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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힌 말
정혜련
소설집
4*6판(128*188)
2019년 07월 10일
979-11-5860-665-7(03810)
13,000원

들끓던 시간이 지나간 자리는 잔잔한가.

출렁임이 가라앉은 자리는 잠잠한가.

 

종종 혼란에 빠졌다.

열정을 가장하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 때마다 어지러웠다.

 

세상과 현실의 간극을 목도하며 쉼 없이 종종거렸다. 한번 멈추면 다시 일어설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늘 목을 눌렀다.

 

더러 마음이 무거웠다.

더러 입을 닫기도 했다.

 

들썩이다 주저앉기 일쑤였다. 미련인지 오기인지 알 수 없지만 다른 길을 찾을 줄도 몰랐다. 오래 앉아 있었지만 내세울 것도, 남다른 자랑거리도 없었다. 그래도 즐거웠고 가장 큰 위안이기도 했다.

 

목매던 시간들 속절없이 스러져갔지만 길동무는 남아 있었다. 앞으로도 내 인생은 즐겁고 또 위안이 함께 할 것이다.

 

 

20196,

안구건조증 치료 중에

정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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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힌 말

 

입이 딱 벌어졌다. 집을 잘못 찾았나 싶었다.

아니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열쇠를 만지작거리던 나는 어느새 고개를 늘였다. 덩달아 발꿈치도 들렸다. 집 안에는 의자와 선반과 상뿐 아니라 신문지와 사과 상자와 책 따위들이 널린 사이사이로 주먹만 한 먼지 뭉치가 쥐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연신 세상에, 소리만 하다 전세계약서와 휴대전화를 꺼냈다. 주인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청소는 이사 오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잘랐다. 채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다시 쓰레기가 너무 많다고 하자 이사 가면서 어떻게 그런 것까지 신경 쓰겠냐고 했다. 싹싹 쓸어놓고 가면 새로 오는 집에 복이 달아나는 법이라며 너스레도 떨었다. 그런 말도 있었나 싶었지만 따질 틈도 주지 않았다. 더 이상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다 집어넣었다. 육 년 만에 귀국한 나는 친정집에 있었고 남편이 집을 구했다. 그런 그에게 볼멘소리를 할 수는 없었다. 아파트 상가에서 청소 도구와 쓰레기봉투를 사 왔다. 상후는 친정집에 맡겼다. 아버지부터 여름 방학이라 당장 학교에 갈 것도 아니니 두고 가라고 말렸다. 엄마도 가뿐하게 혼자서 살림살이를 준비하라고 거들었다. 같이 가고 싶다며 허리를 껴안는 상후를 보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귓속말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말을 못 알아듣겠다며 입을 내밀었다. 억양 강한 사투리여서 더할 거였다.

쓰레기를 들고 복도로 나갔다. 양손이 묵직했다. 내 기척에 난간을 붙잡고 서 있던 여자가 몸을 틀었다. 눈이 마주쳤다. 가무잡잡한 얼굴이 한 눈에 봐도 한국 사람이 아니었다. 여자가 다시 시선을 멀리했지만 딱히 아파트 건너편 산을 바라보는 것 같지 않았다. 어쩐지 몸만 우두커니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여자 옆을 지나야 했다. 숨을 들이마시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한국으로 돌아왔는데도 사람만 보면 긴장하는 습관이 발동했다. 내 집 건너 두 번째 집 앞을 지날 때는 여자 눈이 더욱 크게 열렸다. 인사라도 해야 하나 망설이는데 여자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덩달아 고개를 숙이면서도 한국말을 알까 싶어 그대로 지나쳤다. 앳돼 보였지만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다시 돌아올 때까지 그 자리에 선 여자는 몹시 외로워 보였다. 그 위로 얼핏 지난 내 모습이 겹쳐졌다. 나도 옆집 토니에게 저렇게 보였을까. 먼저 말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망설여졌다. 어쩐지 토니처럼 할 자신이 없었다. 그의 앞에서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에게는 내 말이 있다는 자존심의 일종이었다. 다시 고개만 까닥하고 지나쳤다. 집으로 들어설 때까지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외면했다.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쉬고 싶었다. 무릎을 세워 앉은 나는 몸을 웅크리며 두 팔을 엇갈린 채 어깨를 감쌌다. 그러고는 어깨를 더듬었다. 토니의 손이 거기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했다. 그가 보고 싶었다. 그는 내가 말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어깨를 토닥여주곤 했다.

