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 서평
보석은 왜 아직도 기술과 장식의 언어로만 읽히는가? 오래된 경계를 넘어, 보석의 미학을 다시 묻는다!
『보석, 공예에게 길을 묻다』는 보석을 단순한 장신구나 공예의 하위 범주로 다루지 않는다. 저자는 “Why!?”라는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물음에서 출발해, 왜 수만 년의 역사를 지닌 공예조차 미술의 중심에서 밀려났는지, 왜 보석은 독자적인 담론과 이론을 갖지 못한 채 기술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지를 정면으로 추적한다. 이를 위해 인류사와 고인류학, 공예사와 서양미학사, 광물학과 보석학을 함께 가로지르며, 보석을 둘러싼 기존의 위계와 관성을 다시 검토한다. “회화와 조각, 디자인의 영역에는 이론서와 역사서가 넘쳐나지만, 보석 조형에 관한 책은 찾기 어려웠다”는 문제의식과, “그날의 각성 이후, 책을 쓰는 내내 나를 이끈 것은 팔 할이 사명감이었다”라는 고백은 이 책 전체를 밀고 가는 힘이다. 공예가 실용의 프레임 속에서 어떻게 축소되어 왔는지, 보석은 공예와 닮았으면서도 착용과 욕망, 상징의 차원에서 왜 다른 결을 지니는지,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왜 보석미학은 별도의 사유와 체계를 필요로 하는지, 저자는 집요하고도 단단하게 논증해 나간다. 이 책은 보석을 다시 보게 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예술을 구분해 온 오래된 기준 자체를 다시 묻게 한다.
■ 서문
알타미라.
동굴 방문 후 ‘인류는 2만 년 동안 나아진 것이 없다’라고 말한 피카소의 말은, 훗날 호사가들에게 ‘알타미라 이후 모든 예술은 퇴화했다’라는 극적인 말로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책을 집필하면 할수록 거장의 메타포가 조금은 이해됐다. 감히 말하자면, 그것은 형이하학적인 당시 기법이나 기교에 대한 오마주가 아니었다. 오히려 새겨진 벽화의 근원과 지향에 대한 철학적 고민. 더 나아가 발견 이후 펼쳐질 예술에 대한 형이상학적 전개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예술을 넘어선 인류에 대한 경외였다.
보석을 조형언어로 사용한 지 제법 오래되었다. 금속공예로 시작한 작가의 삶이었지만, 어느 순간 내겐 보석 그 빛 자체가 뮤즈가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장식이 아닌 조형예술의 한 장르로서 보석에 관해 묵상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발단은 단순히 “Why!?”라는 물음에서 비롯되었다. 보석은 둘째치더라도, 왜 수만 년의 역사를 지닌 공예조차 미술의 영역에서 이토록 입지가 약한 걸까. 공예인들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술사는 차치하더라도, 어째서 미술에서조차 그러한가.
예술 분화의 피뢰침과도 같았던 현대미술에서도 왜 회화와 디자인의 영역에조차 공예가 그 입지를 타진해야 하는 상황까지 왔을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서자庶子의 설움을 넘어 아버지가 집안에서 쫓겨난, 말 그대로 주객이 전도된 형국에 대한 탄식.
고백하자면, 집필 과정은 앞선 저 대가의 한 문장처럼 낭만적이지 않았다. 고도의 집중과 통찰을 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료가 없었다. 이점은 국내외가 마찬가지였다. 도서관에서 자료수집을 하던 내게 이 부분은 좌절보다는 일종의 각성으로 남았다. 실마리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회화와 조각, 디자인의 영역에는 이론서와 역사서가 넘쳐났지만, 보석 조형에 관한 책은 찾기 어려웠다. 이론과 역사의 부재. 그날의 각성 이후, 책을 쓰는 내내 나를 이끈 것은 팔 할이 사명감이었다.
최근 들어서야 출판이 잦아진 유럽의 보석 관련 서적들은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나마 적은 자료들은, 그마저 동일 사건에 관해 서로 다른 내용들이 제법 있었다. 와중에도 자료 자체가 귀했기에 나는 문학적 상상력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애썼다.
긴 고민 끝에, 첫 장은 ‘인류의 진화’에 관한 것으로부터 시작하였다. 간단한 책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보석미학에 관한 역사와 철학을 쉽게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수년에 걸친 내 작은 노력들이 보석미학의 미래와 지향에 관한 작은 소실점이 되어주길 바란다.
2026. 03. 01. 김연경
■ 본문 중에서
# 지금 이 순간에도 고인류사는 진행 중이다
생각보다 인류진화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지 않다. 첨단을 넘어 초첨단에 적응하기도 버거운 현대인들에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가끔 해외토픽에서 나오는 고인류학의 새로운 발견들은 그래서 흥미롭지만 낯설다. 그래서인지 우리들은 그 발견들로 새롭게 시작되는 인류사의 재정립에는 무감각하다.
