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CK

MENU

 Home > 발행도서 > 문학
정중무상행적송
이상원
문학
국판변형/144쪽
2020년 11월 30일
979-11-5860-914-6(03810)
13,000원

■ 발문

 

이상원


주제어

붓다, 무상, 정중종, 아라한, 왕자, 삼구,
무상오경전, 김화상, 삼학, 두타행, 무억,
무념, 막망, 인성염불, 처적, 지선, 신라,
총지문, 어하굴, 티베트, 수행, 정중선법,
대자사, 영국사, 보리달마, 선, 염불삼매

서울, 2020년, 10월


동아시아 불교사에서 신라의 무상 김화상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일찍이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여 정중종을 개창하시고 뛰어난 선승으로서 티베트에도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전파하셨다.

인성염불로 쉽게 민중을 이끌어 무억, 무념, 막망, 삼무의 총지법을 교설하시어 깨달음으로 인도하셨다. 또한 보기 드문 혹독한 두타의 수행으로 오백 나한의 반열에 드셨다. 그동안 천이백여 년의 시공을 초월하여 그 발자취가 희미할 뿐만 아니라 기록으로 남아 전하는 행적이 한정되어있는 까닭에 애석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하지만 그 존숭하는 심법이 깊고 깊어 문자를 떠난 격외의 소식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여 전등의 빛나는 불빛이 잠시도 꺼진 적이 없다. 지금 여기 바로 화상께서 한 물건을 들어 만방에 거량하시니 삼가 씨줄과 날줄로 엮어 화상의 행적송이라 감히 칭송하여 세상에 펴낸다.

두 어깨가 무겁고 참담하나 어찌 선사의 거룩한 행적을 더럽히랴. 살얼음을 디디는 심정으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펼쳐드니 눈물이 흘러 산하를 적시고, 그 죄업은 감당할 수 없어 삼가 엎드려 제방의 경책을 기다린다.

세존께서 정각을 이루신 뒤에 달마의 선법이 면면히 동국에까지 닿았으니 그 은혜가 넘쳐흐르는구나. 다시 더 무엇을 두려워하랴. 마하반야바라밀 나무석가모니불.


불기 2564년 동지절,
법손 원경 합장

 

 

■ 본문 중에서


서품

 

아, 세존은 인천의 스승이시니
영원한 지혜의 법륜이 굴렀네.

인도의 석가모니 부처님을 이어
이십칠대 제자 반야다라 존자는
보리달마에게 수계하며 말하였다.

일체의 세속의 생각을 끊어라.
일체의 선과를 닦아 이루어라.
일체의 중생을 널리 제도하라.

존자를 마흔해 동안 시봉하다가
동쪽 중국으로 전법에 나서니
불교 선종의 종조인 달마대사여,

당시에 ‘불심천자’라 일컬으니
신심이 돈독한 양나라 무제와
법을 거량하고 크게 실망하였네.

초조 달마대사가 탄식해 말씀하길,

“아직 법을 전할 때가 아니로다.”

이에 일체 중생과 인연을 끊고서
구년 동안 묵언 면벽 수행에 들어
존자로 깨달음의 의발 전해 받았네.

불법의 스승인 오백나한 가운데
첫 번째는 석가모니 부처님이고
삼백일곱 번째는 초조 달마대사

사백쉰다섯 번째는 무상화상으로
바로 우리 정중종의 종조이시다.

일찍이 당나라에 들어가셔서
신라 김화상으로 이름이 나고

입적 후에는 선종의 대선사로서
무상공존자로 높이 추앙받았네.

인성염불과 삼구설법으로 개당 후
정중선의 일미를 크게 떨치시고서

서역 티베트에도 처음 불법을 전하니
티베트 고대 사서인 바세전에 따르면,

토번왕 사절이 당나라 장안에 들어와
히말라야로 돌아가는 길에 호랑이를
이끌고 가시던 무상 김화상을 뵈었네.

당시 토번왕국 티송죽첸 왕이 암살되고
뵌교 무리가 불교를 가혹하게 탄압하여
사원을 파괴하고 스님을 추방하였네.

익주에 보림한 화상을 뵙고 돌아가니
화상께서는 몸소 지관수행을 설하셨네.

또 사절단이 새로이 불법을 받들어서
홍포하게 십선경과 금강경과 도간경,
세 가지 경전을 강설하고 전해주셨네.

또 티베트왕이 죽고 불교를 핍박해도
나중에 새로 왕조가 다시 들어서면
불교를 받아들일 것도 예언하셨다네.

그 후 치송데첸 왕이 즉위하고 나자
티베트 토착종교인 뵌교를 몰아내고
드디어 불교를 국교로 공인하였네.

곧 위대한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이
히말라야 설산을 빛나게 장엄하므로
과연 화상이 예언한대로 들어맞았네.

