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말
백설 위에 첫발 내딛듯 백지에 시詩를 술述한다. 블랙홀 앞에서 번번이 휘청거려도 온전한 나의 나 지면 위에 담고 싶을 게다. 0.0001초 내 응급조치 필요한 생의 아포리아Aporia는 어쩌면 종말 예시한 한 맥 한 호흡과 맞닿아 있을 테다. 달을 한 개로 인식하는 것은 직면한 인간의 착시! 그러므로 달을 빚듯 존재에 대한 내면의 층 소통함과 수련은 감사요 신앙 아닐까. 남모를 장애 끌어안고 모른 척 아닌 척 살아가는 삶 자체가 페르소나Persona다. 육감六感으로 느껴진 감흥은 통찰하고 동화되는 다각도 내적 전율이며 안과 밖 알레고리요 심령의 울림이다. 이질적 관계망은 아무 일 일어나지 않을 태세로 생성과 소멸의 페달 밟으며 어느 때까지 쾌속으로 흐를 수 있을까. 온몸으로 글 쓰며 흘러가는 물고기같이 침묵할 수 없는 시대와 증언해야 할 서사적 사유 길은, 웅숭깊은 천 개의 달항아리다.
2024년 12월 백소연
*그 집 앞, 노송老松
1. -그러므로, 인생이란 기도하는 무릎걸음으로 태초에 거부할 수 없는 성령과 물과 피로 고백하는 신앙인 것인데 종국에 몇 개의 장場 몇 개의 막幕 하나의 극劇 이룬다지요?
길 하나 건넜지요 약속도 없이 차마 걸어 들어가지 못해 은륜의 힘 기대 조금씩 등 떠밀려 들어섭니다 굴렁쇠 마냥 구르는 것도 잠깐이요 스치듯 사라지는 햇빛 아래 안개는 이슬인데 등에 칼 꽂는 손 돌아 나오면 인정도 외면만큼 뼈 시리게 아플까요? 가만 눈 감고 물어보았습니다 반쯤 열린 미닫이만큼 시절도 열렸을까 싶은 날
심장 깊이 박힌 아흔아홉 개의 못과 206개 뼈 모조리 시리디 시려왔습니다 잘려나간 손가락 눈물 피 될 때 시베리아 벌판 그대들 얼음심장 뜨거웠을까요? 이유 없는 눈흘김은 살인 천국이지요 온기 없이 소문만 거푸집으로 들어 올린 터, 고려 시대 여인처럼 기울어진 저울 아궁이 불씨 전멸한 그 물바가지는 토끼가 잃어버린 달의 암호였을까요 우물길 파고 들어가다 불현 이쯤, 뚜벅이 발길 멈춘 게지요 피비린내 장자 상속 손에 쥔 야곱같이 추상 뛰어넘는 지혜는 뱀인데 고조, 증조, 친할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의 그 어머니 혼魂, 평지로 드러누운 채 손발 잇닿은 흔적 하나 없이 개똥꽃민들레개망초며느리밑씻개고들빼기 머리에 이고 지던 시공간 다 어디로 옮겨 앉혔을까요
아으, 촛대 없는 방구석의 침침함이라니!
