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 서평
병과 늙음, 가난과 생활의 고단함을 지나오면서도 이 시집은 끝내 삶을 놓지 않는다. 약봉지를 ‘봉지꽃’이라 부르고, 빠진 이와 구멍 난 양말, 건망증과 우울, 상처 난 몸과 마음까지도 숨기지 않은 채 그대로 시의 자리로 데려와 웃고 견딘다. 순천의 들과 갯벌, 고향의 사투리와 일상의 풍경이 투박하고 정직한 언어로 살아 움직이며, 한 사람의 생이 지나온 세월의 멍과 온기를 함께 증언한다. 『멍든 사나이』는 잘 다듬어진 관념의 시집이 아니라, 삶에 얻어맞고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의 육성으로 읽히는 시집이다. 아프고 서글픈 순간마저 끝내 행복과 사랑의 쪽으로 돌려 세우는 이 목소리는, 오래 살아낸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진심으로 독자의 가슴에 남는다.
■ 본문 중에서
**투병 1
독자 여러분 난 이렇게 산다 암 투병 후 하루하루 생명줄 늘리려고 이 병원 저 병원 발품을 팔고 약 처방 받아서 약국으로 향한 발걸음 가볍다 약국에서 약을 탄다 1개월 2개월 6개월 수북하게 준다 그럴 때마다 난 마음속으로 봉지마다 꽃을 달아 놓는다 요놈이 나의 생명줄이다 생각하고 아침저녁으로 봉지꽃을 따서 입속으로 향한다 그중에서 꼭 말썽을 피운 약이 있다 요놈 잘 다스리고 가슴 두드리면 그때야 목구멍으로 쑥 내려간다 꾸역꾸역 그래도 살고 싶은 욕망으로 하루하루 봉지꽃을 따먹고 살아간다 난 행복하다 오늘도 세상맛을 느끼고 산다 이 시간도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인생
미스코리아 온몸 롱다리 코 입 눈 쌍꺼풀 속눈썹 완벽해야 미스코리아
수석 목돌은 어떠한가 곰보딱지 입이 찢어지고 이마는 울퉁불퉁 눈구멍 쏙 들어가고 들창코에 앞니 빠진 것이 최고의 미스코리아
우리가 살면서 수많은 사람 만나고 헤어지지만 못났든 잘났든 어울림에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닌가 자만하지 말고 마음에 행복이 뿌리내리면 우리의 멋 코리아가 아닌가 싶다
*조심
조용한 산골마을 음산하게 울어대는 고양이 골목 어귀마다 땅 헤집고 똥을 싼다 뒷집 할배 옆집 할매 논두렁 콩 심으러 가다가 똥을 밟고 씨부렁씨부렁 영어 해댄다 에이 씨 에이 씨 신발을 툭툭 치며 엉그적엉그적 콩 심으러 간다 고양이 밥 주는 사람 있어도 똥 치우는 사람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