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오가면서 사는 일이 직업이 되고 입·퇴원을 거듭하면서 시 쓰는 일이 직책이 된 것 같다 막연히 시가 좋고 시를 쫓아다니다 보니 내가 시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시가 나를 선택한 것 같다 잠시라도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詩의 공간에 나를 붙잡아 두고 지난 삶의 백서를 남긴다
B 병동 2657호 81 (C V)
가을꽃을, 가을국화를 가을바람을 노인병동의 가을하늘과 가을볕을 가을볕의 따뜻함과 온화함을, 스산함을 멈춘 가을 달을 가을 구름을 어둠을, 어둠의 시간을 가을별을 가을별에 잠긴 사랑을, 인생을, 인생의 가을을 아이처럼 뒹굴면서 가을의 풍요를, 가을병실의 적막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