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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명암집
원경
에세이
신국판변형/176쪽
2020년 12월 20일
979-11-5860-916-0(03810)
20,000원

■ 자서

 

시는 말하기 어렵다. 시와 선은 한 맛이다. 비록 그러하나 불가에서 시는 객진이고 망념이며 장애이다. 옛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배우는 이가 언어 문자에 빠지는 것은 마치 그물망에 바람을 불어넣어 부풀기를 바라는 일이니, 어리석은 이가 아니라면 미친 사람일 것이다.” 선은 부처님 마음이다. 시는 선과 같으니, 선은 깨달아 들어가는 것을 말미암고 시는 신묘하게 이해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마음에서 얻으면 경율론 삼장교의 문구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쓸데없이 나누는 이야기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마른 똥막대기까지도 모두 선을 나타내는 뜻이 되지만, 마음에 얽매여 근본을 잃어버리면 염화미소의 소식도 모두 교의 자취가 될 뿐이다.
대저 시는 뜻을 말하는 것이니 그 뜻이 보존된 것을 보면 그 사람됨을 알 수 있다. 시를 어찌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시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말로 드러나는 것으로, 말의 골수이다. 그러므로 그 말에 드러난 것을 보고서 그 사람의 내면에 쌓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마음의 바탕이 노래로 발현되어 나온 것이다. 맑고 한가하여 속세의 비린내를 끊어버려야만 귀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본래 시에 능하지 못하고 또 성률에도 익숙지 않아 고금 사람들의 시집을 읽을 때마다 스스로 터득하지 못하였다. 문장은 그 뼈의 기운을 위주로 한다. 기운이 높으면 글도 따라 높아지고 기운이 시들하면 글도 따라 시들하니, 그 시문에 표현된 것을 보면 그 문기의 실체를 숨길 수 없다. 나는 천성이 소루하고 게을러서 진취할 뜻이 없기 때문에, 세상에 구하는 것도 없고, 사람에게 거슬릴 것도 없다. 하물며 시를 짓는 일에 더 무엇을 구하랴.
대개 시는 담담한 듯하지만 천박하지 않고, 아름다운 듯하지만 음란하지 않으며, 시의 안목을 세운 것이 진실로 원대하여 읽을수록 더욱 맛이 나니, 옛 스님들은 초연히 현묘한 시법을 깨달은 무리가 아니겠는가. 나는 항상 시가 사람의 마음을 황폐하게 한다고 경계하였는데, 시인은 뜻의 경지가 텅 비어 선을 수행하는데 큰 병통이 된다고 여긴다. 그래서 시 짓기를 즐겨하지 않고, 또 시문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여 버려지고 흩어진 것이 이미 적지 않다. 게다가 이른바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한다는 말은 당세에 알려지지 못하여 그 행적이 사라지는 것일 뿐이다.
마음을 자맥질하여 터득함이 있는 것은 근본이 있는 시문이니, 덕은 없고 문장만 짓는 나 같은 사람과는 거의 한 부류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은미한 생각이 온축된 것에 대해서는 나의 얕은 소견으로는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닌 점이 있으니, 후대의 안목을 기다린다. 지금 내 자취를 돌아보니 내 뜻을 잃은 지가 거의 반평생이다. 비로소 나의 옛집으로 돌아와 나의 참회록을 썼으나 아직도 지난 허물을 고치지 못해 땀이 흘러나와 등골을 적신다.
아! 이제 졸고를 ‘초명암집’이라 제하여 펴내니 이백육십여 편이 수록되었다. 내 가슴이 두근거려 세상 사람들이 비웃을까 두려워 목 안이 간질간질하여 자주 침을 삼킨다. 다만 천박한 시권은 곧 침 뱉는 그릇일 뿐. 시는 곧 그 사람이라 이는 내 자신을 말한 것이니, 한번 보시고 한번 웃어 주시면 다행이노라. 오직 나는 이 서툴고 비루한 시집이 책벌레의 먹이나 장독의 덮개나 혹은 종이 이불 한 장이 되는 것을 면하지 못할 걸 원하노라.

알겠는가.

내 손과 부처님의 손
똥 치우는 쓰레받기며 빗자루
집어들자마자 문득 가버리니
누가 앞이며 누가 뒤인가.

내 다리와 당나귀 다리
걸음걸음 밟아나가다가
허공을 밟아버렸구나
마음 내키는 대로.


불기 2564년 중추절, 방장산 초명암에서
원경 합장

 

■ 본문 중에서


◯ 憎書蠧 책 벌레를 미워해서

書癖化爲爾 글에 미친 네 놈이 변하여
食之亦甘旨 먹어치우고 달게 맛보는구나.
若知當食食 만약 먹어야 할 걸 알고 먹는다면 
空字食無止 ‘공’ 자나 그침 없이 먹어라. 


