4부


흰 그늘
바람의 비밀
나를 찾아서
비바체
오디션
초월
누구나 한 번쯤은 섬을 꿈꾼다
가을 벤치
바다 위 하늘길
새집과 내 집
목섬으로 가는 길
누굴 뽑을까
물이 그리는 자리
버리고 사는 것
정토사



5부


마스크
당신은 내게 그런 사람
붉은 미련
숨 고르기
퇴행성
찻잔에 띄우는 고요
임플란트
물방울
나는 광대
단 한 사람
기도
고독의 값
양귀비 꽃
목숨을 연주하며
너는 내 것이다

시평
이향아(호남대학교 명예교수)
이수정(중앙대학교 대학원, 교수)
정재영(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중앙대 예술대학원, 평론가)

소운(素芸) 전민정 시인


서울 퇴계로 출생
전) 현대극단 배우(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사운드 오브 뮤직》(부산 연극영화제 대상), 《그대의 말일 뿐》 외 다수 공연)
현) 뮤지컬 공연과 시낭송 강의, 출연 및 공연

강남구 백일장 장원 2000년
《창조문예》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문인극 운영위원
한국기독시인협회 사무총장 역임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원
한국현대문학작가 회원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회원
한국문학방송작가회 회원
한국예술인 회원
한국낭송문예협회 이사
미당 서정주 시맥회 운영위원
강남문인협회 이사

<저서>
시집 『어찌 그대를 꽃에 비하랴』, 『갈대처럼』 『목숨을 연주하며』, 『하얀 이야기』
자작시 낭송집 CD 제작 『밀려오는 그리움은 별보다 많다』
동인지 『오후의 그리움』, 『창문』, 『기독시』 등

<수상>
대한민국 환경 문화대상 시 부문 대상
한국현대시 100년사 한국대표명시낭송대회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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