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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3년
박윤근
에세이
신국판/304쪽
2019년 06월 20일
979-11-5860-656-5(03810)
13,000원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313년 당시 최강국가인 로마는 문명의 표준으로 기독교를 내세우며 오스만제국에 의해 동로마가 멸망할 때까지 천년의 팍스로마시대를 열게 된다.
이렇게 로마의 반도문명으로부터 영국의 지중해 문명과 미국의 대서양 문명에 이르기까지 1600여 년 동안 이 세상을 지배한 사상과 종교는 기독교였다. 이제 미국의 대서양 문명이 몰락의 길을 걸어가고 있고 새로운 태평양 문명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태평양 문명의 시대에 이 세상을 지배할 사상과 종교는 불교다. 우리는 불교의 동체대비의 정신으로 70년간 분단된 남북한을 통일시켜 통일된 대한민국이 태평양 문명의 주역이 되어 세계최강국으로 우뚝 설 것이다.
믿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나 말고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통일이 된다 해도 어떻게 우리가 세계 최강국이 될 수 있을까. 미국이 아무리 해가지고 있다지만 그렇게 쉽게 몰락해 갈 것 같지 않고 설혹 그렇다 해도 중국몽을 갖고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한 중국이 장승처럼 버티고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당연한 비판이요, 조소일 수 있다.
그러나 냉정을 되찾고 차분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것으로 나는 믿는다. 내가 몰랐던 세상, 나와 무관했던 세상을 만나게 되면,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으로 다시 믿는다. 이제 역사상 경험하지 못한 그 영광의 순간을 맡기 위해 지금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소여한 문체로 감히 제언하고자 한다.
인간은 발 앞만 볼 수밖에 없고 5분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깜깜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다툼이 있고, 미움이 있고 욕망이 생겨 못난 성질과 함께 평생을 함께 자란다. 다툼과, 욕망과 미움은 영원한 나의 동반자요 죽을 때 까지 헤어질 수 없는 다정한 나의 친구다. 우리네 생에 다툼과 미움이 없고 욕망과 어리석음이 없다면 이 세상 무슨 재미로 살 것인가.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따지고 보면 사람목숨 100세 시대에 배설물을 안고 사는 우리네 인간들로서 욕망이란 게 인생의 진열된 상품 중에 가장 관심을 끄는 매력 있는 상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세상에서 바른말을 하고 사는 사람들은 그래도 이렇게 살 수만은 없다고 소리 지르며 사자처럼 포효한다.
뜻있는 사람들은 사람목숨 100세 마당에 펼쳐지는 여러 연출 중에 정치가 바르게 서면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설계할 수 있다고 합창을 한다. 소위 인간 세상에 지도층의 인사들이 백성을 위해 헌신하고 돈 많은 재벌들이 가난한 사람에게 자기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을 보면, 민초들은 우리는 그걸 보고 똑바로 배워 민들레 홀씨처럼 세상에 작은 씨앗이 되리라고 다짐한다. 백성이란 이렇게 순진무구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문명이 사람목숨 100세 수준에 머물러있는 저등문명의 세계라도 지도층이 백성을 짜먹지 말고 자신들의 출세의 도구로 이용하지 말고 자기를 희생해서 사회의 온정의 거울을 맑게 하면, 백성들은 감화 되어 국가를 위해서 봉사하고, 헌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중은 이해에 얽혀 뒹굴고 있는 것 같지만 뜻을 만나면 영혼의 고동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좋은 정치를 만나면 민중의 가슴속에 설레는 감정의 물결이 춤을 춘다. 이렇게 정치라는 것은 인생의 삶에 있어서도, 국가의 이상을 실천하고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대단히 중요한 품목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작금의 한국의 정치는 어떠한가. 