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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섬
차노휘
장편소설
신국판/272쪽
2019년 6월 10일
979-11-5860-654-1(03810)
13,000원

작가의 말

이 소설의 시작은 그림 한 장에서부터였다.

잔물결도 파도소리도 갯내음도 없을 듯한 바다. 불안한 군청색 하늘. 달빛에 물든 수면. 수면 위로 떠 있는 조각배. 뱃머리에는 관이 실렸고 그 뒤에는 키 큰 사제(정확히 사제인지, 죽은 자인지, 산 자인지도 모르겠다)가 기도하듯 서 있다. 사제 뒤로 뱃사공이 앉아서 노를 젓는다.
조각배는 미끄러지듯 바위섬으로 흘러간다. 암벽을 병풍처럼 두른 섬은 사이프러스 몇 그루를 품고 있다. 사이프러스 바깥쪽에는 묘혈이 있다. 묘혈은 황금빛으로 환하다. 황금빛은 사이프러스의 음산한 그림자도, 타르처럼 검고 깊은 바다도, 적막과 고독을 태생적으로 품고 있을 듯한 그림 분위기에도 잔잔한 안식을 선사한다.
이 이미지는 내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가슴에서 내내 떠나지 않았다. 내 욕망은 이미지를 글로 묘사하라고 했다. 소설 말미에는 조각배를 타고 섬으로 향하는 사신이 그려지고, 산 자와 죽은 자가 어울리는 황금빛 축제를 예견한다.
마지막을 써놓고 처음으로 돌아가는 글쓰기였다. 이미지를 만들어놓고 메인 스토리를 짜고 리얼리티를 살린 소설이었다.
2013년 여름부터 구상하고 쓰기 시작했다. 출판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때가 아닌 듯했다. 내가 거절하거나 거절당했다. 출판 기금 신청에서 매번 떨어졌다. 모 교수는 이 소설을 읽고 며칠 앓았다고 했다. 그만큼 기가 셌다고 농담 삼아 말했다.

기가 센 ‘이 녀석’은 나만큼이나 방황을 했다. 나는 박사 논문을 통과시켰지만 일상에서 끊임없는 탈출을 시도했다. 제주도 올레길을 시작으로 지리산 둘레길을 완주하고 까미노 데 산티아고 프랑스길(900㎞)과 포르투갈길(700㎞)을 걸었다. 물 공포증이 있던 내가 이집트 다합에서 스쿠버 다이빙 다이브 마스터(DM)를 따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다시 『죽음의 섬』과 마주했다.

일 년에 고작해야 네 번 정도 비가 온다는 다합에 비바람이 성난 듯 쳤을 때였다. 파도는 해안가 비치의자를 훔쳐갔다. 길거리는 온통 바닷가에 내놓은 소파나 테이블이 차지했다. 그 날은 카페 영업도 다이빙도 쉬었다.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모든 것이 잠잠해졌다. 나는 호텔 루프에서 번화가를 내려다보았다. 두 달여 동안 다이빙 훈련으로 지쳐 가는 나와 달리 아치형 해안가는 활기가 돌았다. 어둠을 밝히는 황금빛이 낮 동안 지친 기운들을 쓰다듬으면서 생기를 돋우고 있었다. 그때였다, 생각 한 줄기가 내 정수리를 치고 간 것이.

‘아, 소설을 쓰고 싶다, 그것도 장편 소설을…….’

그동안 나는 ‘소설 불감증’을 앓고 있었다. 불감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배낭 하나 짊어지고 그 낯선 곳을 떠돌아다녔던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해왔다. 메마른 육지와 달리 풍요로운 바다를 품고 있는 이 머나먼 타국에서 내 민낯과 진솔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한 아이를 품기 위해서는 한 녀석을 내보내야 했다. 서운할 것은 없었다. 이제 때가 된 것이다, 제대로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가. 어떤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중심을 잡을 거라는 믿음은 변함이 없다. 방황한 만큼 속이 더 단단해졌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깐.

험난한 길 제대로 가라고 든든한 장비 챙겨준 청어출판사 관계자 분께 감사드린다. 내가 하는 일에 묵묵히 기다려주고 응원해준 가족에게는 늘 미안하다.