◯ 過廣德寺僧塔    
―禪僧石坡入滅後散骨處    

광덕사 승탑을 지나다가
―선승 석파가 입멸한 뒤 유골을 뿌린 곳이다

僧居靑山中 스님은 푸른 산에서 살았지만
僧去山不老 스님은 떠나고 산은 늙지 않았네.
客來無故人 나그네가 찾아왔으나 옛 친구 없어
回頭淚春艸 돌아보며 봄풀에 눈물짓누나.


◯ 留別無相庵禪光 무상암 선광스님과 작별하며 남기다

楓林秋雨晩 저녁나절 단풍 숲에 가을비 내리니
花盡山紅綠 꽃은 다 지고 온 산은 붉고 푸르구나.
客去踏鍾聲 나그네가 종소리 밟고 가버리니
坐羨雲上鵠 앉아서 구름 탄 고니를 부러워하네.

◯ 寓意 뜻을 부쳐


棋上百年客 바둑판 위에 백 년 손님
芥中萬里僧 겨자씨 안에 만 리 수행자.
吸盡虛空處 허공을 몽땅 마신 곳에
翻轉任騰騰 몸 바꾸어 마음대로 다니네.


◯ 氷瀑 얼어붙은 폭포

水落忽變啞 물방울 지다가 홀연히 벙어리로 변해
冷聲黙氷壑 찬 물소리 묵묵히 얼어 벼랑이로다.
不見一點塵 한 점 티끌도 보이지 않아
無處虛空泊 허공조차 머물 데 없구나.


◯ 淸信女求一偈 청신녀가 한 게송을 구하기에

可笑騎牛子 우습구나, 소를 탄 사람이여
騎牛今覓牛 소를 타고서 지금 소를 찾는구나.
放禪望北斗 선정을 풀고 북두성 바라보니
虛空破碎流 허공이 깨져 흐르고 있네.

목차

 

