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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노
이병숙
소설
신국판/288쪽
2019년 06월 10일
979-11-5860-652-7(03810)
13,000원

현실과 이상.

삶의 두 축인 이 둘은 철로처럼 평행하다. 둘은 만날 수 없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을 택할 수도 없고, 둘 다 외면할 수는 더욱 없다. 이 비정함을 극복해내는 게 삶의 숙명이다. 숙명의 본질을 파악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삶의 주관자와 타협을 해야 한다. 그래서 삶을 투쟁에 비유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삶의 한 조각을 놓고 창작이라는 이름으로 보이지 않는 적과 전투를 벌이곤 한다. 삶이 그렇듯 승리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승리는 승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패자가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종욱의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를 본 순간 살아있는 삶의 화석을 보았다. 고대의 인물임에도 현대인의 의식을 뛰어넘는 자유분방한 사고와 생활방식, 신격화한 신분제도와 정치체제, 화학구조식을 연상시키는 복잡한 가계도.

아름다운 전장이었다.

정말 우리의 조상일까 싶은 낯설음에 매료되어 뿌리에 대한 애정으로 이들의 삶을 재현해 내었다.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힘든 작업이었지만 즐거운 모험이었다. 마치 내 현실과 이상이 만난 것 같은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천여 년의 세월을 건너 새로운 전장에 선

문노 윤궁 미실 세종

이들의 운명에 승운이 깃들길 기대해 본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에

이병숙

 

 

 

법사의 혜안

 

 

