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말 그동안 쌓여온 시간들이 문지방을 넘어 세상 밖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아껴두었던 내 안의 언어들을 털어놓고 가슴 후련하게 웃어보려 합니다 봄이 가까이 오고 있는지 해가 길어지고 햇볕도 따뜻합니다 봄을 기다리는 따뜻한 마음으로 자연을 사랑하겠습니다
■ 본문 중에서 **거울 속의 눈
빛이 반짝이던 유리 너머를 의심의 눈초리로 쏘아보곤 했다 뾰족한 것들이 흩어져 있고 부드러운 이파리도 날아다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침범하며 넘보았다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한 그 여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빨아들인다 거짓은 부끄러운 꼬리처럼 감추고 겉치레만 웃고 있는 고통스런 슬픈 눈 조금씩 건너뛰어 보이지 않는 빛과 영원 사이를 오고 간다 환상을 숭배하고 자아도취에 목마른 여자들을 안아주고 눈물 닦아준다 버릴 수 있을 만큼 버린 자는 유리벽에 부딪혀도 깨지지 않는 비법을 배운다 어디까지 왔는지 길을 잃었을 때도 또렷한 눈빛으로 친절하게 바로 세워준다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머리 위에 그동안 먹은 쌀밥 무게만큼 이팝나무 꽃이 하얗게 내려앉았다 고인 물 한 방울도 없는 얼굴이 파랗게 웃는다 뒤쪽에 누가 숨어있는지 손으로 만지며 아무도 없는 빈 유리 속으로 들어간다
**그대와의 푸르른 날
그대 먼 길 떠난 뒤 나는 바다의 섬으로 남았습니다 하얗게 밀려오는 파도 때 없이 돋아나는 해초의 청정함을 막을 수도 없습니다 밀어내고 쓸어안고 잠잠할 날 없는 마음 밭 보내고 또 보내면 생각도 멀어질까요 그대와 푸르른 날 지울 수 없어 썰물에도 씻겨가지 않은 그런 날을 추억하며 삽니다 물 마르고 향기 잃으며 그대 가까이 가고 있는 세월 바다 끝 어딘가에 앉아서 날 기다리고 있는지 그립습니다
**눈 내리는 날
밤새 뒤척이며 잠이 오지 않은 것은 소리 없이 눈이 내리고 있었던 거야 창밖의 세상은 하얀 종이 위에 멋대로 그린 그림이었어 그 속에서 꿈을 꾸고 희망이 자라는 것은 온 천지에 마음에 드는 그림 하나쯤 그려볼 수 있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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