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말
시 쓰는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함께 아프던 마음을 계량해본다. 부끄럽다. 기대치도 낮았지만 실행은 더욱 부족하다. 어쩔 것인가? 그러나 방관하지 않았다. 개인의 세상과 대중 세상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며 함께 해보았다. 우선 나부터 살펴보았다. 이웃을 돌보았다. 그리고 홀로걷기를 시도했다. 혼자 가지 말라고 또 역마살이 들렸다고 충고도 비난도 날아왔지만 나이가 들면 무모한 용기도 난다. 아름다운 땅, 우리나라를 우리말로 정보를 얻고 걸었다. 경이롭고 다채로웠다. 큰 모험은 없었지만 꼭 해보고 싶었던 시간과 기회를 스스로 창출해냈다. 새로운 공간 이 나의 열정에 불을 지폈다. 고귀한 시간은 충만함을 선물했다.
역사적 기록에 참여한다. 구름처럼 흩어 보낼 뻔한 감성과 경험을 엮어본다. 적극적인 현실참여란 어디가 한계일까? 이 참담한 펜데믹 시국에 페이스 쉴드 발열체크 방역요원 봉사로 현실을 수용했다. 더 혹독한 구역의 봉사자들의 희생을 존중한다.
임인년 지훤당에서 시인 오소후
본문 중에서
**아직 겨울 끝자락
동네밭 이랑을 다듬는 아낙 묵은 비닐을 걷어내자 흙은 저항을 잊고 가슴 열고 하늘과 소통하고 용화사 앞 구불길을 걷고 개불알꽃 몇이 푸른 미소를 보내자 두릅 순이 올라오는 저기, 절집 풍경이 뎅 뎅 뎅 소리를 빚고 아직 종다리는 날지 않아, 분명 이것만은 확실하다
**더 이상 악수는 없다
반갑다고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두 손을 마주잡고 흔든다 얼마나 힘들었냐고 또 좋은 날이 올거라고 그때 만나자고 두 손 마주 잡고 흔든다 세계공통인사법이 된 앵글로색슨계 민족이 시작했다고 하는 악수, 낯선 사람을 만나서 해치지 않겠다는 표시로 손을 내민 경건한 예절이 위기에 봉착했다 우리는 악수도 뜻대로 못하는 시국을 헤쳐가고 있다 누구에게 물어볼까 멸종 위기에 봉착했던 인류의 종족 27종을 소환하여 묻고 싶다 그러나 누군가 일러준다 네 안의 아이 빈둥거리며 놀기 좋아하고 가망 없는 일에 도전하며 그 이유를 캐묻는 우리의 특성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낙관한다 나도 동감하고 싶다
**갯벌, 지금 우리가 서있다
돌머리 갯벌에 서있다 밀물이 밀고 간 갯벌, 게발로 걸어갈 수도 없고 짱뚱어처럼 뛸 수도 없다 구멍 속에 숨은 낙지가 될 수밖에 저 먼 바다로 간 바닷물의 안부가 궁금하다
수렁에 빠진 우리들의 두 발을 어떻게 뺄 수 있을까 물새처럼 날아서 다닌단들 악마구리같은 코로나를 피할 수 있을까 아아아 한탄이여 지구촌을 구원하소서
**무암사(霧巖寺)에서
안개가 피어오르면 노장암이 오롯이 서서 계신다 금수산 꽁꽁 얼어붙은 무암계곡을 오른다 광명굴에 촛불을 켜고 무상을 삼킨다 이 뭐꼬 화두를 잡은 나, 그만 안개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소부도골, 소가 사리를 품었다는 이야기를 남긴 부도탑에서 누가 두 손을 모으지 않겠는가 비탈 언덕 오래된 대추나무 아래 붉은 대추알은 달디달다 그 맛을 보는 혀 바위에 새겨진 도홍경의 시를 읊어볼까 “산중에 무엇이 있는가? 산마루에 흰 구름이 많네. 다만 스스로 즐길 뿐 그대에게 가져다줄 순 없네.” 하루하루가 빛나는 나날이다 천개의 해가 뜬 듯이 푸르고 높고 가파른 암릉들이 출렁인다 구름학을 타고 여래가 오시는가
**남항진 아라나비
아라아라아라 몇 번이고 불러도 아름다운 바다라는 우리말 아라 위를 나비처럼 날아간다 아라가 물결을 접고 나비가 날개를 접으면 다시 사람으로 환생한다 바다 깊이를 일러준 이가 없어 공주처럼 날개가 젖어 돌아온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가 이제는 집라인으로 날아올라 돌아온다 아라아라아라 몇 번이고 불러도 아름다운 바다라는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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