눈을 감자 귓전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살아났다.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나를 안고 울던 그가 떠올라 새삼 가슴이 저렸다. 비로소 내가 그에게 의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말을 다 알아듣지 못했고 그는 어설픈 영어를 이해하느라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말의 갈증에 시달리던 나를 지켜본 것도 그였다.

가방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꺼냈다. 한글 파일을 띄우며 안도했다. 더는 말이 막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글에서도 자유로우리라. 소설 떼려치우라는 소리도 없을 것이다. 남편이 곧잘 하던 소리였다. 영어 공부해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훨씬 쓸모 있다고 할 때마다 눈을 감아야 했다. 소설 리스트를 클릭하자 제목이 길게 떠올랐다. 지난 육 년간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청소를 끝내자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말끔해진 집 안을 둘러보자 살림살이 준비할 일이 설렜다. 미국에 갔을 때도 그랬다.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나는 주변에 성가신 사람이 없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나는 줄곧 말의 갈증에 시달렸다. 아침이면 남편과 아들을 학교에 보내고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곤 했다. 나는 한국말뿐 아니라 영어에서도 고립되어 있었다. 머리가 아프거나 바람을 쏘이고 싶어도 선뜻 나가지 못했다. 옆집 남자 토니는 문을 열면 달려와 말을 시켰다. 영어가 서툴다고 해도 개의치 않았다.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이 집이 내 보금자리라는 생각에 물줄기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귀에 물이 들어가도 탈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알아듣지 못한 말이 귀에 걸리는 일도 없을 거였다. 귀를 파지 않으면 자연히 귀앓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가려다 멈칫했다. 걸레를 빨 때부터 물 빠짐이 시원찮더니 화장실 바닥이 온통 물바다였다. 바닥을 딛자 철벅 소리가 났다. 온몸에 오물을 뒤집어 쓴 것 같아 진저리를 쳤다. 둥둥 뜬 머리카락이며 거뭇한 찌꺼기를 밟은 발이 난감해 주방으로 달려갔다. 싱크대 위로 발을 들어 올린 채 수도꼭지를 틀었다. 발을 문질러도 께름칙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자신이 살았던 흔적조차 지우지 않은 사람에게 화가 났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나는 꼬박 이틀간 망가뜨린 걸 고치고 청소를 했다. 다음 사람을 위한 배려가 아니었다. 한 푼이라도 보증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전에 살던 사람이 이해가 갔다. 보증금을 떼일 염려가 없으니 굳이 청소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제야 집에 문제가 있으면 관리실에 연락하라던 주인 말이 생각났다. 욕실 바닥에 물이 흥건해도 걱정하지 않았다. 앞으로 고장이 생겨도 마찬가지였다. 주인의 말이 이국의 언어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다음 날부터 살림살이를 사러 다녔다. 물건이 늘어도 남편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유학생 시절부터 집에 들어오자마자 곯아떨어지지 않으면 방에서 나올 줄 몰랐다. 말의 갈증에 시달릴 겨를도 없는 것 같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집에 들어서기 바쁘게 코를 곯았다.

밤마다 선잠을 잤다. 옆집 남자의 술주정과 윗집 아기의 잠투정과 또 어느 집 강아지 짖는 소리에 뒤척이며 안간힘을 썼다. 어떤 날은 잠자리에서 빠져나와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무엇을 써야할지 막연했다.

