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의 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던 그해 여름, 드넓은 소래 염전, 구석에 있던 사각형의 거무튀튀한 소금 창고 앞에서 한 청년이 자전거에 기댄 채 소리를 지릅니다. “안녕하세요?” “더우신데 꽈배기 드시고 하세요.” “튀긴 게 싫으시면 찐빵하고 만두도 있어요.”
어설픈 표준말을 쓰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는지, 겉만 어른인 청년의 공허한 외침이 자신들의 중노동보다 더 힘들어 보였는지는 몰라도 대개 혼잣말처럼 “거기 창고에 골고루 놓고 가” 한마디 던지고선 하던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고교 졸업 후 상경한 난 처음 본 사람과 눈 맞추기도 어려워했을만큼 촌뜨기 중 촌뜨기였지요.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주말이면 가리봉삼거리, 춘의오거리, 소사삼거리 등 식당에서 음식을 배달하였고, 비디오 가게 점원도 하면서 낯선 곳에서 꽈배기를 외상으로 팔 정도로 금세 얼굴이 두꺼워졌습니다.
민주화 운동이 정점을 향해 치닫던 86년, 의경으로 입대를 한 것이 경찰관으로 일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복이 주는 묘한 매력에 이끌렸고, 어깨너머로 배운 경찰업무는 단순한 호기심 충족을 넘어 직업으로 삼기에 충분할 만큼 재미있었습니다.
제대 후 순경으로 근무를 시작하였고, 10개월 정도 일한 뒤 사표를 내고 간부후보생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아마 그때가 가장 열심히 살았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만사 제쳐두고 오직 공부에만 몰두했으니까요.
경기도 수원에서의 첫발, 1년간 합숙 교육을 마쳤으니 의욕 충만하여 현장에 나가고 싶었으나, 동료 한 명 없는 텅 빈 사무실로 첫 발령을 받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경감 승진시험을 준비했는데 운 좋게도 꽤 치열했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근무 중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함께 근무한 선후배 동료들의 도움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장은 늘 외롭습니다. 현장은 늘 아픕니다. 현장은 늘 활시위처럼 팽팽합니다. 한 곳을 정리하면 또 다른 곳이 기다리고 있고, 정신없이 밤을 지새우고 나면 몸도 마음도 파김치처럼 축 늘어집니다.
거침없이 달려가야 하는 숨 가쁜 현장, 도움을 기다리는 국민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경찰이 태어난 곳이자 돌아가야 할 곳이라는 것을 늘 가슴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꽤 오래 장거리 출퇴근을 하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였고, 목적지 두어 정류장 전에 내려 이리 걷고 또 저리 걸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각할 여유가 많았습니다.
어느 순간, 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스승들이었습니다. 풀 한 포기의 작은 흔들림에서, 개미 한 마리의 부지런한 움직임에서, 푸른 하늘의 드넓은 품 안에서 웃고, 울고, 배우고, 용기와 지혜를 얻었습니다.
우리의 몸 안엔 냉철한 이성과 충동적 본능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성이 냉철함을 유지할 땐 평온한 일상을 누릴 수 있지만,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순식간에 본능에 잠식당해 일탈의 길로 들어서고 말지요.
이성을 살찌우고 유지하는 데는 독서와 글쓰기가 으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끄러운 이 책이 독자들의 평온한 삶을 유지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항상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 본문 중에서
○ 수제화 거리
낡은 염천교를 지나면 100여 년 된 수제화 거리가 있다.
가죽 냄새 맡으며 한 땀 한 땀 장인의 손을 거친 구두는 보물이었다.
하이칼라 멋쟁이 아저씨도 빡빡머리 이등병도 신었으리라.
봄바람 가을 햇살 떠난 자리엔 빛바랜 낡은 간판이 버티고 있다.
올 겨울 보물 하나 장만하면 장인의 환한 미소 볼 수 있으려나
○ 한결같이
동녘을 붉게 물들이며 세상을 밝혀주는 일출
서녘을 곱게 수놓으며 하루를 마감하는 일몰
찬란하게 나타났다가 수줍게 사라지는 모습
시작과 끝이 변함없으니 늘 새롭고 반가운가 보다. ○ 운전과 인생
제 속도로 운전하다가도 뒤차의 움직임에 과속할 때가 있습니다.
여유롭게 살아가다가도 주변의 부추김에 무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사고가 나거나, 탈이 난다면 모두 내 손해입니다.
너무 뒤차 눈치 보거나 주변 신경 쓰지 마세요. 어차피 내 갈 길이잖아요.
○ 달과 별
밤하늘엔 달과 별이 숨바꼭질하네요.
반짝반짝 작은 별 도망가면 성큼성큼 큰 달이 쫓아갑니다.
외로울 땐 밤하늘을 보세요.
달이 보이고요. 별이 보이고요. 고향 친구들이 보이고요.
하늘나라 엄마, 아빠도 보인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