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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회장댁 역사적 가을
이연주
소설
신국판(152*225)
2019년 07월 20일
979-11-5860-673-2(03810)
13,000원

약속 파기로 야기된 한 집안의 대립 ‧ 갈등 ‧ 해결 과정을 통해
상생의 중요성을 강조한, 일종의 알레고리 기법으로 써진 가족 소설

 

  이 소설은 2016년 첫 촛불 집회가 열리던 시월 마지막 토요일 저녁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실향민이자 대한빌딩 소유주인 최대한의 일흔 번째 생신날, 일 년 전 불륜 사실이 발각되어 그 무마용으로 대한빌딩 소유권을 처 도축자에게 양도하겠다는 걸 전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표하기로 각서까지 써 주었으나 최대한은 이를 묵살한다. 이에 분노한 도축자는 각서 봉투를 가져와 공개하지만 그 속에는 빈 편지지만 들어 있다.
  최대한과 첩자의 소행이라고 판단한 도축자는 사흘 내로 자수하지 않으면 경찰에 수사 의뢰하겠다고 선언하고, 최대한은 고명딸 최정혜를 시켜 은밀히 설득을 시도하나 무위에 그친다. 사흘이 지나도 변화가 없자 도축자는 행동에 옮긴다. 가족 중 유일하게 도축자의 말을 믿는 막내며느리 강지혜가 참다못해 자신이 범인을 밝혀내겠다고 자청한다. 그 때문에 강지혜는 가족들의 눈총을 받고, 그런 가운데 범인 찾기에 골몰하지만 범인은 오리무중이다. 
  종질이자 관리소장인 도철식의 조언을 받는 도축자는 최대한을 압박하기 위해 불륜 사진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흘려도 보고 투신 쇼까지 벌여 보지만, 죽마고우 박유식의 조언을 받는 최대한에게는 먹혀들지 않는다. 이에 도철식은 초교 교장 출신의 장인환(최대한의 자형)에게 익명으로 최대한의 불륜 사실을 제보하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장인환은 최대한을 압박해 마침내 자백을 받아낸다.
  그러나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도축자는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최대한을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가정의 평화와 강지혜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착각했노라고 거짓 실토한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최대한의 의도대로 해결되는 듯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강지혜가 집요한 노력 끝에 범인을 밝혀냄으로써 상황은 극적으로 반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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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본문 내용

 

  “영감!!!”
  그때였다. 도축자가 숟가락을 딱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마치 건물 전체가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어마지두에 놀란 눈들이 허공에서 한동안 어지럽게 뒤섞였다. 기함한 아이들은 더러는 소리 내어 울음보를 터뜨렸고, 더러는 본능적으로 제 부모의 품속으로 얼굴을 묻으며 자지러졌다.
  “이게 뭔 소리여. 지진인가?”
  최대한이 최숙희의 잔에 술을 따르다 말고 귀를 쫑긋했다.
  “보자보자 하니……. 영감, 참말로 자꾸 엉뚱한 소리하며 미꾸라지모양 요리조리 피할 참이요?”
  얼굴이 붉게 부풀어 오른 도축자가 금세 최대한의 멱살을 틀어쥘 듯이 눈씨를 곧추고 대들었다.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최대한이 치던 술을 계속 치며 점잖게 일렀다.
  “아범아, 네 어미 안방으로 모셔라. 술이 좀 과한 것 같다.”
  최갑부가 일어섰다.
  “나라, 이놈아.”
  최갑부가 어르며 팔을 끌어당기자 도축자는 최갑부의 팔을 사납게 뿌리치며 악다구니를 썼다.
  “어머님, 흥분하지 마시고 차근차근 말씀해 보세요. 아버님께서 무얼 발표하기로 하셨는데요?”
  그때 얌전히 수저질하던 강지혜가 머리를 들고 참견했다. 최정혜는 바짝 신경이 곤두섰다. 한 차례 맞은쪽 허경화와 눈빛을 교환했다.
  “그러니까 바로 지난 연말에 네 시아비가 나한테 분명히 약조했니라. 칠순 생신날 우리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오늘 이후부터 이 건물의 소유권을 나한테 넘기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로…….”
  “예?”
  도축자의 말에 모두가 놀라 동시에 소리쳤다.
(본문 32쪽)