 

한 시 반에 온다던 수리 기사는 두 시 반이 넘어 벨을 눌렀다. 꼬박 육 년간 제대로 따져 본 적 없는 나는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막상 기사의 못마땅한 표정을 보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관리실로 전화를 걸었을 때 여직원이 전화통에다 대고 연신 하품을 했다. 벽시계가 한시가 가까운 걸 확인한 나는 우물 쭈물거렸다. 잠을 깨웠다는 미안함만은 아니었다. 한입 가득 모래를 문 것처럼 말이 서걱거리는 느낌이었다. 무슨 문제냐고 묻는 여직원의 말꼬리가 올라가 긴장이 되었다. 샤워 꼭지에서 물이 새구요, 다음은. 아니, 또 있어요? 나는 입을 벌린 채 메모지에 적힌 다섯 개의 번호를 셀뿐이었다. 심호흡을 하는데 기사 방문하면 직접 이야기하라고 했다.

고장 난 게 뭐냐며 집 안으로 들어서는 기사는 퉁명스러웠다. 메모지를 만지작거리던 나는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샤워 꼭지에서 물이 새구요, 화장실 하수구가 막혔나 봐요. 다음은 안방 형광등이 한참 만에 불이 들어와요. 이것보세요. 그런 걸 왜 우리한테 말해요. 여직원 못지않게 거칠었다. 그럼 누구한테 말해야 하냐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기사 손에는 연장통은 고사하고 드라이버 하나 들려 있지 않았다. 먼저 화장실을 들여다보더니 샤워꼭지는 집주인이 바꿔 단 것이라 손 봐 줄 수 없다고 했다. 하수구는 하수구 뚫는 세제를 사다 부으란다. 주방 수도꼭지 역시 샤워꼭지와 마찬가지라고 했다. 나사 하나가 달아나고 없는 현관문 닫힘 방지 도어 스토퍼를 툭툭 찼다. 기사가 조끼 주머니에서 나사못과 드라이버를 꺼냈다. 그러나 나사못은 대가리가 툭 튀어나와 아무리 봐도 제자리가 아니었다. 마지막 하나는 뭐죠? 안방으로 들어가 형광등을 켰다. 스위치를 내렸다 올린 기사가 이런 것까지 말하면 어떻게 하냐고 했다. 저기 저 작은 전구가 다 됐네요. 이런 건 직접 바꾸세요. 훈계하듯 소리를 높이는 기사 얼굴에 성가신 표가 역력했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끝까지 입 한번 열지 못했다. 기사는 대체 왜 화를 내는 걸까. 단지 직접 고쳐야 하는 줄 몰랐을 뿐인데 그게 그토록 화를 낼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납득할 수 없는 것은 또 있었다. 집은 내가 고장 낸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직접 고치라는 것이다.

기사가 공연한 걸음을 했다는 듯 구시렁거리며 집을 나섰다. 문이 닫히면서 나사못이 툭 빠졌다. 현관 바닥에 뒹구는 나사못을 보자 몹시 기분이 언짢았다. 수리를 요청한 다섯 가지 중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셈이었다. 귓전에서 거친 소리가 쟁쟁 울렸다.

나사못을 들고 복도로 나갔지만 기사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난간에 기대 서 있던 여자가 몸을 틀었다. 지난번에 본 여자였다. 문소리가 컸던지 놀란 표정이었다. 나사못을 든 나는 억울한 상황을 하소연하듯 입술을 깨물었다.

 

토니가 보고 싶었다. 그는 오늘도 집 앞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버드와이저를 마실 것이다. 정년퇴직을 해 무료한 그는 이웃사람들이 드나들 때마다 일일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미세스 윤, 구름이 솜사탕처럼 먹음직하죠? 아니지, 당신은 구름을 타고 어디론가 가고 싶겠군. 중앙아메리카 코스타리카에서 이민 온 지 삼십 년이 가까운 그의 영어 발음은 팝콘이 튀듯 빠르고 요란했다. 스페인어로 착각할 정도였다. 나뭇잎에 빗방울 듣는 소리나 혀끝에 감기는 치즈처럼 부드럽지도 않았다. 지나치게 발음이 구를 때는 현기증이 났다. 알아듣지 못해 고개를 갸우뚱거리면 한 단어씩 천천히 발음했다. 남미 혈통의 도톰한 입술과 얼굴 근육이 씰룩일 때면 텔레비전에서 슬로우 모션을 보는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공연히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 잠깐 영어로 소통하는 어려움이 북받쳤는지도 몰랐다.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돌아와 한국말을 하는 순간, 미국에서 겪던 불편이 말끔히 사라질 줄 알았던 것이다. 답답한 나머지 느닷없이 현관으로 달려 나갈 때도 있었다. 아파트 복도에 토니가 있을 리 만무했다.

