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인생의 골목마다, 노래 한 송이가 피어난다. 마이크를 잡던 손으로, 이제 마음을 튜닝하다.
오랜 세월 음악활동을 하며 DJ로 살아온 김상아는, 사람과 노래를 매개로 세상을 이해해 온 사람이다. 그가 잠시 마이크를 내려놓고 펜을 잡을 때, 그 손끝에서 흘러나온 문장들은 여전히 음악의 리듬을 닮아있다. 『동작골 노래꽃 피는 집』은 그가 걸어온 삶의 트랙 위에 피어난 노래이자, 잊힌 이들의 사연을 다시 튜닝하는 산문집이다. “그곳에 가려면 길을 알아야 한다”는 문장처럼, 그는 인생의 굽이마다 숨어있던 음을 찾아 나선다. 가난했던 시절의 막걸리 냄새, 사랑의 뒷모습, 이름 모를 노래와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의 문장에서 다시 울린다. “꽃씨보다 많은 노래”가 피어나는 동작골의 집은, 결국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기억의 무대다. 오래된 턴테이블처럼 서걱이지만 따뜻한 이 문장들은, 노래로는 다 부르지 못한 생의 잔향을 대신 전한다. 김상아는 여전히, 세상을 향해 ‘온기와 노래의 주파수’를 맞추고 있다.
■ 작가의 말
나는 아직도 꿈을 짭니다. 그 시작은 퍽 오래전입니다.
덜커덕 덜커덕 진외가와 우리는 가까이 살았습니다. 덜커덕 덜커덕 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쪼르르 진외가로 달려갔습니다. 아마 서너 살 때였을 겁니다.
덜커덕 덜커덕 진외할머니는 한쪽 발을 못 쓰는 분이었습니다. 들일을 못 하는 대신 늘 길쌈을 했습니다. 나는 문지방에 턱 괴고 걸터앉아 씨줄 날줄 한 올 한 올 꿈이 짜이는 모습을 새겼습니다. 그때부터 나도 꿈을 짰습니다. 한 자 한 자 짜낸 또 한 필의 꿈을 포전布廛에 내놓습니다.
모두 아름다운 꿈 간직하시길…
2025년 서리 허연 날 동작골에서 김상아
■ 본문 중에서
그곳에 가려면 길을 알아야 한다
메뚜기 뛰노는 논둑길을 헤치고 미루나무 언덕을 올라 저수지를 끼고 가는 길 말고도 내가 걸어온 길 내가 걸어갈 길을 알아야 한다
그곳에 가려면 눈을 떠야 한다 여태 보았던 세상 말고도 사람 냄새를 기억하는 이라면 뭉게구름 내려앉은 듯 골 안 가득 들꽃 바다에 뜬 작은 섬을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는 귀를 열어라 돌담집 지붕의 박새 지저귐과 귀뚜리 태엽 감는 소리 말고도 개울물 바닥으로 별 굴러가는 소리 바람으로 돌리는 턴테이블 꽃씨보다 많은 노래 가만가만 술 익는 소리 세월 물레질 소리
그대 잠들지 못하리 어쩌면 세상에 다시없을 그곳에서는
─본문 「노래꽃 피는 집」에서
기억하나요? ‘한 섬’ 들목의 ‘바다 새’라는 커피숍을. 창문엔 늘 두툼한 커튼 자락이 반쯤 내려져 있고, 희뿌연 전구들이 바닷바람에 한들한들 졸고 있는 그 커피숍을. 손님의 그림자조차 보기 힘든 그 적막한 커피숍을 지나면 당신과 내가 매일 찾던 산책길이 시작되지요. 오른쪽에는 푸른 바다가 하늘만큼 펼쳐져 있고 왼쪽 언덕에는 해송들이 빼곡한 길. 그 길을 걸으면 비릿한 미역냄새가 나기도 하고 풋풋한 들풀냄새가 나기도 하는 그 길 말입니다. 인적 없는 그 숲길은 간밤에 내린 봄비로 처녀림 같은 신비감마저 돌고, 겨울을 견딘 뽕잎 하나가 나뭇가지 끝에서 풍경처럼 간당입니다.
우리는 그 길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눈빛으로 나누었지요. 대화의 마지막은 늘 그 어떤 고난이 와도 이겨내자는. 한순간도 떨어지지 말자는. 같은 날 같은 배를 타고 영원의 항해를 떠나자는.
보고 있나요? 그때 그 길을 지금 나 혼자 걷고 있다는 것을. 밀리는 파도도, 세찬 비바람도… 지워지지 않는 당신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되짚으며 걷고 있다는 것을. ─본문 「파도에 밀려오는 사랑의 기억―송민도 <나 하나의 사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