  “우연의 일치일 거예요. 만일 아버님과 작은동서가 내통해 사전에 바꿔치기했다면 아버님께서 굳이 의심받을 작은동서에게 시키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니까 아가씨의 의심이 성립되려면 즉석에서 바꿔치기한 것이 되어야 하거든요. 아가씨의 말처럼 작은동서가 방 안에서 얼쩡거렸다 해도 그 인터벌이란 게 사실 극히 짧은 시간이에요. 어머님께서 봉투를 뜯으실 때까지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봉투의 외양이 자신이 보관한 거랑 똑같았다는 뜻이잖아요. 설령 작은동서가 아버님의 마음을 귀신같이 꿰뚫고 흑심을 품었다 해도 그 짧은 시간에 신이 아닌 이상 완전범죄를 저지른다는 건 불가능해요. 극단적으로 이런 가정을 상정해 볼 수 있어요. 아버님과 작은동서가 내통해 미리 빈 편지지가 든 봉투를 준비해 두었다가 ‘만일 네 시어미가 그걸 언급하면 내가 너에게 시킬 테니 네가 감쪽같이 바꿔치기해서 가져 오너라.’라고 입을 맞추었을 수는 있어요. 이 가정이 성립되려면 아가씨의 합리적 의심을 부정해야 하거든요. 일반적으로 사람의 심리가 그래요. 자신의 의심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더 민첩하게 행동하지 그렇게 턱없이 거레를 떨었을까요. 이런 정황들을 놓고 볼 때 아버님과 작은동서가 내통하거나 교감해 바꿔치기 했다는 건 어불성설이에요.”
  “그럼 누굴까요. 설마 큰올케가……?”
  최정혜는 갑자기 오싹한 생각이 들었다.   
  “형님도 아닐 거예요.”
  “그럼……?”
  “저는 상상 임신과 흡사한 거라고 생각해요. 왜, 임신에 집착하다 보면 임신하지 않았으면서도 마치 임신한 것처럼 입덧도 하고 그런다잖아요. 이번 일도 그것과 흡사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각서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거죠. 말하자면 유령 각서죠.”
  “각서의 내용이 너무나 구체적이었잖아요.”
  “역설적으로 그게 유령의 결정적 증거죠. 원래 거짓말이 참말보다 더 논리적이고 구체적이고 화려한 법이거든요. 그게 거짓말의 비극적 아이러니죠.”
(본문 54쪽)


  “제가 그러지 않았어요, 아버님.”
  강지혜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가 한 것이 아니라고?”
  “네.”
  “그런데 무얼 꿰뚫어보았다는 게냐?”
  최대한은 지혜의 말을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님께서 저더러 ‘지혜야, 내 말 알아들었느냐?’ 하셨을 때, 제 귀에는 그 말이 이렇게 들렸어요. ‘지혜야, 지금 네 시어미의 마음이 몹시 들떠 있구나. 혹시 그런 게 있거들랑 네 시어미의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가능하면 천천히 가져오너라. 알아들었느냐?’ 그래서 그대로 실천했을 뿐이에요. 방 안에 들어가 크림통 안에 든 열쇠를 꺼내기 전에 천천히 열을 세고, 다시 장롱 문을 열기 전에 또박또박 열을 세고, 다시 자개함에 열쇠를 꽂기 전에 껌을 씹듯 꼭꼭 열을 세고, 다시 봉투를 꺼내 가슴에 모아 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직이 열을 센 뒤 가지고 나왔을 뿐이에요, 아버님.”
  “허허, 이런 변이 있나?”
  최대한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혜의 대답에 어안이 벙벙했다.
  “아버님, 어머님의 말씀처럼 작년에 정말 그런 각서를 써 주신 적이 있으세요?”
  지혜의 물음에 최대한은 얼른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아버님,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진상 파악부터 제대로 되어야 해요.”
  지혜의 다그침에 최대한은 문득 아까 장인환이 한 말이 떠올랐다.
  “사람의 뇌에는 치욕, 충격, 공포, 슬픔 등과 같은 망각하고 싶은 특정 기억을 잊게 하는 그런 기능이 있다는구나.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봐도 나는 그런 각서를 써준 기억이 없는데, 네 시어미가 저렇게 길길이 날뛰며 완강히 버티니 마구잡이로 생트집을 부리는 건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내가 써준 듯하구나. 무슨 좋은 방도가 없겠느냐?”
  최대한은 별 수 없이 지혜에게 망각이라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솔직히 실토하고 말았다. 그 순간 강지혜가 가슴이 내려앉도록 긴 한숨을 쉬었다.
(본문 145쪽)