승복 차림의 사내는 산등성이에 올라서 아스라이 펼쳐진 능선들을 훑어본다. 아침 일찍 떠나온 일각사 스님 말에 비추어 보면 대략 국경에 다다른 것 같다. 스님의 말로는 부지런히 걸어올라가 고개 하나를 넘은 후 해가 정수리 위에서 내리쬐는 산등성이에 다다르면 거기서부터 고구려 땅이라고 했다. 그어진 선도 없고 장벽을 쳐놓은 것도 아니지만 어림잡아 국경을 넘는다는 생각에 잠깐이나마 긴장이 된다. 조금 전까지 걷던 신라 땅이나 앞으로 가려는 고구려 땅이나 그저 산길일 뿐인데 공연히 남의 물건에 손댄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누가 눈여겨보고 있는 것만 같아 자꾸 주위를 휘둘러보게 된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무요 바위요 흙뿐 사람은 기척조차 없다.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드문드문 박혀 있다. 조금 전 신라 땅에서 본 구름과 모양도 크기도 자리도 변함없다. 국경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다. 사람의 생김새나 살아가는 모습이나 별반 다를 게 없건만, 공연히 가만히 있는 산과 들을 네 편 내 편으로 나눠놓고 그 안에 갇혀 산다. 우매해서 그런지 너무 영민해서 그런지 가늠이 안 된다. 호의호식을 마다하고 반걸식을 하며 방방곡곡 사찰을 전전했지만 아무리 배를 채워도 마음은 늘 헛헛하기만 하다.
사내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창공을 향해 토해낸다. 문득 하늘을 우러르며 외치던 이차돈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차돈이 참수되던 날, 그 자리에 모인 모든 군중이 그러했지만 이차돈과 동연배인 그에게는 머리가 송연해지는 충격이었다.
‘도대체 그것이 뭘까.’
한창 꽃다운 스물두 살의 목숨을 주저 없이 버리게 한 그 힘이 뭘까. 하늘을 바라보던 사내는 하늘을 향해 호소하던 이차돈의 모습을 떠올리며 다시금 의문을 가진다. 뿐만 아니라 하늘 아래 못 이룰 것이 없는 대왕이 그 젊은 목숨에 의지해 구하려 했던 건 또 뭘까. 말직의 젊은 신하와 무소불위의 대왕이 같이 느끼고 있는 그 거대한 힘은 도대체 뭘까. 목숨보다 소중하고 권좌보다 위대한 그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부족함 없이 자라 결혼하여 꿀맛 같은 삶을 지내고 있던 사내는 납득이 되지 않는 이 의문으로 날을 새고 달을 보냈다.
사내는 내물왕 5세손이요, 각간의 조부와 이찬의 아버지를 둔 명문가의 후손 거칠부다.
불도(佛道)에 심취한 법흥대왕은 대사찰을 지어 민중에게도 불법을 심어주려 했다. 하지만 아직 불도를 도외시한 대신들은 예산낭비라며 극구 반대했다. 대사찰을 창건할 비용으로 국경을 더 튼튼히 하여 백제나 고구려의 침략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게다. 틀린 말도 아니라 대왕은 그저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이때 불심 깊은 말직의 이차돈이 대왕의 의지를 안타깝게 여겨 제 목숨을 담보로 불사를 일으키라 청한다. 살생금지를 가장 큰 교리로 여기는 불도에서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을 왕은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 한 목숨으로 중생을 구할 수만 있다면 이는 죽어도 사는 길임을 호소하는 이차돈의 뜻을 만류할 수가 없었다. 이차돈은 사찰창건을 수락한다는 왕의 거짓 문서를 궁 밖으로 돌렸다. 예상대로 대신들은 대노했다. 감히 말직의 관리가 언감생심 왕명을 사칭해 문서를 꾸미고 사찰을 창건하려 하다니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차돈이 단독으로 꾸미기에는 무리가 있는 일이다. 불도를 퍼트리기 위해 왕과 사전에 모의가 있다고 의심을 한 대신들은 왕을 압박하기 위해 모든 백성이 보는 가운데 이차돈을 처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암암리에 퍼지고 있는 불도를 차단하려는 속셈도 있었다. 국태민안을 위해 사찰을 창건하려다 생긴 일이지만 당장 뚜렷한 증거나 명분이 없는 왕은 대신들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는 대세였다.
대신들은 왕명을 위조한 것은 국법을 어지럽히는 중죄로 극형에 처해야 한다며 이차돈을 서라벌 백성이 다 볼 수 있는 언덕에 형장을 만들어 그 한가운데에 세웠다. 격앙된 대신들과 달리 이미 다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 이차돈은 처연하고 숭고한 모습으로 형장에 섰다. 대왕을 비롯하여 대신들과 군중들이 겹겹이 형장을 에워쌌다. 집행관이 민중들을 향해 외쳤다.
“이 자는 나라의 녹을 먹는 자로 대왕의 신임을 얻고 이를 빙자하여 민중들에게 사특한 교리를 전파했으며 급기야 왕명을 위조하여 그 본당을 세우려 했다. 이는 민심을 흉흉하게 하고 국가기강을 어지럽히는 중죄로 극형에 처한다. 앞으로 누구든 이 자가 퍼트린 교리에 현혹되는 자가 있으면 그도 이와 같은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
군중 사이에서 소요가 일었다. 이차돈이 하늘을 우러러 소리쳤다.
“거룩한 부처시어! 신실한 대왕님이 불도(佛道)로 나라를 다스리려 하나 몽매한 인연들이 가로막아 이 몸이 신명을 바쳐 대왕의 뜻을 이으려 하나이다. 부디 상서로운 징표를 내리시여 불안에 떠는 저 중생들에게 불법(佛法)의 신령함을 보여주소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하늘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청청한 이차돈의 말에 군중은 일순 숨을 죽였다. 이차돈은 다시 한번 외쳤다.
“지금 부처는 그대들과 함께 계십니다.”