학교 가는 남편과 상후를 배웅한 뒤 먼 하늘을 보던 시절, 토니가 자못 다급하게 달려오곤 했다. 가쁜 숨을 고르며 눈을 껌뻑이는 표정에서 그의 말을 읽을 수 있었다. 도망칠 듯 주춤거리던 나는 또 아릿하니 아픈 귀를 열었다. 하지만 내 귀는 지독히 수신 상태 나쁜 라디오 같아서 앞뒤 뚝뚝 끊어진 몇 마디만 겨우 건져 올렸다. 넌 언제나 외로워 보이는구나. 널 보면 마음이 아파. 그에게 발끈했다. 그가 어떻게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나는 웃으며 영어를 잘 못하지만 외로울 건 없다고 했다. 나에게는 내 말이 있다고 큰소리를 치고 싶었다. 또한 글이 있다는 자존심으로 꼿꼿하게 고개를 세웠다. 그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내 말 뜻을 아냐고 되물었다. 소리 없이 웃으며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내 말의 갈증을 안으로 끌어안았다. 하루 종일 하는 일상적인 몇 마디와 함께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고통도 눌렀다. 이미 미국인인 그가 내 고통을 알 리 없었다. 어떤 날은 종일 뭘 하는지 궁금해 했다. 책을 읽는다고 하자 그런 생활이 불편하지 않은지 물었다. 나는 사람들과 생각이나 마음을 나누던 때가 그리운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말을 하지 못하는 만큼 그리움이 커진다고 했지만 제대로 표현한 것 같지 않았다. 무슨 뜻인지 안다는 그의 눈이 촉촉해 보였다. 그 눈을 보고는 웃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를 이해한다고 여기지도 않았다. 이미 그가 모국어를 잊었다고 단정했던 것이다.

그와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서기 바쁘게 귀이개부터 찾았다. 알아듣지 못한 말이 걸렸는지 귀가 가려웠다.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했다면 갈증을 느끼지 않았을까.

긴 형기를 마치고 출옥하듯 토니를 두고 떠나오던 날, 그가 나를 안고 울었다. 그를 따라 눈시울을 적시면서 비로소 내가 고통스러워하던 말이 실은 별 것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까지 말은 나를 가두는 감옥이었다.

 

옷장을 비롯해 가구를 몇 가지 샀다. 배편으로 부친 이삿짐이 도착하는 대로 정리하려면 미리 준비해야 했다. 생활에 필요한 전자제품은 빠짐없이 샀다. 주민센터를 찾아가 전입신고도 마쳤다.

내가 생활의 모양새를 갖추는 동안, 상후는 서툰 말과 부딪히고 있었다. 전화를 걸면 더듬거리다 영어가 튀어나왔다. 친정아버지가 집에서 한국말 안 썼냐고 나무랐다. 미국 가자마자 유치원에 들어가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고 온 상후는 영어가 편할 수밖에 없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말은 문제없다고 해도 못 알아듣는다는 거였다. 외손자가 미국놈도 아닌데 답답해 죽겠다며 혀를 찼다. 아무래도 사투리와 억양 때문인 것 같았다. 평생 남도에서 산 엄마 아버지에게 표준말을 부탁할 수도 없었다.

불현듯 토니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난감해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토니의 말이 팝콘 튀듯 했다면 상후에게 사투리가 어떻게 들릴지 궁금했다. 내 아들이 갈증을 느끼는 말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에 나직이, 숨을 들이마셨다.

