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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다
추호경
산문집
신국판/412쪽
2026년 2월 11일
979-11-6855-428-3(03810)
18,000원
■ 출판사 서평


이 책은 잘 살아왔는지보다, 오늘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를 묻는다. 하루를 시작하며 숨을 들이쉬는 순간,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빛,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감각 같은 장면들에서 저자는 자신의 현재를 확인한다. 오랜 시간 법의 현장에서 인간과 제도를 함께 마주해 온 그는, 삶을 판단의 대상으로 두기보다 견디고 바라보는 태도를 선택해왔다. 그 선택은 일상의 말로 이어지며 삶의 결을 천천히 드러낸다.
수필들은 특별한 사건 없이도 읽힌다. 아내가 건네는 주스 한 잔, 마당의 공기, 재택근무가 허락한 여유 같은 장면들 속에서 삶은 속도를 늦춘다. 저자는 무엇을 더 가져야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이미 가지고 있는지를 묻는다. 그 질문은 독자의 삶에도 자연스럽게 닿는다.

『참 좋다』는 삶을 바꾸자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흔들리지 않기 위해 붙들어야 할 감각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하고, 오늘을 한 호흡 늦춰 살아보게 하는 수필집이다.




■ 책 소개


변호사 같은 검사, 검사 같은 변호사의 
세상 사는 이야기

보건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항상성(homeostasis)’의 핵심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외부 환경에 반응하면서도 동시에 내부의 중요한 균형점을 지켜내는 일입니다. 저에게 그 균형점은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인간성에 대한 깊은 신뢰’였습니다. 덕분에 저는 변호사 같은 마음으로 검사직을 수행했고, 검사의 눈을 잃지 않은 채 변호사 노릇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민들레를 그 효능이 아니라 민들레 자체로 바라보며 아끼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어느 풀도 잡초로 보지 않고, 모든 사람을 그 능력이나 사람됨을 따지지 않고 한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것, 그것이 나의 민들레 원칙이 될 것이다.  
―「민들레 원칙」 중에서

사실 나는 이런 노인이 되고 싶다. 누가 궁금한 것이 생기면 살짝 찾아와 알려달라고 물을 수 있는 그런 노인 말이다. 지식도 지식이지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가 필요하여 나를 방문한 그 사람의 신발 앞에 등불을 켜 두려움을 없애고 길을 밝혀주고 싶다. 내 주장을 삼가며 모든 걸 받아들이고 포근히 감싸주는 그런 포용력을 지니고 싶다. 죽고 싶을 만큼 심한 고민이 있거나 말하기 곤란한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나를 찾아와 모든 걸 다 털어놓으면 봄눈이 녹듯이 모든 괴로움이 사라지는 그런 노인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주는 도서관 같은 노인이 되고 싶다.
―「도서관」 중에서


■ 작가의 말

두어 해 전, 그동안 발표했던 글 중 다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모아 소박한 에세이집 『에움길』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걱정이 앞섰으나 뜻밖에 과분한 사랑을 받았고, 이후 발표한 작품들과 지난번에 미처 싣지 못한 글들을 모아 다시 책을 엮어보라는 권유가 이어졌습니다. 그 따뜻한 응원에 힘입어 이번에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보았습니다.
이마누엘 칸트는 생의 마지막 순간 “Es ist gut(아, 좋다)”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간병인이 티스푼으로 먹여준 설탕 탄 와인이 달콤해서였는지, 아니면 평생을 건너온 자신의 삶에 건네는 완벽한 긍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순간 그에게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는 평온함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저 역시 요즘 나의 일상이 고마울 정도로 참 좋습니다. 그 감사한 마음을 담아 어느 하루의 풍경을 그린 「참 좋다」라는 글을 이 책의 머리에 두었습니다. 이어지는 50편의 글들은 다섯 갈래로 나누었습니다. 이웃과 가족 간의 에피소드부터 법조인으로서의 고뇌, 사회를 향한 제언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묵상(두 분에 대한 회상 포함)까지 골고루 담겼습니다. 편의상 분류하긴 했으나, 결국은 모두 나름 자신을 지키며 치열하게 살아온 한 사람의 삶의 기록들입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뒤늦게 법조인이 된 저는 검사 시절엔 “변호사 같다”는 말을, 변호사가 된 후엔 “검사 같다”는 말을 듣곤 했습니다. 피의자의 사정을 살피느라 엄격하지 못하다는 혹은 의뢰인의 요구보다는 원칙을 앞세운다는 비판 섞인 평가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저를 바꿀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곧 저였기 때문입니다.
보건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항상성(homeostasis)’의 핵심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외부 환경에 반응하면서도 동시에 내부의 중요한 균형점을 지켜내는 일입니다. 저에게 그 균형점은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인간성에 대한 깊은 신뢰’였습니다. 덕분에 저는 변호사 같은 마음으로 검사직을 수행했고, 검사의 눈을 잃지 않은 채 변호사 노릇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역시 지난 『에움길』에 이어, 경계에 선 한 법조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정직한 시선을 담고 있다 할 것입니다.