집행관은 미간을 찌푸리고 형리에게 눈짓을 했다. 형리의 칼이 이차돈의 목을 내리쳤다. 순간 사방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우박과 꽃비가 동시에 내리고 바람도 거세게 일었다. 바람결에 나무관세음보살을 외는 이차돈의 음성이 퍼졌다. 동시에 바람에 흩날리는 하얀 꽃잎들이 머리가 떨어져 나간 이차돈의 목 위로 소복이 쌓였다. 계속 쌓인 꽃잎들은 피를 타고 흘러내려 땅바닥까지 하얗게 덮었다. 왕은 눈물로 곤룡포를 적셨고, 백관들은 두려움에 서둘러 자리를 떴다. 군중들은 놀라움과 신령함에 엎드려 일어날 줄 몰랐다.
거칠부는 같은 연배인 이차돈의 행동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숨이 막히는 듯했다. 뭇사람들은 이차돈의 처형 후 일어난 신령함으로 불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거칠부는 사전에 그런 이변을 믿은 이차돈의 신심에 관심이 갔다. 어쨌거나 이차돈의 순교로 불법(佛法)은 불을 일으키듯 번져나갔고, 법흥대왕은 불도를 국교로 반포하고 무사히 대사찰 흥륜사를 중건하게 되었다.
불법에 대해 별반 관심이 없던 거칠부도 오롯이 마음을 쏟게 되었다. 어린 말직 신하의 말을 따른 대왕도 그렇거니와 죽음을 불사한 이차돈의 행위는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어떤 거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린 것이라 생각되었다. 죽음조차 두렵지 않게 하는 힘, 아니 스스로 죽음을 통해서라도 이룩하려는 믿음의 힘이 느껴졌다. 어렴풋이 그 힘이 그들이 말하는 부처라는 건가 싶었다. 그 부처를 알고 싶었다.
그는 이차돈이 묻힌 자추사를 찾아 부처를 알기 위한 유람을 시작했다. 자추사는 불공을 드리면 대대로 복을 누릴 뿐만 아니라, 불법의 큰 이치를 깨닫게 된다하여 영험한 절로 알려졌다.
거칠부는 부처님이 애초 왕자의 신분에서 삶의 무상함을 깨달아 중생을 구하기 위해 출가했다는 교리를 들으며 법흥왕이 동병상련의 마음에서 그토록 불법에 심취했나 추측해 보았다. 그러나 중생을 구한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얼 의미하는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신심이 깊은 법사를 찾아 절을 옮기며 깨달음을 얻고자 했다. 그러나 삶의 무상함까지는 알 것도 같은데 그리하여 어찌 살아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간혹 법사의 강론을 통해 어찌 살아야함도 알 것 같으나 그 또한 실행에 옮기기는 실로 어려운 일이라 맥없이 절만 전전하며 세월을 축냈다. 그렇게 불도의 이치를 찾아 떠돌던 발길이 불법을 백제로 전파해준 고구려까지 닿은 것이다. 신라의 불도는 백제로부터 전파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이미 백오십 년 전에 불교를 받아들인 고구려에 가면 좀 더 진리를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불도가 어느 정도로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두루두루 궁금했다.
평양으로 들어온 거칠부는 아무리 태연하려 해도 적지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진골의 피가 흐르는 왕족의 후손답게 고구려의 정세와 민심에도 저절로 관심이 갔다. 지형이며 인심이며 나도는 물품의 질과 양까지 눈여겨보게 되었다.
고구려는 안장왕에 이어 동생 안원왕이 보위에 올랐는데 나라 사정이 편안치 못해 보였다. 전왕의 정부인이 아이를 못 낳자 둘째와 셋째 부인의 아들 사이에 왕위 다툼으로 천여 명이 죽는 내란을 겪은 후였다. 지난해는 대홍수로 난리를 겪었다더니 올해는 가뭄에 메뚜기 떼마저 극성을 부려 기근을 겪고 있었다. 게다가 백제의 우산성 침공으로 국정도 불안했다. 다행히 기병 오천을 급파해 물리치긴 했으나 재해와 재난 속에 유랑민이 속출하는 등 민생은 고단해 보였다. 불도도 신라보다 백여 년이나 먼저 들어와 민중 속에 널리 자리잡았을 줄 알았는데 흉흉한 민심 탓인지 이제 막 부흥하기 시작하는 신라만도 못한 듯했다. 그런 와중에도 혜량법사에 대한 소문은 가는 곳마다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학식과 덕망이 높다고 소문이 자자한 혜량법사를 찾아간 것은 고구려 땅을 밟은 지 반 년을 넘긴 후였다. 법사가 창건했다는 사찰의 강론장에는 명성대로 많은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다. 무심히 사람들 틈에 끼어 있던 그는 나중에 온 사람들에 밀려 주춤주춤 앞으로 밀려나갔다. 학식과 덕망이 높다기에 이제껏 만나보았던 법사들처럼 의례 노년이려니 했는데 법사는 생각보다 훨씬 젊어보였다. 자신보다 기껏해야 대여섯 살쯤 손위로 보일 정도다. 저 정도의 연배로 그만한 명성을 얻었다면 학식이 아니라 뭔가 다른 능력이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들기도 했다.
“인연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일과 일 사이 또는 일과 사람 사이에도 있지요. 사람도 혼자 살 수 없듯이 모든 일도 혼자 일어나는 법이 없어요. 몇 가지의 일이 서로 연관되어 한시에 일어날 수도 있고, 시차를 두고 일어날 수도 있지요. 또한 그 시차는 가까울 수도 있고 아주 멀어서 내세에 일어날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일어난 일이 지금 단독으로 일어난 게 아니라 전에 있었던 어떤 일이 원인이 되어 일어난 것일 수도 있고 전생의 업으로 일어난 것일 수도 있어요. 마찬가지로 지금 겪고 있는 일이 나중에 어떤 일로 연결될 수도 있고 내세에 나타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내게 일어난 일은 나와 인연이 있어 일어난 것입니다. 지금 내게 일어난 이 일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나중에 일어날 일과 좋은 인연이 될 수도 있고 악연이 될 수도 있습니다.”