고인류학적 위대한 발견이 있을 때마다 인류의 조상이 바뀌고 연대기의 새로운 퍼즐들은 재설계된다.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고인류사는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보석미학 관련 이론 정립을 위해, 원서를 연구해 온 지 수년째이다. 어려웠던 점 하나는 몇몇 주요 사건들의 시기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고졸기로부터, 고대·중세·근대·현대의 자료도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자료들은 저자에 따라 많게는 수년에서 수십 년의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외려 선사시대에 감사하였다. 선사시대의 그것은 기본이 수만 년이었던 것이다.
선사시대 흔적들은 그 시차가 수만 년에서 수백만 년이었다. 그제야 왜 공예나 보석의 이론서에 선사시대가 등장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됐다. 문자로 기록되지 않았던 선사시대의 모든 역사는 단지 유물의 발견으로만 추정되기 때문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보석미학에 초점을 맞춰 몇 개의 허들hurdle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마치 진리는 아니나, 공리公理로 이해되어 많은 문제의 해법을 도출해내는 수학 문제처럼.
나름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첫째, 큰 사건 중심은 선형적 방법으로 정리하기. 둘째, 각 시기보다는 그 주체와 특질에 집중하기. 마지막으로는 최대한 각 시대에 숨겨진 보석사에 주목하기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인류사는 진행되고 있다는 확신이, 조금이나마 이 영역의 문외한이었던 나에게 면죄부가 되어주길 바란다.
** # 공예가 예술이었는데, 분명
어느 순간부터 공예라는 것은 다양한 이유로, 예술적 측면에서 확실하지 않은 언어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류의 기원과 더불어 발달한 공예가 이러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 공예라는 용어 자체가 근대에 생겨난 프레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뒤늦게 이론적 정립을 시도하였더니 아이러니하게도 예술사에서 정통성 시비에 걸려들었다. 이미 수많은 미술사적 정리를 거듭하며 정립된 순수미술 장르에, 공예가 설 곳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순수미술과 공예로 미술사를 논하기 시작할 때 즈음하여, 이미 타 장르의 이론적·역사적 입지는 확고하였다. 이는 19세기 중반 서구 미학의 성립 시기의 일을 의미한다.
반면, 동양에서의 공예는 중국 당대 문헌 중 「염립덕전」책에 처음 나타났다고 알려져 있다. ‘夫差爲舟 內小函 本以工藝進 故立德與弟立本 皆以其巧有思 부차위수전 내소감 본이공예진 고립덕여제립본 개기교유사’
여기서 말하는 공예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용어에 한정되지 않고 더 광범위하여, 오늘날 일컫는 거의 모든 조형예술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 이처럼 당나라 이전부터 공예라는 말은 조형의 총체적 제작개념이었다. 그 시대 공工이란 매우 잘 만든다는 것을, 예藝란 기술을 뜻하였는데 이는 아주 뛰어난 기술을 의미했다.
이처럼 당나라 때에도 예술과 공예는 같은 뜻으로 폭넓게 사용되었다. 현재 한국은 일본에서 그들이 Industrial arts를 번역한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 번역어인 응용미술·장식미술·산업미술·생활미술 등의 용어도 공예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어 그 정체성에 혼란스러움을 가중하고 있다.
서양의 경우 공예를 뜻하는 단어로는 영어와 불어의 Craft 그리고 독일어의 Handwerk가 있다. 이는 당나라 때의 공예라는 용어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후 서양 문화의 변천에 따라 공예는 패러다임에 갇히게 된다. 공예가 예술 전반을 의미했던 시기가 저무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시기까지는 적어도 공예와 미술이 각자의 영역을 주장할 정도는 되었다. 이 점에 우린 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예와 미술의 분화에 관해 말이다.
이처럼 동·서양의 공예는 순수미술의 상위 개념이었다. 조금 더 명확히 하자면, 총체적 예술 그 자체를 의미했다.
1800년경 영국 학계에서는 미술을 순수미술Fine Art과 응용미술Applied Art로 구분했다. 여기서 말하는 응용미술이 오늘날의 공예에 해당한다. 응용미술이란 이 말은 미술이란 주主에서 출발하는 응용이란 뜻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더 이상 공예를 응용미술이라조차 칭하지 않는다.
이전까지의 견고했던 공예의 독립성이 부정되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이었다. 수만 년 인류의 예술을 상징했던 공예는 불과 수백 년 만에 서자庶子가 되어버렸다. 나는 이를 두고 공예의 피격被擊이라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