그때 최초로 불, 법, 승 삼보를 갖춘
티베트 불교 쌍예사원에서 파견되어
세르난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왔구나.

무상화상의 법을 전수받았을 뿐 아니라
또 불조의 혜명이 동국에 면면히 이어져
해 뜨는 동해에 감로수가 되어 적셨네.

참으로 청정한 구도자이자 수행자여,

동국 신라 해동대사이신 김화상께서
부처님 바른 법을 정맥으로 이으셨네.

속성은 김씨로 아호는 송계이며
법호는 무상으로 신라왕족이시니
성덕왕의 셋째 왕자로 태어나셨네.

누이가 드디어 혼기가 다 되어서
칼로 스스로 얼굴에 상처를 내고,

도를 찾고자 굳세게 결단하고서
속가를 떠나 불가에 귀의하려니

화상께서 발심하여 말씀하시길,

“아녀자도 도를 찾고자 하는데
어찌해 대장부로서 머뭇거리랴.”

일찍 세존께서 게송을 지어 전하길,

탐욕과 성냄과 두려움과 어리석음,
이런 악행을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명예가 나날이 더하여 가는 것이
마치 달이 보름을 향하는 것 같네.

부처님께 귀의하는 모든 이들
악한 속세에 떨어지지 않나니,

이 세간에 인간의 형상을 벗고
하늘의 청정한 몸을 받는구나.

나 이제 겸손한 길로 찾아들어가
부처님의 법을 바로 세우기 위해
악의 무리를 마땅히 물리치리라.

마치 코끼리가 덤불을 부수듯이
생각은 전일하여 방일함이 없고,

청정한 계율을 두루 지키면서
뜻을 정하고 스스로 선정에 들어
불법의 대의를 잘 보호하리라.

만일 늘 바른 법 가운데 있어
능히 방일하지 않는 수행자는,

태어나 늙고 병 들어서 죽고 마는
윤회를 벗어나 생멸문을 넘어가
길이 괴로움의 근본을 다하리라.

모든 제자는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해야 하리라.

온갖 탐욕과 집착을 끊어버리고
털끝 한 올도 벗어나지 않으리라.

무상화상께서 한 생각을 깨치시고
깨달음을 얻어 부처를 이루고자
이에 차마 부왕의 뜻을 저버리고

불국토인 신라왕국 군남사에서
출가하여 축발하고 득도하신 뒤,

바다 건너 당나라에 들어가시니
개원 십육 년 칠백이십구 년이로다.

당나라 수도 장안에 도착하시니
이 무렵 선종의 꽃이 피어났는데
혜능 남종선과 신수 북종선이라.

당 현종이 친히 화상을 영접하여
선정사에 고요히 머무시게 하였네.

이윽고 장안을 홀연히 떠나서
촉나라 땅 자중에 들어가시니

선종의 오조 홍인의 제자로서
신수, 혜능과 같은 법 형제로다.

역대법보기에 선종의 오조 홍인
그 문하에 걸출한 십대제자 중

자주에서 주석하던 지선스님은
촉나라 땅 사천성을 중심으로,

지선, 처적, 무상, 무주로 법맥을
계승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전하네.

이 무렵 지선선사를 찾아뵈오니
당시에 입실 제자로 수행하였던
처적화상에게 부촉해 안배하였네.

이에 사천성 덕순사를 찾아가니
병을 핑계로 만나주지 않으시자,

화상은 손가락 하나를 태워서
지성으로 연지 공양을 올렸네.

처적화상이 그 신심을 알고서
사중에 머물며 도를 전하시니,

처적화상의 문하에 입실한 뒤에
마침내 무상이란 법명을 얻었네.

정중종 종조이신 무상 김화상은
당화상 처적의 문하에서 발심해,

이태 동안 용맹하게 정진한 뒤
천곡산에 들어가서 수행하셨네.

홀로 심산 유곡인 어하굴에서
속세를 떠나 두타행을 닦았네.

좌선하면 닷새 동안 입정하여
눈보라 치는 매서운 겨울에도
찬 바위에 앉아 수행에 힘썼네.

한때는 두 마리의 맹수가 덮치자
개울물로 몸을 깨끗이 씻고 난 뒤
가사를 벗고 맹수 앞에 누우셨네.

잡아먹기를 고요히 기다리시니
맹수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냄새만 맡고 홀연히 사라졌다네.

며칠 동안 선정삼매에 고요히 들자
맹수가 감복하고 법신을 호위하였네.

그 후에 가까운 도성으로 가서
낮에는 무덤가에서 입정하시고,

밤에는 나무 밑에서 좌선하시며
먹지도 자지도 않고 정진하셨네.

두타행으로 점차 이름이 드러나
대중이 감복하여 정사를 지어서
무상 김화상을 머무르게 하였네.