한국의 정치인 중 백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버릴 수 있는 훌륭한 정치인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한국의 정치인 중 국가를 위해, 남의 집안은 물론 나의 집안이라도 옳은 일이 아니면 아니요 라고 소리치며 옷을 벗을 용기 있는 정치인이 한 명이라도 있는 것인가.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 정치가 바뀌면 세상이 달라지고 지축이 바로 서듯 나라가 바로 선다. 정치가 이상적으로 바뀌면 천지가 개벽되듯 나라에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 보수는 근 60년간 정권을 잡았어도 무슨 미련이 그렇게 남아, 전열을 가다듬고 진군의 나팔을 불어대는가, 국민 무서워할 줄 모르고 날뛰는 욕망의 부나비들의 허영심을 이제는 백성의 뜻으로 정화하여야 한다.
불교문화시대의 가르침은 너 옳고 나 그름이다. 개인을, 집단을 다루는데 너 옳고 나 그르다는 세상의 큰 지혜를 정치에 활용하지 못하는 집권당은 더 공부하고 더 훈련해야 기적적으로 전개될 역사의 드라마에 조연이라도 맡을 수 있디. 욕망이 살아있다. 욕망이 부질없이 넘치면 백성이 눈에 안 보인다.
중국 근대사에 대청제국을 건설한 청조 3대 순치라는 임금이 있었다. 한적한 어느 날 깊이 사념에 잠기는데 전생에 승려였든 내가 세상에 태어나 얼마나 타락했으면 임금 노릇 하느냐고 곤룡포를 집어 던지며 아들 강희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산속으로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었다. 천하에 황제자리를 타락 중에 타락으로 알고 곤룡포를 벗어버린 그런 임금이 있었기에 오늘날 중국이 대국이 될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나라엔 그런 통치자가 있었던가. 한 번 잡으면 죽을 때까지 해먹겠다는 욕심 많은 통치자는 있었어도, 백성의 뜻을 하늘의 뜻으로 알고 인내천으로 백성을 섬기는 현철한 임금이 없었기에 태평양 길목에 드러누운 늙은 비렁뱅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란다.
나는 이 책에서, 선진 국민이 되는 첩경인 정사각 운동을 제창하고 세계 문명을 주도할 수 있는 불교사상을 노래하고 춤췄다. 특히나 당신들이 지금 알고 있는 불교의 지식은 참불교의 정신과 너무나 차이가 나며, 당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불교에 관한 지식은 너무나 지려천박하다고 거칠게 표현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학자도 어떤 정치인도, 어느 미래학자도 통일한국이 세계최강국이 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나, 세계적 석학들인 폴 케네디나, 샤무엘 헌팅턴의 진단에도 21세기의 새로운 문명사에 영향을 끼칠 나라 중에 한국은 들어가지 않는다. 심지어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필리핀이 태평양 문명의 시대에 아세아의 한 축이 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적이 있다. 틀린 답안지다. 그들 모두 세상을 바로 볼 줄 아는 정견(正見)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계를 통치할 지배의 힘이 군사력, 경제력, 그곳에서 나올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로마가 1천 년간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했다면 영국은 산업혁명을 거쳐 경제적 힘으로 세계를 지배했다. 미국이 과학의 힘으로 세상을 견인했다면 통일한국은 문화의 힘으로 세상을 주도할 것 이다. 통일은 역사의 명령이요, 세계사적 사명이요 지구사적 요청이다. 역사의 신(?)이 주관하듯 세계사의 물결이 동북아로 밀려오고 있다. 지도를 한번 살펴봐라.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부터 그리스 헬레니즘을 거쳐 로마의 반도문명으로 영국의 지중해 문명을 지나 미국의 대서양 문명에 이르기까지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새로운 동양 문명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태평양 문명의 시대를 이끌 핵심적 사상은 무엇인가. 까치와 까마귀의 비유를 들어 설명해보기로 한다. 한국에서 까치 소리를 들으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하며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든다고 한다. 쉽게 정의하면 까치는 좋음이요 까마귀는 나쁨이다. 