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아버지가 일군 들녘 위에 나의 시간이 뿌리내렸다
『아버지의 들녘, 나의 뜨락』은 저자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퇴직 후, 어린 시절 몸으로 겪은 농촌의 삶과 아버지의 노동을 기록한 수필집이다. 소와 염소, 거위와 제비, 반딧불이와 민물고기까지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던 농경시대의 풍경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모내기와 농약 살포, 새참 심부름과 홍수의 기억, 병상에 누운 아버지를 간병하던 시간들은 개인의 체험을 넘어 한 시대의 생활사를 드러낸다. 저자는 사라져가는 농촌의 냄새와 소리, 말없이 감당해온 아버지의 헌신을 담담한 문장으로 그려내며, 자신의 삶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조용히 되짚는다. 이 책은 아버지와 고향에 바치는 헌정이자, 지나간 농촌의 시간을 기록한 한 편의 삶의 연대기다.
■ 서문
고향을 떠난 지 어느덧 삼십 년을 넘어섰습니다. 그러나 내 삶의 뿌리이자 나를 있게 한 그곳이 단 한 순간도 잊힌 적이 없습니다. 고향은 늘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어, 그리움 속에서 언제나 미소를 짓게 합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뛰놀던 배꼽마당, 해가 저물어도 끝나지 않던 딱지치기와 구슬치기, 제기차기의 웃음소리. 여름날 산에서 소를 먹이며 흘리던 땀방울, 겨울날 얼어붙은 논에서 나무치기와 스케이트로 채워지던 시간들.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그 모든 순간은 내 마음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와 함께했던 동물 이야기는 내 청소년 시절의 가장 깊은 기억입니다. 1960년대 농촌은 사람과 동물이 함께 일구던 세상이었고, 그 속에서 나는 아버지의 손길과 함께 성장했습니다. 농경사회에서 공업사회로 넘어가던 그 과도기의 풍경은, 오늘날의 기계화된 농업과는 다른 정겨움과 인간적인 온기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농촌의 모습은 변했지만, 나는 여전히 고향을 찾아 동네 선후배들과 옛이야기를 나누며 그 시절을 되새깁니다. 고향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나를 길러낸 시간과 사람들의 기억이 모여 있는 삶의 근원입니다. 이제는 저세상에 계신 아버지께, 그리움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책을 바칩니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동물과 곤충, 그리고 사라져가는 농촌의 풍경을 기록하여 내 삶의 뿌리를 다시금 되새기고자 합니다. 이 책은 고향과 아버지께 드리는 작은 헌정이며, 동시에 나를 있게 한 세월에 대한 고백입니다.
2026년 봄을 맞이하며 임춘근
■ 본문 중에서
*나의 사랑 나의 아버지
아버지가 생전에 살아 계시는 동안 함께했던 동물, 곤충, 벌레 등을 대상으로 살아온 시골의 생활을 글로 표현하고자 한다. 농경시대의 동물과 벌레 곤충은 생활의 일부이다. 이들과 잠시라도 헤어질 수 없던 시절 “꼬끼오” 하고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에 깨어나 소를 위한 소죽을 끓이는 것이 하루의 출발이다, 사랑방에서 소죽 냄새가 그윽하면 부엌에서는 밥 짓는 냄새가 아이들의 잠을 깨운다, 형제가 많아 누가 밥을 먹었는지 누가 학교에 갔는지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늦잠이 많은 나로서는 행여나 학교에 늦을까 봐 이리저리 뛰면서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집을 나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밥을 짓고 남은 음식 찌꺼기를 기다리는 개는 가족의 밥상을 물리기만 기다리고 있다. 빨리 사람들의 식사가 끝나야 다음은 개들의 아침이기 때문이다. 개는 먼동과 함께 동네를 한 바퀴 돌아온다. 운이 좋은 날은 죽은 쥐를 가져오면 포식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쥐약을 먹은 쥐를 잡아먹다가 죽는 일도 가끔 있었다. 삼복더위를 위해 기르던 개가 죽으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른다. 이웃집에서 음식찌꺼기를 동생과 함께 수거해 오면 돼지들의 식사 시간이 시작된다. 수거한 음식찌꺼기와 등겨를 함께 섞어 주면 음식찌꺼기를 수거하던 고통도 순간 잊고 만다. 옆집의 음식찌꺼기는 음식뿐만 아니라 쌀 씻은 물도 포함되기 때문에 굉장히 무거웠다. 배고파하는 염소가 “엄매” 하고 초원이 무성한 들판으로 가자고 한다. 물론 겨울에는 마구간 옆에 두어서 소와 함께 먹이를 먹도록 하지만 초원의 풀이 무성하면 들판으로 안내해 달라고 소리친다. 긴 노끈에 말뚝을 고정하여 두면, 염소가 알아서 배불리 먹고 놀다가 저녁노을과 함께 해가 서산에 넘어가면 “엄매” 하고 주인을 찾는다. 학교에 다녀오면 제일 먼저 마중 나오는 것이 무엇일까 물어보면 대다수가 개라고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다. 대문 앞을 지키고 있는 거위다. 개가 마을 가고 없을 때는 거위도 한몫한다. 개가 도둑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거위가 집을 지키고 있다. 가끔은 동생들은 거위가 무서워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바깥에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집으로 들어오곤 한다. 거위는 낯선 사람이 오면 긴 부리로 사람을 물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