  강지혜는 소식을 듣자마자 황급히 본가로 내려갔다. 도축자는 기척 없이 안방에 누워 있었다. 늘 켜놓던 텔레비전도 켜지 않은 상태였다. “어머님, 저예요.” 그제야 돌아누운 몸이 꿈틀거렸다. “지혜냐?” 도축자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눈두덩이 부어 있었고, 눈자위에는 물기로 번들거렸다.
  “왜 갑자기 그러셨어요?”
  강지혜가 안타까워 말했다.
  “방법이 없었다.” 도축자가 긴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내가 졌다.”
  “아직 기회가 있어요. 힘을 내세요, 어머님.”
  “다 끝났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다.”
  “저는 어머님의 말씀을 믿어요.”
  “참말이 반드시 거짓말을 이기는 것은 아니다. 그게 세상이다.”
  “어머님, 죄송해요.”
  강지혜가 울먹였다.
  “나는 여태껏 네 시아비가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숨 쉬는 짐승도 아니고 바위였다. 바위는 벼락이나 다이너마이트가 아니고는 깨뜨릴 수가 없다. 그래서 차선책을 택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 명예와 빌딩을 잃는 대신 가정의 평화와 널 지키기로 말이다. 늙어빠진 주제에 그 따위 명예나 빌딩이 뭐 그리 중하겠느냐.”
  “정말 죄송해요, 어머님.”
  강지혜는 소리 내어 울었다.  
(본문 335쪽)


  “아버님, 방송으로 촛불 보셨죠?”
  강지혜가 차분히 말했다.
  “너도 촛불이냐?”
  최대한이 기겁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저는 촛불이 아니라 아버님과 어머님께는 순한 양이고, 아가씨에게는 까칠한 불여우고, 병부 오빠에게는 어여쁜 연꽃이에요.” 그리고 잇대어 말했다. “이 세상에 촛불을 들고 싶어 드는 사람은 없어요. 들지 않을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드는 거예요, 아버님.”
  “지혜야, 이번 한 번만 눈감아 주면 안 되겠느냐? 대신 그에 따른 보상은 넉넉히 하마.”
  최대한이 애걸하듯 말했다.
  “진실은 눈감는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아버님. 어제 아버님께서도 말씀하셨잖아요.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고 이것은 만고의 진리라고요. 구름이 잠시 태양을 가릴 수는 있어도 영원히 가릴 수는 없다고도 하셨고요.” 강지혜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버님, 섭섭하시겠지만 제 말씀을 들으셔야 해요. 그래야만 우리 최씨 집안의 미래가 있고 아버님의 명예가 보장돼요. 만일 아버님께서 계속 고집을 부리시면 저 역시 촛불을 들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아버님의 명예는 물론이고 고모님과의 약속도 지킬 수 없게 돼요.”
  “지혜야!”
  최대한이 불쑥 무릎을 꿇을 것만 같아 강지혜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
(본문 357쪽)

 


  이 소설은 요소요소에 촛불 집회로 촉발된, 당시의 급박한 정국 상황을 뉴스 형식으로 전달하고 종국엔 사건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촛불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단순한 가족 얘기가 아니라 다른 어떤 함의(알레고리 형식의 작의)가 숨어 있음을 마침내 드러낸다.

작가의 말 4

 

프롤로그 8

 

첫째 날 14

둘째 날 70

셋째 날 130

넷째 날 168

다섯째 날 200

여섯째 날 236

일곱째 날 260

여덟째 날 284

아홉째 날 306

열째 날 328

마지막 날 344

이연주(李淵柱)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91년 대구 매일신문신춘문예에 당선하고, 1993현대문학의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대구소설가협회장, 정화중·정화여자고등학교장을 역임했으며, 2014년 대구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그리운 우물과 장편소설 탑의 연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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