이 책을 펴내기까지 고마운 분들이 참 많습니다. 저에게 맘껏 글 쓸 기회를 내어주신 《경제포커스》 정영훈 대표님, 글 발표 때마다 늘 따스한 격려를 보내신 이광복 한국문인협회 명예이사장님, 아직도 미숙한 저에게 글쓰기의 길을 밝혀주신 멘토 G 선생님, 그리고 투박한 원고를 멋진 책으로 빚어주신 청어출판사 이영철 대표님과 이설빈 편집장님께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마지막으로 곧 다가올 금혼식을 앞두고, 고집 센 저자와 50년을 함께하며 좋은 글감이 되어준 아내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과 인내 덕분에 저의 일상이 비로소 ‘참 좋을’ 수 있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이 글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삶의 균형을 되찾고, “참 좋다!”라고 나직이 읊조릴 수 있는 평온함을 만나시길 소망합니다.

2026년 2월  양평 효란재(曉蘭齋)에서




■ 본문 중에서

*참 좋다


잠에서 깨어나 커튼 사이로 스며든 햇살을 살며시 보면서 숨을 크게 들이쉬니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참 좋다.
이렇게 또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분께 기도를 올리고 나면 나도 모르게 산뜻한 의욕이 샘솟으니 더욱 좋다.

아직 변호사 현업에 종사한다고는 하지만 일감이 적당히 줄어 이곳 양평으로 내려와 살면서 재택근무를 주로 하니 오늘 같은 날 출근을 하지 않아도 돼서 참 좋다. 
거실에서 실내 체조를 간단히 하고 나서 아내가 방금 텃밭에서 직접 채취한 블루베리와 부추 등으로 만들어 주는 상큼한 주스를 마실 수 있어서 더욱 좋다. 

마당으로 나와 보니 얼굴은 해님의 다사로운 미소와 바람의 상쾌한 간지럼을 느끼고, 귀는 뒷산에서 보내오는 새들의 지저귐을 들을 수 있어서 참 좋다. 
화단 곳곳에 아내가 정성 들여 가꾼 백일홍, 벨가못, 백합, 노발리스 장미, 한련화, 수국 등이 눈 비비며 환하게 웃어 주니 더욱 좋다.

면도 거품을 얼굴에 바르고 거울을 보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그래도 눈동자가 여전히 빛을 잃지 않고 있어서 참 좋다.
남에게 건강을 뽐낼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별 지장 없이 할 수 있을 만큼은 될 것 같으니 더욱 좋다.

아침 밥상에 앉아 갓 지어낸 밥과 국에서 피어오르는 구수한 내음을 맡으며 아내의 음식 솜씨가 항상 내 식욕을 고르게 지켜줌을 고마워할 수 있어서 참 좋다.
‘짠순이’ 소리를 들으면서도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사과나 굴비, 해삼 같은 먹을거리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아내와 함께 산다는 것은 더욱 좋다.

돈은 항상 부족하긴 한데 그래도 누구에게 손 벌리진 않고 약간 절약하여 성당에 헌금도 하고 조금은 남을 도울 정도가 돼서 참 좋다.
가까운 친척 사업을 도와준다고 했다가 짊어진 은행 빚 원리금을 매달 갚아 나가는 것이 부담은 되지만 그로 인해 일을 놓지 않고 계속할 수 있어서 오히려 더욱 좋다.

2층 서재에 올라가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을 작게 틀어놓고 야옹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어제 못 마친 수필의 마무리 작업을 할 수 있어 참 좋다.
사무실에서 보낸 일거리까지 간단히 끝낸 다음 베란다로 내려와 아내와 함께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의 윤슬을 내려다보면서 커피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니 더욱 좋다. 

강 건너에 소대장으로 월남에서 대침투작전 중 적의 기습 폭격으로 전신에 파편이 박히고도 천운으로 살아난 군대 동기가 사는데, 오늘도 그 내외와 만나 가성비 좋은 양평 맛집에서 점심을 함께할 수 있어서 참 좋다.
전상(戰傷) 후유증으로 갖은 고생을 겪는데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장로로서 신앙심이 깊으며, 보험회사 중역을 지낸 뒤 시골서 노인회장을 맡아 온갖 어려운 마을 일들을 적극 도와주는 이 친구에게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집에 돌아와 가볍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몸이 한결 개운하고, 아래층 거실에서는 아내가 손자 녀석에게서 온 전화를 받으면서 마냥 즐거워하니 참 좋다.
기특하게도 손자가 검도 대회에서 우승한 것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자기도 반장인 누나처럼 공부도 열심히 해서 고모부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기로 할머니한테 약속했다니 더욱 좋다.
딸이 사준 내 발에 꼭 맞는 운동화를 신고 산책길에 나선다. 약간 경사진 당너머길을 따라 걸어 내려와 오빈교 아래 물소리길을 거쳐 양근성지 앞을 지나 양강섬으로 가는 부교(浮橋)를 건너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돌아오는 코스는 걷기에 참 좋다.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사고가 명료해진다. 오늘은 생각지도 않게 머릿속이 가지런히 정리되면서 그동안 나를 애먹였던 다음 주 재판이 있는 사건의 어려운 쟁점에 대하여 밝은 길이 보이니 더욱 좋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간단히 한 후 아내가 정성 들여 차려준 갈매기살 구이, 상추쌈과 된장찌개로 저녁을 먹으니 밥맛이 꿀맛이라 참 좋다.
싱크대에 하루 동안 쌓인 식기들 설거지와 주방 청소는 내 몫이다. 집 안팎 일은 아내 혼자 거의 다 하는데, 이것이라도 남겨 두어 하루에 한 가지는 아내를 꼭 도울 수 있도록 해주니까 더욱 좋다.

