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의 말
삶은 빈칸 채우기다. 크고 작은 빈칸들을 어떻게 채울지 몰라 공백으로 남길 때도 있고, 마구잡이로 꾹꾹 눌러 담아 넘쳐날 때도 있었다. 빈칸의 해답을 풀려고 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졌고, 채우려 할수록 엉뚱한 것들이 채워졌다. 내가 채운 빈칸이 누군가에게는 정답이 아닐지라도 그것은 나만의 문양이자 방식이다. 헐렁한 여유로 이뤄낸 소박하지만 알차고, 화려하기보다 산뜻한 삶의 문장이다. 빈칸을 그들먹하게 채우는 시간은 행복했다. 나는 한 칸 한 칸 채워가며 마음밭을 들여다보고 정성 들여 가꾸었다. 그 채우는 시간이 생의 한마디쯤 쉬어가는 온쉼표가 되었고, 나도 모르게 앞으로만 내닫던 속도를 한 박자 늦출 수 있었다. 미완인 내가 완성의 궤도에 오르려고 수없이 펜을 고쳐 잡으며 보람도 느꼈다. 일상에서 설레었던 순간들과 노엽고 애달프고 가슴 벅찼던 이야기를 그러모아 글을 엮었다.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나를 옥죄고 있던 삶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나의 빈칸 채우기는 오늘도 내일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보다’에서 시작해 ‘묻다’로 나아가고, ‘풀다’를 거쳐 ‘알다’에 이르렀다가 다시 ‘차다’로 돌아온다. 이 다섯 갈래의 흐름은 직선이 아니라 우주의 순환처럼 돌고 도는 움직임으로 내 삶의 빈칸을 가득 채우는 구심력이 된다. 첫 수필집 『꺼꾸리에 올라』를 상재한 지 5년 만에 또 한 권을 엮는다. 『빈칸을 채우는 시간』이 나오기까지 말없이 지지해 주는 가족이 있어 든든하고 고맙다. 응원과 격려를 보내 주는 모든 인연에게 이 책을 전한다.
2026년 새봄에 綠雲 김정옥
■ 본문 중에서
내 마음에 금을 친다. 급하게 서두르다 일을 그르치게 될까 봐 지그재그 금을 긋는다. 메마른 이웃에게 따뜻한 눈길로 넘나들도록 이곳저곳에 넉넉하게 점금을 부려 놓는다. 이기심과 삿된 마음은 꽁꽁 여며 찐한 실금을 두른다. 가장 두려워야 할 탐심에는 더욱 강력한 이중 실금을 긋는다. ―본문 「금, 금, 금」에서
범패梵唄에 따라 하얀 나비춤을 춘다. 단세포처럼 단순하던 나는 삶을 통찰하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세상은 아름답고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 다치고 덧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 내 안에 밀쳐둔 공감과 사유는 서로 교차하다 합을 이루고 더 크게 확장해 나가는 배짱도 생긴다. ―본문 「환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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