까치는 밝음이요, 까마귀는 어두움이다. 까치는 기쁨이요. 까마귀는 슬픔이다. 서양문명은 선과 악, 시와 비, 명과 암, 천당과 지옥 등 이렇게 세상을 두 개의 대립된 개념으로 나누었다. 그래서 모순과 투쟁이 생기었다. 너에겐 총을 주고 나에겐 화약을 주어 머리가 터지도록 싸워 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세상에 융합(fusion)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융합이란 여러 종류의 것이 녹아서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기술이 융합되고 의학이 융합되고 과학이 융합되고 예술이 융합되고 음식마저도 융합이 된다. 사람들은 생각 없이 무심코 받아들이지만 나는 신기한 눈으로 변화의 모습을 흥미롭게 관찰하게 된다. 새로운 문명의 시대가 열리기 전에 세계사를 주관하는 역사의 신(?)은 도둑이 오기 전에 이따가 지구촌이 밟고 가야 할 큰 그림을 먼저 그려놓는 것 같다.
지금까지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이나 헤겔의 변증법에 이르기까지. 서양철학은 지구의 문제를 흔쾌히 해결해 주지 못하였다. 태평양 문명의 시대에 지구촌의 문제를 해결해 줄 핵심 사상은 불교의 중도(中道)사상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융합이다. 융합은 진리의 울림이다.
중도(中道)사상에서 선과 악, 시와 비, 미와 추는 양변이다. 선·악, 시·비와 같은 상대의 대립의 양쪽을 버리면, 모순과 갈등이 서로 통해서 하나로 융합하게 돼 대립과 투쟁의 세계를 소멸시킨다.
말하자면 까치와 까마귀는 양변이다. 까치는 기쁜 소식을 주고 까마귀는 나쁜 소식을 전해준다는 것은 사람들의 고정관념이다. 우리는 어미의 탯줄을 끊고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고정관념의 덫에 걸려 포로가 되었다. 곱다·밉다, 싫다·좋다라는 분별심이 생겨 모든 사물을 이분법으로 나눈다. 너는 좋고 저는 싫다. 까치와 까마귀에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제거하면 까치와 까마귀는 서로 융합하여 4차원세계로 진화된다. 원래 까치와 까마귀는 아무러한 원죄가 없었다. 사람들이 씌운 고정관념의 덫에 걸려 까마귀는 미운 오리 새끼로 천대만 받아왔고, 까치는 지나치게 사랑받는 예쁜 새가 되어 아집의 포로가 되어 버렸다.
고정관념에서 인간은 어떻게 해방될 수 있을까. 과연 인간은 새가 알을 까고 나오듯이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분명히 이 책은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결국 고정관념의 제거는 중도(中道)사상의 완성을, 민주주의 이념뿐 아니라, 참공산주의 이념마저도 뛰어넘는 이 세상 최고의 절리이자. 절대의 사상을 잉태한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한번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멋진 전투(?)가 아니겠는가.
반도체 메모리 분야에 아키텍쳐(설계, architecture)가 꼭 필요하듯이 한국의 정치에도 아키텍쳐가 꼭 필요하다. 현재의 동북아의 한국이 처한 입장은 뛰어난 아키텍트(설계자, architect)에 의해서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한 단계 도약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나는 사심 없는 한국의 창조적인 아키텍트가 되기를 의망하며 한국의 미래를 정밀하게 설계해 본다.

 

두광(斗珖) 박윤근

 

책머리에 _4

 

1. 여성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_18

2. 태평양 문명의 주인공은 통일한국이다 _28

3. 정사각 운동을 제창한다 _106

4. 예수는 머물고, 석가모니가 오는구나 _132

5. 미국의 대서양 문명은 석양의 지는 해다 _192

6. 중국은 19세기 독일을 모방하고 있다 _222

7. 먼 길 가는 길손이여, 좀 쉬었다 가자 _248

 

두광 박윤근 (斗珖 朴潤根)

 

서울 출생

성균관대 사학과 졸업

미 하버드대 정치학 수학

금문산업주식회사 대표이사

현대정치외교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사단법인 한국인권옹호협회 사무총장

·미 사회복지협회 공동대표(본부: 로스앤젤레스)

유엔국제노년협회(ISCA) 정회원

사단법인 남북민간교류협의회 상임위의장

사단법인 한국인권옹호협회 이사장

 

수상

47회 세계인권선언기념대회

법무부 인권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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