가구가 배달되었지만 우선 책꽂이가 주문한 디자인과 달랐다. 책을 많이 꽂기 위한 단순한 모양이 가운데 서랍이 달린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서랍장에는 긁힌 자국이 선명해 속이 끓어올랐다. 기사는 자신은 배달만 할뿐이라고 했다.

가구점에 전화를 걸어 왜 물건이 다르냐고 물었다. 높고 거칠어야 할 언성이 푹 수그러들었다. 나는 손님으로서 당당하게 항의하는 게 아니라 억울한 일을 당한 뒤 아무나 붙잡고 울먹이는 꼴이었다. 아유, 물건이 마음에 안 드세요? 서랍이 있으면 잡동사니도 넣을 수 있고 사실은 그게 더 좋은 건데. 요즘 손님들은 그걸 더 많이 찾아요. 제가 원한 건 이게 아니잖아요. 목소리는 여전히 높지 않았다. 아니, 글쎄 그게 쓰임새도 있고 손님들이 더 많이 찾는다니까 그러시네. 그녀는 막무가내로 좋은 물건을 보냈으니 써보라고 했다. 내가 필요로 하는 쓰임새는 그녀 안중에 없었다. 속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끓어올랐다. 써 보시면 후회 안 하실 거예요. 그제야 겨우 서랍장에도 긁힌 자국이 있다고 했다. 박스에 쓸려서 그러니까 걸레로 닦아주면 금방 없어져요. 정 싫으면 그쪽으로 배달 가는 기사 편에 서랍만 하나 바꿔 드릴게요.

날마다 기사를 기다리지만 소식이 없었다. 내가 사는 방향으로는 통 배달할 일이 없는 모양이었다. 서랍 달린 책꽂이와 성치 못한 서랍장을 강제로 떠맡다시피 한 나는 그것들이 못마땅해 눈을 돌렸다. 반품시키겠다고 큰소리 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건 시간이 한참 지난 뒤였다. 나는 소비자의 당당한 권리 행사도 할 줄 몰랐다. 더군다나 이제 말은 입안의 혀보다 자유로운 것이었다. 더 이상 토니와 옆집에서 살지도 않았다.

자유롭게 말을 구사하지 못했던 꼬박 여섯 해. 처음에는 한국에서의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벗어났다는 자유로움에 불편을 느낄 새도 없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텔레비전을 켜놓고 화면만 보고 있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이 울고 웃는 이유는 늘 불분명했다. 동네 사람들이 손만 흔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루 종일 혼자 있다 보면 입에서 군내가 났다. 느닷없이 남편에게 언제 공부가 끝나는지 묻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에서의 시간이 살아 꿈틀댄다는 생각을 하자 더럭, 겁이 났다. 민감한 촉수들이 짚어내는 부자유함 앞에서 나는 꼼짝없이 지난 시간에 갇혀 헤매고 있었다. 그전까지 말이 사람을 구속할 줄은 차마 알지 못했다.

 

 

작가의 말_ 4

 

장미터널_ 10

안구건조증_ 38

대머리독수리_ 66

갇힌 말_ 94

스테파니와 손을 잡다_ 124

숨은 새_ 150

애벌레_ 178

고치 속에서_ 206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_ 232

명동 주민센터를 찾아가다_ 258

정혜련

 

 

경남 사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늦가을, 경남 마산으로 옮겨 앉았다. 본적이 도시로 바뀌었다.

자식 인생에 도움 되기를 바란 아버지의 뜻이었다. 소설에 간간이 M시가 등장하는 걸 보면 영향이 없지 않은 모양이다.

넓은 줄 알았던 도시가 갑갑했고, 떠돌면서부터 M시 출생이라고 밝혔다. 떠돌다 미국에서 살던 시기, 단편소설 연 날리는 아이가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썼다.

숭의여대와 경희사이버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첫 번째 소설집 오피스텔 토마토를 펴낸 뒤 십 년이 흘러 두 번째 소설집 갇힌 말을 내놓는다.

어찌되었든, 한눈팔지 않고 걸었고 또 묵묵히 걷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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