법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좋은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마음가짐부터 바르게 해야 하는 것처럼, 일도 좋은 인연으로 맺어지려면 마음가짐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젊은 법사의 강론은 목소리도 우렁찰 뿐만 아니라 확신이 뚜렷하고 이제까지 들어본 어느 강론보다 설득력이 있었다. 어려운 불경을 해독해주는 차원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느끼는 답답함을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풀어주려 애쓰는 것 같았다. 불법이 중생들의 삶을 규제하거나 선도하기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한 방편임을 설법하는 것 같아 고개가 끄덕여졌다.
강론이 끝나고 돌아서 나오려는데 ‘거기 젊은 스님’ 하는 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위에 승복을 입은 사람은 자기뿐이라 멈칫하긴 했는데 이 고구려 땅에서 누가 자신을 부르랴 싶어 그냥 발걸음을 옮겼다. 법사는 다시 한번 ‘저기 승복을 한 젊은 양반!’ 하고 불렀다. 거칠부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왠지 가슴이 뜨끔했다. 승복을 했으니 스님이라고 부르는 건 당연한데 ‘승복을 한 젊은 양반’이라니. 그대로 도망갈까 망설이다가 공연히 의심을 사 더 큰 일을 당할지 몰라 일단 돌아섰다.
“저 말씀입니까?”
거칠부는 허리를 굽히며 물었다. 법사는 그렇다며 잠시 사람들이 빠져나가길 기다렸다.
“강론이 들을 만했소?”
법사는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예? 아 예. 처음에는 인과응보에 대해서 말씀하시나 했는데 그보다 큰 의미의 인연에 대한 말씀이라 많은 걸 생각하게 했습니다. 제 식견이 짧아 다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게 일어난 일은 나와 인연이 닿아 일어난 것이니 피하지 말고 다음에 좋은 인연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열심을 다 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했습니다.”
“잘 들으셨습니다. 내가 오늘 인연에 대한 강론을 하게 된 것은 아마도 그대를 만나게 될 줄 알고 그랬던 것 같소. 보통 인연은 아닌 것 같소.”
“보통 인연이 아니라 하심은….”
“신라 사람이지요?”
“예? 신라 사람이라니요? 무슨 말씀이신지….”
철렁 내려앉은 가슴을 다스리며 거칠부는 무슨 천부당만부당한 말이냐는 투로 말을 흐렸다.
“아무리 승복을 입고 고구려 사람인 체 하지만 눈에 경계의 빛이 영력한 게 정탐인의 그것과 같아 하는 말이요. 그러나 두려워할 것 없어요, 부처님이 만들어주신 인연이니. 하지만 이제 돌아가시오. 곧 위험이 닥칠 게요.”
“정탐인이라니요. 제가 법사님의 강론에 너무 열중해 눈빛이 그리 보인 게 아닌가 합니다.”
자신의 생각에도 군색한 변명 같았지만 그래도 신라인 그것도 정탐인이라는 말을 그대로 수긍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변명할 것 없소. 그대가 잡혀 곤욕을 겪을까 염려되어 하는 소리니 어서 돌아가시오. 아마 그동안 고구려에 대해 꽤 많은 걸 알았을 법 하오.”
“제가 신라의 정탐꾼이라니요, 만일 그리 확신하신다면 어찌 순순히 돌아가라 하십니까. 관에 통기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거칠부는 신라의 정탐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한술 더 떠 보았다.
“내 응당 고구려 사람으로 그래야 하나 관상을 조금 볼 줄 알다보니 그럴 수가 없소.”
“제 관상이 어떠하기에 그렇습니까.”
“그대에게 그 승복은 어울리지 않소. 장차 큰 장수가 될 상이오. 그 운명을 어찌 미약한 내가 막겠소. 후일 만약 군사를 일으켜 고구려를 공략해 오거든, 내게 해나 끼치지 마시오. 이렇게 만난 것도 다 인연 아니겠소. 나무관세음보살!”
법사는 빨리 떠나라고 재촉했다. 장수 될 운명을 막을 수는 없지만 고구려에 대한 정탐은 그만 하라는 뜻임에 거칠부는 절을 나와 그 길로 신라를 향했다. 진골의 자손이요, 현직 대신의 아들이라는 것이 관에 밝혀지면 자칫 국가의 볼모가 되어 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 혹시 법사의 마음이 바뀌어 밀고를 하지 않았을까 잔뜩 긴장을 하고 발길을 재촉했다. 다행히 국경을 넘도록 뒤쫓는 군사는 없었다.
거칠부는 자신의 신분을 알아차린 법사의 혜안이 생각할수록 섬뜩했다. 자신이 신라 사람 그것도 정탐꾼이라 믿으면서도 밀고하지 않은 것도 심상치 않았다. 믿을 수는 없지만 자신의 운명을 꿰뚫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 또한 어떤 거역할 수 없는 불법의 힘으로 느껴졌다. 공격해오더라도 자신을 해치지 말라는 말도 꼭 그럴 날이 있으리라는 예언인 것만 같았다.

 

작가의 말 _4

 

법사의 혜안 _10
누가 사다함을 죽게 했는가 _34
태후 대 황후 _65
원화와 풍월주 _87
아무도 모르는 운명 _106
함정에서 치른 즉위식 _125
간택 _145
화랑무(花郞舞) _167
속내를 드러내다 _187
부를 수 없는 향가 _204
해후 _222
결행 _241
다비식 _261

저자_ 이병숙

 

1996한국수필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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