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의 말
건강수명이라는 말이 있다. 질병이나 장애 없이 건강하게 생활하며 여행이나 취미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한다. 2023년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건강수명은 71.3세, 여성은 75.0세, 기대 수명은 평균 83.6세로 발표되었다. 이는 OECD 국가 평균인 80.3세보다 높은 수치다. 결혼 50년 이상을 함께한 75세 이상 생존 커플은 약 8만 쌍이며, 80세 이상 커플은 약 3만 쌍으로, 전체 기혼자 수 2천2백15만 쌍 중 0.135%에 불과하다. 이들의 관심사는 개인에 따라 다양하지만, 경제력과 건강이 허락된다면 여행을 가장 선호한다고 한다. 인생 말년에 새로운 경험을 통해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희망 때문이다. 70대 중후반에서 80대 초반의 한국인들은 이러한 희망을 원하지만, 막상 실현된다고 해도 어디서 무엇을 경험하고, 그 지식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한 예비 지식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 책은 서유럽으로 금혼여행을 시도하는 부부에게 예비 지식을 갖는 데 도움을 드리고자 한다.
제1부 〈금혼여행 서유럽을 가다〉에는 프랑스 파리, 스위스 뮈렌, 융프라우, 이탈리아 밀라노, 로마, 시에나, 피렌체, 베네치아 등 서유럽의 주요 관광지의 풍경과 직접 체험한 새로운 지식, 역사, 인물, 문화, 전설 등을 연도와 출처, 해설과 함께 수록했다. 이는 여행을 계획하는 독자, 특히 회갑, 고희, 금혼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여행지에 대한 이해와 즐거움을 장문의 기행수필 형식을 빌려 기록했으며, 독자층을 중·장년으로 잡았기에 단어 및 문장을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
제2부 〈하늘바람〉은 오랫동안 모아온 단문 중에서 자연과 인간, 특히 우리 사회를 넓은 시각으로 바라본 글들을 선별하여 수록했다. 당시 나의 시각을 담아내고자 노력한 수필 형식의 산문이다.
제3부 〈푸른 전쟁〉은 유무형의 사물 사건이나 의견에 대한 개인적인 항변과 반성을 자전적 수필 형식으로 담았다. 2부와 3부에 실린 글들은 신문, 문예지, 잡지 등에 게재된 것 중에서 추린 것도 있으며, 내 인생의 정신적 과정을 반영했다.
■ 본문 중에서
잠깐이나마 햇살이 내리고 푸른 초원과 그늘이 있고, 밥과 김치, 고추장이 있고, 한국서 가져온 소주 한 잔이 있다. 이국에서의 소풍치고는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파리 여행의 피곤함이 한꺼번에 달아났다. 초등학교 때 소풍 같은 유럽 여행, 이것도 낭만 있는 여행의 한 토막이 아닌가. ‘오래된 미래’라는 말이 있다. 얼핏 생각하면 시공(時空)이 맞지 않는 문장이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시공의 한계가 아닌 연속적인 의미도 있다. 지나갔지만 다가올 시간, 얼빠진 투쟁 속에서 이 세상 누구만큼 그를 사랑했고, 누구만큼 빛나는 존재였다는 것을 기억한다. 죽음이라는 명제를 향한 외길을 걷는 이쯤에서면 어떻게 떠날지도 대충 안다. 그러기에 낯설지 않은 미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오래된 미래’다.
그네 틀 위에서 남색 통치마를 입은 아낙들이 검은 머리에 자줏빛 댕기를 날리는 모습은 마치 속박을 벗어나 자유로운 하늘로 날아오르는 한 마리 학이었다. 옥죄인 삶으로부터의 탈출이자 자유였다. 그넷줄이 바람을 가르며 앞뒤로 흔들릴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설영도 그네를 타고 싶었다. 5월의 하늘바람이 되어 훠이훠이 푸른 하늘을 날고 싶었다. 백두대간에 갇힌 채, 예절이라는 굴레에 숨죽인 그녀는 가끔 경포 호수 위를 날고 있는 갈매기가 되고 싶었다. 사계는 다 그들만의 존재가치가 있지 않은가. 봄의 화려함, 여름의 정열, 그리고 겨울의 냉철함이 그것이다. 가을은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온 힘을 기울인 열과 냉이 결합한 결과물을 낳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