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의 말
대륙을 넘어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사람이면 모두 똑같다는 생각을 평소 가지고 있었다. 짐작한 바대로 물리적인 동일을 의미하진 않는다. 저 후미진 오지든 번잡한 도심 속이든, 돈이 많든 적든, 젊잖은 신사든 불량배든, 가방끈과도 관계없는, 본질적인 욕구가 같다고 본 것이다. 신은 사람의 안팎을 자기처럼 지었노라 말했다. 결국 그를 닮아 나도 왕이 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벤츠 타고 싶고, 맛있는 거 먹고 싶고, 일은 조금만 하면서 돈은 많이 벌고 싶으며,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거였다. 나와 마음이 같으면 좋고 다르면 나쁜 게 되었다. 이런 패턴에서 세계 전역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상상 속에선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일이 가능했다. 이렇게 말하니 신이 마치 시정잡배 같은 느낌이다. 당연히 그럴 리 없다. 이 고해 속에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며 그 대안을 찾아 추리해 가는 과정이 ‘노출’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신은 결자해지를 했다. 거기에 비전까지 제시했다. 사람과 똑같은 입장에서, 사람을 대신하여 시험 치르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는 예수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했다. 사람 속에 사랑이 있다면 미워할 수 없고 도둑질할 수 없으며 속이지도, 전쟁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모두가 알듯 우리 속엔 약에 쓸래도 없는 게 사랑이다. 그런 사람을 표현하는 언어로서, 사람이 중심인 창세기 1, 2, 3장보다 더 보편적인 소재는 세상에 없다고 생각했다. 작가라는 레테르를 이용하여 용감하게 시도해 보긴 했으나 성경을 체계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접해 본 적 없는 나는 글 쓰는 내내 어려움을 겪었다. 그때마다 물꼬를 트는 대화가 필요했는데, 수학 교사를 하다가 최근에 정년 퇴임한 나병채 선생께서 시간 내어 기꺼이 그 상대 역할을 해주었다. 감사하다. 그 외 여러 면에서 친절을 베풀어 준 분들에게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지면상 이름은 다 열거하지 못하나 마음만은 항상 함께하며 잊지 않을 것을 약속드린다. 떠올리기만 해도 힘이 된 언니, 오빠, 은효, 수효에게도 감사한다. 끝으로,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 물리적으로 가장 많은 도움을 준 남편에게 특히 고개 숙여 감사를 전한다. 출판사 청어 식구들도 마찬가지다. 다 덕분이다!
■ 본문 중에서
불현듯,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시야가 새하얗다. 빛이다. 사방이 부신 빛이다. 빛이 보이니 살아있는 거고, 이 순간이 확실한 걸 보니 앞으로 살아날 가망성도 크다. 그러나 물속 같은 느낌이 들뿐 여기가 어딘지, 무슨 일로, 왜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 길 없었다. 짐작할 만한 실마리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최소한 무언가에 갇힌 듯한 폐소감이 없다는 느낌에 그나마 안도하였다. 당장 시급한 건 숨을 뱉어내는 일이었다. 가슴이 조여오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호흡하려 했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여의찮았다. 끔찍이도 답답하게 내쉴 수가 없었다. 이마를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뭔가 단단한 것을 딛고 위로 박차고 올라가야 했다. 하지만 발은 고장난 장난감처럼 허공에서 허우적댈 뿐이다. 중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발에 닿는 게 없었다. 불안과 두려움이 번개 치듯 엄습했다. 이러다 익사하고 말겠어. 더 이상, 더는 숨 참기가 힘들었다. 절박했다. 마지막으로 온 정신을 모아, 거센 물줄기를 거스르며 비상하듯 뛰어오르는 연어처럼 몸을 비틀어 높이 튕겨냈다. 필사적으로, ‘밖이었음’ 하는 그 어딘가를 향하여 고개를 쳐들고 코부터 디밀었다. 고향의 향기가 연어로 하여금 불원천리 먼 길을 거슬러 달리도록 이끌듯 생존을 향한 강한 열망이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푸하!
인생에서 ‘이것’인 것을 꼭 찾아 잡고, 잡히고 싶었다. ‘이것’ 때문에 살아야겠다는 것을 진심으로 알고 싶었다. 입때껏 살아오는 동안 열심히 머릿속에 쑤셔 넣기만 했지 제대로 된 출력물을 손에 받아본 적 없었다. 짧으면 두어 달, 길면 2~3년 어김없이 번복되는 얄팍한 위로가 있을 뿐이었다. 누구에겐들 나처럼 살아보라고 할만한 게 없었다. 무엇이 문제이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오류가 발생했는지 한번은 알아볼 일이었다. 만약 끝끝내 번뇌의 출처를 모르고 지나간다면 그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닐 게 분명했다. 뭔가 모를 가슴속의 응어리를 풀어야 했다. 창세 전에 뭘 계획했든 타락은 분명 처음 먹었던 계획과는 다른 모습이리라. 실패다. 혹 실패도 각본의 일부분일까? 아니면 사단의 미필적고의거나 과실일까? 아니다. 시작과 끝이 완결된 글이라는 걸 감안하면 과실은 절대 아니고, 최소한 미필적고의거나 고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었다. 부러 죄짓게 놔뒀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