설거지가 막 끝나갈 때 핸드폰 진동음이 울린다. 교통사고를 냈다고 하는 다급한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상세히 그 법적 처리 절차를 설명해 주자 그쪽도 흡족해하며 고마워하니 마을변호사로서 제대로 일을 한 것 같아서 참 좋다.
내일은 인천지검 강력부장으로 근무할 때 함께 일했던 검찰 후배들과 오찬 모임이 있어 서울에 가야 하는데, 마침 의료 소송을 한 건 의뢰하겠다는 분이 있어 오후에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으니 모처럼 ‘현역’으로서 활기 있어 보일 것 같아 더욱 좋다.

아내와 약속한 대로 전에 보았던 옛날 영화를 한 번 더 본다. 영화에 관한 한 아내와 나는 취향이 거의 일치하여 항상 함께 볼 수 있는 것이 참 좋다.
오늘은 브래드 피트의 앳된 모습도 다시 보고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과 함께 ‘오롯이 이해할 수는 없어도 오롯이 사랑할 수는 있음’을 되새길 수 있어서 더욱 좋다.

밤이 깊어 자야 할 시간이다. 오늘 하루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지 않았었나,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지는 않았었나, 그중에 버릇이 된 것은 없었나 반성할 수 있어서 참 좋다.
오늘 하루를 나에게 허여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이제는 내가 바라는 무엇이 이뤄지게 해달라기보다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마음을 갖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 수 있어서 더욱 좋다. 
모든 것이 참 좋다. 

《한국문학인》 2024년 가을호
■ 차례

작가의 말

참 좋다 • 10


Ⅰ. 

이상한 동네 • 16
새끼발가락 • 25
이웃 • 31
나눔 • 36
빗방울 • 41
왕초보 요리 교실 • 50
단 하나의 재능 • 58
민들레 • 65
삐걱거리는 소리 • 74
나는 지금 만나러 간다 • 82


Ⅱ. 

가화만사성 • 92
감탄사 • 99
맛있는 남자 • 105
설거지 • 112
짜증과 걷기 • 121
흑염소탕 • 127
동치미 • 133
눈치와 배려 • 140
좋은 사진 • 148
꾀꼬리 • 155
큰 외손자 • 161


Ⅲ. 

탈 검사스러움 • 170
불쑥 생각나는 피의자 • 173
잣대 • 184
진정한 공정 • 194
관대함에 대하여 • 202
전우애 • 207
살인(사건)의 추억 • 216
면접시험 • 224
설거지(속) • 229
관용을 생각하다 • 240


Ⅳ. 

도서관 • 248
농담 • 254
약속에 관한 몇 가지 단상 • 262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 • 274
자존심과 자존감 • 282
명예에 관한 작은 생각 • 290
아등바등 • 297
승부욕 • 305
민들레 원칙 • 312
음식 예찬 • 319


Ⅴ. 

연민 • 326
내가 만난 스크루지 영감 • 335
사랑의 매 • 343
샤먼 여행기 • 348
죽은 이들을 기리며 • 352
<소풍>과 <비밀> • 364
통과의례 • 371
어머니와 영화 • 379
아버지, 오 나의 아버지 • 390
추호경

서울대학교 철학과 재학 시절 《형성》 지를 창간하고, 자작 희곡을 무대에 올리며 문학과 삶을 고민했다. 보병 소대장과 통역장교로 군 복무를 마친 후, 뒤늦게 정의를 생각하며 법의 길에 들어섰다. 25년간 검사로 재직하며 이한열 최루탄 사망 사건, 오대양 집단변사 사건 등 시대의 아픔과 미궁에 빠진 사건들의 진실을 밝히는 데 힘썼다. 특히 법조인 최초의 보건학 박사(서울대)이자 대한의료법학회 창립 멤버로서 『의료과오론』 등 전문서를 펴내며 의료법학의 기틀을 닦는 데 일조했다. 서울지검 형사1부장, 천안지청장을 거쳐 변호사로 활동하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초대 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로 현역의 길을 걷고 있다. 평생 법의 엄정함과 인간의 존엄 사이를 고민해 온 그는, 최근 『명심보감 다시 읽기』, 『에움길』 등을 저술하며 인문학적 성찰을 이어가고 있다. 


표지그림  행복 여정(박명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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