초명암집
蟭螟庵集

제1권


憎書蠧   책 벌레를 미워해서
過廣德寺僧塔   광덕사 승탑을 지나다가
留別無相庵禪光   무상암 선광스님과 작별하며 남기다
寓意   뜻을 부쳐
氷瀑   얼어붙은 폭포
淸信女求一偈   청신녀가 한 게송을 구하기에
無心吟   무심을 읊다 
賞春   봄을 감상하며
題修禪巖窟   수행하는 바위굴에 제하여
登細石平田望天王峯   세석평전에 올라 천왕봉을 바라보며
與淨行   정행에게
水鐘寺   수종사
極目   멀리 바라보다
絶筆   절필
贈無名山人   이름 없는 스님에게 주다
春興   봄날 흥에 겨워
詠月印江   강에 비치는 달을 노래하다
聊坐聽松風   조용히 앉아 솔바람 소리를 듣고 
落花   낙화
雲住寺 臥佛   운주사 와불
讀金剛經   금강경을 읽고
霽月   맑게 갠 달밤   
閑居蟭螟庵   초명암에서 한가로이 살며
藏經閣   장경각
幽居   그윽이 살며
挽淸華禪師   청화선사 만시
病懷   병중 회포
我空觀   아공관
赤貧   적빈
戱作 示禪光山人   희롱 삼아 지어 선광에게 보이다
寄寓   붙어살며
鴨池浮萍   안압지의 부평
居處   거처
馬耳山   마이산
無影塔   무영탑
山庵夕景   산속 암자의 저녁 풍경
暴雪後   폭설이 내린 뒤에
夢中遊須彌山頂   꿈속에 수미산 꼭대기에 노닐며
古寺址有感   옛 절터에 느낌이 있어
贈禪光   선광에게 주다
自責   스스로 꾸짖으며
心鏡   마음의 거울
贈淨行   정행에게 주다
贈擬人驢年   사람을 본떠 당나귀 해에게 주다
漫行   만행
秋日 山中日記   가을날 산중일기
贈影   그림자에게 주다
南沙所見   남사 소견
金翅鳥   금시조
訪無相庵不遇   무상암을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해
一物賦   한 물건
述懷 八首   술회, 여덟 수
聽雨卽事   빗소리를 듣고 즉시 짓다
晴後卽事   비 갠 뒤 즉시 읊다
炎蒸中示門徒   찌는 더위에 문도에게 보여주다
無碍舞   걸림 없이 추는 춤
戱贈石坡山人   석파스님에게 희롱 삼아 주다
贈石彌勒   돌미륵에게 주다
示門徒   문도에게 보이다
贈蛛禪子   거미에게 주다
過廢寺   버려진 절을 지나며
七仙溪谷   칠선계곡 
絶景   절경
到故鄕   고향에 이르러
旅店愚答   여관에서 어리석은 대답하다
寄法萬和尙   법만화상께 부치다 
謹呈月下堂   월하당께 삼가 올리다
幽夜吟   그윽한 밤에 읊다
悟道頌   오도송
涅槃頌   열반송
別母   어머님과 이별하며
般若心經吟   반야심경을 읊다
宿羽客窟夜話   우객의 굴에 묵으며 밤새워 이야기하다
隱居   숨어 살며
尋訪禪僧不遇有感   선승을 찾았으나 만나지 못해 감회가 있어
送石坡歸飛來寺   비래사로 돌아가는 석파를 보내며
中道吟   중도를 읊다
曉吟   새벽에 읊다
宿山天齋   산천재에서 묵으며
登南江矗石樓   남강 촉석루에 올라
自終寓懷   스스로 마치며 회포를 부치다
示入室門徒   입실 문도에게 보이다
贈講主   강주에게 주다
瑞雪偶題   상서로운 눈에 우연히 쓰다
戱題   삼아 짓다
獨樂   홀로 즐기며
兜率庵   도솔암
過紅流洞   홍류동을 지나며
自嘆   스스로 탄식하며
與友遊雙溪寺   벗과 함께 쌍계사에 노닐며
草庵探梅   초암에서 매화를 찾아
茶道   다도
俱足   구족
夜坐   밤에 앉아
挽月下和尙   월하화상 만시
記別   기별
松廣寺暮景   송광사 저녁 풍경
贈法萬上人   법만 상인께 드리다
贈門徒   문도에게 주다
寄余戱吟同字   같은 글자로 장난삼아 읊어 나에게 부치다
狂夫   미친 사내
戲吟   장난삼아 읊다
蟭螟庵容膝軒   초명암 용슬헌
穴居   동굴에 살며
上方丈山 法界寺   지리산 법계사에 올라
自述   자술하다
偶題   우연히 제하다
自歎   스스로 탄식하며
西臺 水精庵   서대 수정암
一室   방 한 칸
默默夜坐   밤에 묵묵히 앉아
聽蟬   매미 소리를 듣고
觀物吟   관물음
山中獨坐   산중에 홀로 앉아
梅花吟   매화를 읊다
牧牛曲   목우곡
自嘆   스스로 탄식하며
讖悔錄   참회록
扶蘇庵   부소암
自照吟   스스로를 비추어 읊다
時節有感   시절 유감
山寺深境   깊숙한 산사에서
安心賦   안심부
夜吟   밤에 읊다
打打打   타, 타, 타
出格丈夫歌   출격장부가
雪竹賦   설죽부
行路難   길가는 어려움
對燭   촛불을 보고
劍客   검객
自警賦   자경부
雪山賦   설산부
宇宙流   우주류