드디어 당시 세간에 명성이 높아
당나라 황실에서 화상을 청하시니,

현령 양익이 깊은 도력을 시기하여
무뢰한으로 위해를 가하려고 하자,

홀연 신비로운 변괴가 크게 일어
모래와 자갈과 돌들이 어지럽게
한 바람에 뒤섞여서 휘몰아치니,

놀라서 뉘우친 양익이 사죄하자
비로소 거센 바람이 멈추었다네.

그 후 양익이 화상을 흠모하여
정중사, 대자사, 보리사, 영국사
대가람을 짓도록 힘껏 도왔네.

무상화상이 정중사에 머물 때
나무하는 일꾼이 문득 이르길,

“곧 길손이 찾아올 게 분명하니
화상 곁에 머물겠다“고 말하더라.

화상께서 신라의 자객이 와서
죽이려 하는 걸 미리 아셨는데
평소처럼 깊이 좌선에 들더니,

밤에 갑자기 천정에서 떨어져서
일꾼의 칼에 맞아죽고 말았구나.

사찰 앞마당에 떡갈나무가 있어
화상이 제자에게 예언하시기를,

“이 나무와 탑이 장차 변을 당하리라.” 

그 뒤에 무종이 폐불을 단행하더니
절의 나무와 탑이 과연 무너졌구나.

화상이 절 앞 두 연못을 가리키며
왼쪽은 국이고, 오른쪽은 밥이라,

말씀하시더니 시주가 들지 않는 날,

연못에 고인 물을 모두 퍼내게 하면
누가 때맞춰 공양거리를 가져왔더라.

화상께서 세수 일흔아홉이신 해,
정중사에서 드디어 열반하신 뒤
무종은 폐불을 단행하고 말았네.

정중사에 매달려 있던 큰 종을
강 건너에 있는 대자사로 옮기고
선종 때 다시 정중사로 옮겨왔네.

이틀이 걸리는 불사를 시작하니
단번에 쉽게 옮길 수가 있었더라.

범종을 이운하던 한 도감 승려가
무상화상 사리탑을 예로 참배하니
신기하게도 석탑에 땀이 서렸다네.

이미 백년 전에 입적하신 무상화상
신이한 은택으로 쉽게 종을 옮기니 
대중이 그 법력을 깊이 사모하여서

익주자사 한굉이 삼가 비문을 짓고
화상의 사리탑을 일러 ‘동해대사탑’
이라 존모하여서 두루 참배하였도다.

중국의 팽주 단경산 금화사 경내
김두타원에는 무상선사 사리탑이
‘김두타’란 이름으로 전하고 있네.

금화사는 신라 김두타 무상선사가
노년을 보내며 주석하신 곳이로다.

당나라 현종 여동생인 금화 공주가
당시 금화행궁으로 지은 건물인데
선사께 감화되어 금화사로 바꾸었네.

보응 이년 오월 보름에 병이 없이
입적하시니 세수 일흔아홉이었다.

선사가 입적한 후 사리탑을 세우니
사찰 안 ‘금화사기’ 비석에 새기길,
김두타가 창건하여 총림을 세웠네.

우리 무상화상의 법맥이 어떠한가.

일찍이 석가세존의 정법이 전해
두타행 제일 가섭존자가 받으니
전해진 이래 수행으로 제일이라.

안사의 난이 일어나자 당 현종이
사천 땅으로 난을 피하여 왔을 때,

무상화상은 이미 뛰어난 신승으로
세간에 널리 이름을 드러내셨다네.

현종이 화상을 친히 접견하시고
정중사에 주석하게 하시었는데,

당 개원 이십 년, 칠백삼십이 년,
사월에 마침내 당화상 처적은

무상화상에게 왕굉을 보내어서
가사를 전하고 법을 부촉하시며
정녕하게 대업을 이루길 바라니,

“이는 바로 달마조사의 전법가사라
측천무후께서 지선화상에게 전하고

또 나 처적에게 다시 전한 것이니
지금 그대에게 마침내 남기겠노라.

그대는 스스로 이를 잘 보호하여
나의 선법을 두루 크게 선양하라.

그대는 이제부터 정중사에 머물며
정중선을 크게 일으키도록 애써라.”

사천 선종의 법은 오조 홍인 이래
열 제자 가운데 자주 땅을 교화한
지선에 이어서 처적에게 법을 잇고,

다시 무상에게 불법을 전하였으니
이에 새로 정중종을 개창하였도다.

장송산 마조스님도 무상의 제자이니
마조의 제자인 백장 회해가 이르길,

“강서의 선맥이 다 동국에 옮겨가는가”
한탄할 만큼 해동으로 선맥이 옮겼네.

무상의 법계는 무주로 전승하여서
사천 선종의 사대조사라 이르니라.

선종 초조 달마에서 혜능에 이르는
해동 육대 조사가 다 한 법맥이다.