 

2019년 5월 무안에서,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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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프롤로그

 

설지원이 실종됐다.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았다. 무연고 변사체가 발견되었다는 제보도 없었다. 그의 이름으로 개설된 통장으로, 다달이 6개월 동안 삼백만 원이 입금되었다. 현존하지 않는 사람의 통장에서였다.
그는 평소에도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어 했다. 걸핏하면 원양어선을 타고 싶다, 아무도 모르는 암자에서 수행승처럼 살고 싶다고 말했다.
설지원은 대학생활 내내 자취를 했다. 건물 옥상에 있는 가건물이었다. 그의 형편은 그리 좋지 않았다. 월세 계약을 할 때에 그는 주인 여자에게 말했다. 만약 제가 돌아오지 않으면 가전제품을 팔아도 좋아요. 가전제품이야 오백 리터 냉장고와 선풍기가 전부였다. 그것조차 낡아서 고물상에나 공짜로 줘야 할 판이었다. 그 앞으로 온 청구서에는 연체된 신용카드 대금이 거의 천만 원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사채를 빌려서 ‘어깨’들한테 시달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자주 전화기를 꺼놓고 낡은 노트북 앞에서 뭔가를 쓴다고 앉아 있었지만 집으로 찾아오는 불량한 사람들은 없었다.
한편에서는 여자 문제로 실종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그는 이성에 도통 관심이 없었다는 게 동기생들의 증언이었다. 한두 명 그에게 호감을 보인 후배들이 있었지만 그는 시간과 돈이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만나기를 꺼려했다. 그가 호모이거나 성 불구자일 수도 있다는 소문이 한때 돌기도 했다.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가 호모라는 소문은, 학교 근처 소극장 여단장이 일축했다. 그는 단지, 또래 보다는 나이 든 여자에게 호감을 보였다고 했다. 그는 실종된 것이 아니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어느 허름한 여인숙이나 횟집을 운영하는 과부 품에 안겨, 애인이자 아들 역할을 하면서 세상을 등지고 있을 거라고 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외아들이라는 조건과 그녀를 스토킹 한 적이 있었다는 근거를 댔다.
설지원의 친구 또한 이를 뒷받침할 만한 말을 언급했다. 그가 학과 여 교수를 미행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미행당한 여 교수와 인터뷰를 요청하려 했으나 그가 실종될 당시 그녀가 자살했다는 비보를 들었다.
실종 사진을 보고, S터미널 내 매점 주인이 제보를 했다. 남색 오리털 파커를 입고 양 어깨에 백팩을 멘, 노트북 가방을 신줏단지처럼 들고 있던 청년이 담배 한 보루와 소주 한 병을 사갔지만 불안하거나 누군가에게 쫓기는 기색은 없었다, CCTV가 없어서 실종자인지는 확인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실종된 지 1년이 지나서야 그의 어머니가 실종신고를 했다. 전도사인 그녀는 아들의 부재에 한사코 말을 아꼈다.
여러 가지 논리적인 추리가 있었지만 사체와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탓에 논외가 되고 말았다. 가족의 가출 신고에 따른 탐문수사도 사람을 찾는다는 친구의 신문광고도 모두 헛수고였다. 이렇게 하여 아무도 그가 실종된 진정한 이유를 모른 채 5년이 지나 끝내 실종자 사망으로 처리되었다.

 

 

프롤로그

1. 영무도, 별장지기 
노트 1
2. 의문의 살인사건과 전도사 어머니 
노트 2
3. 다락방 얼굴들 
노트 3 
4. 황토 지하방 
노트 4
5. 재현
노트 5
6.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노트 6
7. 슬랩스틱 메시지
노트 7
8. 선글라스
노트 8
9. 지하무덤
노트 9
10. 선택
노트 10
에필로그

해설_레이어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최수웅(스토리텔러,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차노휘

 

글쓴이 차노휘는 200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얼굴을 보다」가 당선되었고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소설 창작론 『소설창작 방법론과 실제』, 여행 에세이집으로는 『쉼표가 있는 두 도시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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