咢   악!
贈客僧   객승에게 주다
寄淨行   정행에게 부치다
我是誰   나는 누구인가
題白水竹後   맹물로 그린 대나무에 제하여
行色   행색
畵中庵   그림 속의 암자
吹毛劍   취모검
贈釋學海   학해 스님에게 주다
世路   세상 살아가는 길
贈盜飯   밥도둑에게 주다
淨行   깨끗한 보살행
曉雪   새벽에 내리는 눈
孤行楓洞   단풍 든 골짜기를 홀로 가며
臥禪   누워서 하는 참선
淨心   깨끗한 마음
寄釋學海   학해스님에게 부치다
筆法   필법
爲什麽求佛   부처는 왜 찾나
雪夜   눈 내리는 밤에 
相思花   상사화
天籟   천뢰
早朝喫粥偶書   이른 아침 죽을 먹고 우연히 쓰다
冬夜一筆揮之   겨울밤에 일필휘지하고
客中自嘆   나그네살이 중에 스스로 탄식하며
獨居樂   홀로 사는 즐거움
贈學僧   학승에게 주다
一柏   잣나무 한 그루
觀心   마음을 보다
自遣   스스로 마음을 달래며
贈法子一偈   법제자에게 한 게송을 주다
汲翁   물 긷는 늙은이
一隻眼   마음의 눈
春事   봄 일
入定   선정에 들어
江上   강가에서
夫婦松   부부송
苦雨   장마
格外消息   격외소식
對秋山   가을 산을 바라보고
自道幽意   스스로 그윽한 뜻을 말하며
狂言   미친 소리
遊紅流洞   홍류동에 노닐며
挽雪嶽霧山和尙   설악무산 화상 만시
笑翁   늙은이를 비웃으며
蝸牛庵   달팽이 암자
口吟   입으로 읊다
見燈下麽也   등불 아래 허깨비를 보고
寫阿含經   아함경을 베끼고
夢中陷入地獄   꿈속에 지옥에 빠져
汝矣盜穴   여의 도적굴
歎蠹   좀을 탄식하며
啄木鳥   딱따구리
處中   중도에 머물러
蒼蠅賦   쉬파리를 읊다
雪夜述懷   눈 내리는 밤에 회포를 적다
題座壁   앉은 자리 벽에 쓴 시
日常茶事   매일 차 마시는 일
贈牛菩薩   소 보살에게 주다
羅漢殿   나한전
壁上老鷲畫   벽 위에 그린 늙은 독수리
夢中夢   꿈속의 꿈
望月寺   망월사
與隱迹山人   자취를 숨긴 스님에게
夢中宴   꿈속의 잔치
戒盈杯   계영배
一行三昧   일행삼매
沒滋味   맛이 없어
野花   들꽃
讀老子偶吟   노자를 읽고 우연히 읊다
瑞山摩崖三尊佛像   서산마애삼존불상
嘲口疾   병든 입을 조롱하여
次客僧晨起韻   새벽에 일어나 객승의 시에 운을 빌려
讀初發心自警文   초발심자경문을 읽고
宿法界寺   법계사에 묵으며
過中陰記見   중음을 지나며 본 일을 쓰다
夜攬古鏡   밤에 옛 거울을 들고
無根樹   뿌리 없는 나무
自解   스스로 해명하며
贈門徒   문도에게 주다
白鷺   백로
賞春   봄놀이
贈上人   상인께 드리다
謝人送茶   어떤 사람이 차를 보내 주었기에 사례하며
莊周之夢   장자의 꿈
曉枕聞童謠感吟   새벽녘 베갯머리서 동요를 듣고 느낌을 읊다
借生   빌려 살며
挽人   죽은 이를 애도하며
元日孤坐   설날에 홀로 앉아
尋訪鼇山四聖庵   오산 사성암을 찾아보고
知非吟   지비음
井上之藤 以自省察   ‘우물 위의 등나무’로 스스로 살피다
贈門徒   문도에게 주다
贈靈祐學人   영우학인에게 주다
戲作   희롱하여 짓다
書懷   회포를 적다
題善友禪室   벗의 선실에 제하여
自慰   스스로 위로하며
窄庵   좁은 암자
自述   자술하다
望筆峰   필봉을 바라보며
送客僧   객승을 보내며
題吾小庵屛   나의 작은 암자를 그린 병풍에 제하다
贈行脚僧   행각하는 스님에게 주다
陋室行   좁은 방을 노래하며
家風   가풍
晩題與石坡禪子   늦게야 석파선자에게 시를 지어
擧洋蔥   양파를 거량하며
貧   빈
贈傀儡   꼭두각시에게 주다
一拳頭   한 주먹
最近佛祖   요즘 부처님
上堂   당에 올라
心劒   심검
泥牛吼   진흙소의 울음
問我   나에게 묻는다
彼此間   피차간
又問我   또 나에게 묻는다
沈默   침묵
獨踽路   홀로 가는 길
黃金佛事   황금불사
本來佛   본래부처
自問   스스로 묻는다
擔夫   짐꾼
劍法   검법
贈法子   법제자에게 주다
咄咄咄   쯧, 쯧, 쯧
與西天   서쪽 하늘에게
空空   공이 공하여
厭煩之旅行   지긋지긋한 여행
白骨觀   백골관
又懺悔錄   또 참회록

원경 圓鏡

 

경남 산청에서 나서 시인, 번역가로 활동하며 지금은 지리 산 초명암에 안거중이다. 속명은 이상원李商元, 남명문학 상 신인상을 수상하여 등단하고, 서사시 『서포에서 길을 찾다』로 제2회 김만중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풀이 가는 길』, 『여백의 문풍지』, 『만적』, 『소금사막의 노 래』, 『벌거벗은 개의 경전』, 『마음의 뗏목 한 잎』, 『침묵의 꽃』이 있으며, 역·저서로 『하원시초』, 『노비문학산고』, 『기 생문학산고 1,2』, 『불타다 남은 시』, 『무의자 혜심 선시집』, 『스라렝딩 거문고소리』, 『미물의 발견』, 『동창이 밝았느냐』 등이 있고 『우리말 불교성전』, 『정중무상행적송』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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