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시를 사랑한다는 것부터 가장 행복하다. 무엇보다 원고 앞에서 시상을 떠올릴 때가 가장 편안하다. 시를 말할 것 같으면 고도의 언어 예술이라고 흔히 이야기 한다. 오늘날에 와서는 시어를 의식하고 집필하는 시인은 없다. 시인이 한편의 시를 어떤 단어든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쓸 수도 있다. 원래 시어란 말은 18세기 영국에서부터 쓰였다고 한다. 그레이 T, 즉 그레이는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보통 Ordinary의 언어가 필요해서 특수화되면서 거리가 생겼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시어이다. 라틴어의 완곡한 표현체인 고어체를 고쳐놓은 것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서정시집의 서문에서 시의 감동적인 본질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언어들은 시어가 될 수 있다고 배웠고 또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면서 시에 쓰이는 언어가 가지는 기능이 대단히 넓다. 시를 창작하는 시인의 입장에서 보면 한 편의 시를 집필하기 위해 한 개인이 가진 자신만의 시적 표현이 있기 마련이며 의식적이든 무의식이든 사회의 윤리적인 제약성도 있기 마련이다. 한편의 시가 탄생하기까지는 시인이 가진 자유혼의 정신이 큰 물줄기로 흐르기 때문이라고 선배 작가 분들의 강의에서 늘 들어왔던 것이 이 책을 내면서 새삼 떠올리게 되었다. 끝으로 시집을 내면서 물신양면으로 도와준 청어출판사 이영철 소설가님 그리고 아낌없는 두 아들의 격려와 아내의 응원도 늘 감사드린다.
최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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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 하거든
당신이 먼저 나를 사랑하거든 조용히 다가와 말해줘요 그리고 품 안으로
살짝 안아주시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왜냐구요 차마 용기가 없어 나서질 못할 뿐이에요
마음을 열어 주시면 그때는 내가 먼저 뛰어갈게요 그리고 지체 없이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싶어요
미소만 보내도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이번에는 제가 용기를 내어 그대를 안아 드릴 작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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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내린 봄비
봄비가 바닥에 자리를 깔고 누운다 푹신한 이부자리를 깔고 온 대지까지 덮는다
행여 배탈이 날까 봐 곁에 있는 이불도 끌어다 덮는다
밤새 두 손으로 꼭 잡고 흘러내리는 빗물은 먼동이 틀 때 새벽길을 따라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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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연기
땅거미가 몰려올 때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는 산기슭을 따라 골짜기 사이로 빠져 나갑니다
어둑어둑 해질 무렵 굴뚝 아래로 흘러내리는 하얀 연기는 무대를 만들어 관객을 향해 인사를 하는 것 같습니다
저기압이 찾아오기 전에 서둘러 떠나 밤하늘 별들이 모두 나와 있는 허공 속으로 훨훨 날아가 버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