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말 시는 나의 정원 거루고 뿌리고 가꾸고 기다립니다
가끔 오시는 손님 신선한 긴장 거름기 족한 여운을
날 새도록 곱씹어도 여전히 지독히도 목마른 가난한 정원입니다
■ 본문 중에서
*새
새는 새벽에 뜨는 별 종일 노래하는 별이네
호수에 흔들리는 무늬나 허공을 켜는 바람 현의 긴 떨림의 시간을
개밥바라기에 노래를 건네고 둥지에 들앉아 왁자지껄 오늘 감당한 세상을 가족이니까 시시콜콜
내사 적지 못하여 다만 귀를 기울이네
늙어서 죽은 새의 무덤은 어디인가
거미줄의 새벽 저 이슬방울 속인지 누구도 닿을 수 없는 숲의 신전인지
사라지는가 새는 해가 돌아가는 노을 깊은 데로 거기 하늘과 내통하는 집인지
내사 알지 못하여 다만 가슴을 여네 새는 노래하는 별이네
*잉어들의 수다
워낙 볕이 좋았거든 장수천 박차고 공중제비로 세상 구경 이만저만
느티도 벚나무도 알몸인데 어쩌자고 수수는 낯만 붉히는지 여태 망사 베일을 쓰고
해바라기도 못 하는 해바라기 꽃이었던 날들의 일기장 제 발등만 읽어 쌓고
웃자란 고층 아파트 벽 안에 할머니 오도카니 유치원 차 시간만 꼽더라
떠나는 가을향기 모르기는 내 콧구멍 작아서인지 암만 허망 벗지 못한 탓일 거야
등짝 시리다 탯자리 깊이 가서 봄이나 기다려야지 대지가 그러하듯이
*평균대 위의 산책
코로나 올무 속 겨울나기 봄은 꽃을 이고 저 혼자 쓰러지고 아직도 섬이어야 하는 나날
빈 집을 노리는 도둑처럼 빈 길을 바라고 밤을 도와 갯가 공원을 걷는다
어둠이 흔들리는 인기척 안녕하세요? 밥 한번 먹읍시다
굴뚝같은 정감을 밀어내며 날카로운 촉을 세우는 평균대 위의 산책 안전한 착지는 어디쯤인가
*11월의 숲
떠나서 더 아름다운 자유 외길의 끝을 향하고 단풍이 내려온다
희열은 잠시 한사코 견디어낸 인고의 한 살이 영별의 시간을 서성이다
나무의 뼈들이 잘게 자른 하늘이 내려와 빗방울 듣자 눈을 감는다
비올라 선율의 섬집 아기 나지막이 낙엽을 도닥이며 괜찮아 자고 나면 봄일 거야
초록이 비어가고 또 모든 소식이 끊어지고 겨우내 기억으로 바라볼
숲을 나오면서 골똘하다 떠나야 할 것과 떠나는 것들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