이로써 정중종 선법이 개창되니
정중사를 개당한 이래 이십여 년,
불법의 대의를 광대하게 펼쳤네.

해마다 정월과 십이월이 되거든
도량을 세워 대중에게 설법하니
수천 사부대중 구름처럼 모였네.

화상은 인성염불로 법석을 여니
초저녁부터 다음날 동틀 때까지
한 목소리로 한 숨을 다하여서

오직 염불로 성성하게 정근하여
목소리가 이어질 듯 끊어졌을 때
상당하시어 삼구설법을 펼치셨네.

과거의 일을 일체 기억하지 않아
마음이 경계에 끌리지 않는 무억,

현재 일체분별과 근심을 하지 않아
마음이 조금도 미혹되지 않는 무념,

미래의 일에 밝은 지혜와 상응하여
혼미한 망상을 일으키지 않는 막망,

무상화상의 이 삼구 설법이야말로
계, 정, 혜 삼학을 밝히는 등지로써,

마음이 한 곳에 집중된 선정이니
곧 정중선파의 총지문이라 하셨네.

역대법보기의 무상 조에 보면,

망념이 일어나지 않는 계율문,
망념이 일어나지 않는 선정문,
망념이 일어나지 않는 지혜문,

이같이 망념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계, 정, 혜를 관통하는 삼학의 요체라
곧 무상화상의 정중선법은 돈오법이네.

정중선법의 요긴한 체용은 무엇인가.

체용은 둘이 아니라 하나로 회통하니
체용의 삼구란 무억, 무념, 막망이로다.

일체의 기억을 없애버리는 무억,
일체의 망념을 없애버리는 무념,
일체의 망녕을 없애버리는 막망,

곧 계, 정, 혜, 삼학을 설파하였네.

그래서 삼구설법은 곧 총지문이라,

선종의 초조 보리달마, 이조 혜가, 삼조 승찬,
사조 도신, 오조 홍인, 육조 혜능, 칠조 지선,
팔조 처적, 구조 무상, 십조 무주로 이어지는

법통과 보당사에 머문 무주의 선법을
자세히 기록한 역대법보기에 이르길,

염불기는 계문이고, 정문이며, 혜문이라.

무념은 계, 정, 혜를 구족했으니
삼세의 모든 부처와 조사께서도

모두가 하나의 문을 통하였으니
마침내 깨달음에 이르렀다 하네.

무상화상께서 설한 삼구설법은
일체의 망념이 일어나지 않는,

염불기로 바로 무념의 경계가
심지 법문이고 정중선이로다.

무상화상의 삼구와 삼학의 법,

이는 달마대사로부터 전한 소식으로
사천 선종과 함께 정중종의 법이로다.

중국 선종의 법통이 어떠한가.

초조 달마로부터 육조 혜능까지
면면히 선림에 의발이 전해졌구나.

둔황 석굴에서 발견된 고문서,
역대법보기의 기록을 살펴보니,

육조로 끝나는 법통이 아니라
칠조 지선, 팔조 처적에 이어,

구조이신 정중무상화상에 이르러
십조 무주에까지 법이 이르고 있네.

또 제자로는 보당무주, 마조도일,
정중신회, 왕두타 등이 있었으니

일찍이 당나라 시인 이상은이 지은
혜의정사사증당비에 새긴 글을 보면,

무상, 마조, 무주, 서당, 네 분의 영정,
모신 인증의 계보가 뚜렷이 기록되니
달마의 선종이 무상선사에게 닿았구나.

우리 불교 정맥의 종조는 누구인가.

육조 혜능의 목면가사로 법통을 잇고
삼세 만에 거룩한 두타행 나한이 되신,

해동의 ‘김화상’, ‘김두타’, ‘무상공존자’,
곧 우리 정중종 종조 무상화상이로다.

자서   10

 

서품   15
수행품   36
무상오경전품   47
무상어록품   55
총지품   63
나한품   72
발원품   81

부록
무상화상 연보   92
송고승전 무상전   95
역대법보기   97
발문  143

원경 圓鏡

 

법사의 속명 이상원李商元, 경남 산청에서 나서 시인, 번역가로 활동하며 지금 지리산 초명암에 안거중이다. 남명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하여 등단하고, 서사시 서포에서 길을 찾다로 제2회 김만중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풀이 가는 길, 여백의 문풍지, 만적, 소금사막의 노래, 벌거벗은 개의 경전, 마음의 뗏목 한 잎』 『초명암집이 있으며, ·저서로 하원시초, 노비문학산고, 기생문학산고1,2, 불타다 남은 시, 무의자 혜심 선시집, 스라렝딩 거문고소리, 미물의 발견, 동창이 밝았느냐등이 있고 우리말 불교성전을 펴냈다.

회사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출간문의 찾아오시는 길 사이트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