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말 처음으로 시집을 낸다. 오래 전에 쓴 시도 있고 최근에 쓴 시도 있다.
고향집에 빨랫줄이 있었다. 넓은 마당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매어놓은 긴 빨랫줄이었다. 가운데쯤에 바지랑대도 세워놓았었다. 여름날 새벽이면 빨랫줄 가득히 제비들이 모여앉아 어찌나 시끄럽게 떠들어대던지 온 세상의 제비란 제비는 다 우리집으로 몰려온 것 같았다. 늦잠을 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으며, 잔다 해도 꿈속까지 제비소리가 들려오기 일쑤였다. 그들은 그렇게 새벽회의를 마치고 이른 아침이면 대개 해산하였는데, 언뜻 보면 흔적없이 날아간 듯 하였지만 실은 빨랫줄에 무수한 흙발자국들을 남기고 떠났다. 하여 깜빡 잊고 그냥 빨래를 널었다가는 꼼짝없이 빨래를 다시 해야만 했다. 이제는 그리움이 되어버린 그 여름날의 시간 속에서 아직 어린 내가 시인을 꿈꾸고 있다. 빨랫줄을 깨끗이 닦고 나서 이런저런 빨래를 널며 나풀나풀 날아가는 흰나비에게 중얼중얼 나의 시를 들려주고 있다. 그동안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정아솜
■ 본문 중에서 *봄바람
무슨 봄바람이 이리도 부는지 하루 종일 창문이 덜컹거린다 고향집 마당으로 남풍이 불어오면 빨랫줄의 빨래들이 펄렁거리고 마루에도 우물에도 장독 위에도 수북수북 송홧가루가 쌓이곤 했었는데… 지금 창문을 흔드는 이 바람은 고향집 마당을 지나왔을까
*매미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다 보니 방충망에 매미 한 마리가 붙어 있다 저 푸른 나무들을 어찌 잊고 삭막한 이곳으로 날아왔는지… 차라도 한 잔 대접하고 싶지만 그리할 수도 없고 신세 이야기나 들어보고 싶지만 그리할 수도 없고 그저 놀라 달아날까 저어되어 조심조심 빨래를 펴서 넌다
*은행잎이 예쁘다고 말하고 싶었다
은행잎이 예쁘다고 말하고 싶었다 너와 함께 보고 싶다고 작년에도 이랬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네가 나를 두드리던 몇 주일 동안… 너의 편지를 읽으며 너를 꿈꾸던 그날 밤도 은행잎이 꼭 이랬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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