헛되고 헛되고 헛된 사유 한 줌 흙 빚은 자화상 기록 중인 다 늙은 해, 어느 별 어느 달에서 온 호적인지 쥐도 새도 모르게 그 집 앞, 족적 찾아 그림자로 누웠네요 뒷짐 지고 긴 곰방대로 호령하던 툇마루 앞 허리 구부러진 마당 한갓 춘몽일까요? 서까래 통째 뽑아 야반도주로 이주시킨 야곱 전생 같은 딱, 거기 그 자리 편애의 지팡이며 혹주머니 허리띠 끌고 도둑 같은 복락 꿈꾸던 백발 망부석
한 세기 부비고 씹고 내뱉던 희고 선명한 서까래 그늘 사랑이란, 다이아몬드 반지 그램수가 전부인가 어쩌자고 살모사 발뒤꿈치 사모한 것인지 눈먼 시절 까무러친 것인데 숯불 된 저녁노을 냉가슴에 눌러앉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라니! 복원되지 못한 노정 초석의 단단한 뿌리 누가 통째 앗아갔을까 두고 건넜을까 침 뱉은 우물, 뚜껑 덮인 법문에 기대 앉았네요 돌도끼로 콱콱 찍어낸 인감도장, 삼우제도 끝나기 전 통째 끌어안은 대법관 앞 구더기 시글시글한 내용 증명 판도라 상자! 목격한 이들도 “쓰레기네요!” 목청 높여 허허, 끌끌, 쯧쯔 웃었다지요? 은 30냥 양심의 근수 목매 달아 논전답 집문서 씹어 삼키는 쌍심지 화폐 뱃구리가 면도날보다 오싹 소름 돋는 살얼음 속 도낏자루란 사실
들리시나요, 아시나요? 안주머니 단도와 송곳은 또 어쩌구요 가슴 저린 뒤통수에 대고 휘파람 부는 볼멘 싸가지의 싹 사랑 없는 독 가시 얼마쯤 키웠을까요? 오류 부작용은 인성 실종인 것인데 일백 개 바늘 칩 들고 낮밤없이 집어 뜯는 대상포진 세균은 뜨끈한 소금 거즈로 젓갈 담그듯 자근자근 숨죽여 주는 게 물풍선 없애는 기가 막힌 정답이라지요? 보리 껍데기 실린 3막 4장 피날레 쫓기듯 빈손으로 귀향시킨 혈血의 길
당신은 누구십니까
2. 마당 한 켠 신줏단지로 끌어안고 한여름 뙤약볕 드마시며 늙은 소나무 향수 하늘 등 기댄 것인데 뉘라서 옛 주인 맞이할까요 등경은 발 아래 두는 게 아니므로 진실조차 부재한 앞마당 옹이와 상처 없이 딱지 진 시절 어디 있을까만 아물어지지 않는 기억도 있어 씀바귀돌나물냉이돌미나리곰취곤드레취나물더덕 결코 쇠잔해지지 않는 담장 이빨 빠진 짐승 터 백골만 남겨둔 채 그늘로 내려앉았습니다그려
아재들의 나란한 족벌묘 길 닦음했을까 벌목된 수목 이웃 갈길 막는 그 길 그 산 차마 발 떼지 못해 흘깃 돌아본 날 입 큰 독사의 자식들 대문 밖 후딱 스쳐 가면 그만인데 창공은 무슨 일로 능청스레 푸르른 것일까요
혹, 아시나요? 삼우제 끝나기 전 야곱에게 문서 실어 나르던 도둑고양이, 어이해 우물 없는 남새밭에 정착하여 마른 웅덩이 물 채우듯 머나먼 길 내려다본 것일까요 보쌈하듯 떠나보낸 방앗간 안녕하신가요? 믿음 상실한 송곳니 취기 밴 옷 위에 심술 끼얹고 마녀 숲으로 들어가 광풍 휘날리던 그녀는 예뻤을까요?
서둘러 바늘허리에 실 꿰던 날 꽃 같지 않은 청춘 쭈그려 앉은 것인데 누군가의 화서花序* 사막 될 수 있음에 대해 화들짝 가면무도회 종결시킨 것일까요 혹여
확장된 심장 소식 들어 보셨나요?
가시 박힌 토방 주저앉았네요 추락은 날개 달린 비상망 나 • 무 • 의자 휑뎅그렁 내려놓고 열 자 스무 자 백 자 애끓는 천 년 사유 전신 누이시네
3. 다 늦은 저녁 어쩌자고 서녘 낯 붉은가 우주로 전송하는 전설 닮은 꿈 아그배나무 이야기 들은 적 있지요 울지 않는 캔디! 생인손 아린 엄마는 울며 물었어요 네 키 서너 배쯤 되는 천궁 물속 평화로 눕고 걷는 하늘 복 받았으므로 피눈물도 꽃 되었을까? 열매 없는 포도나무 넝쿨담 그, 그 집 쥐구멍 드나들 듯 오가던 댓돌 위 신발 자취도 없고 탱자나무 울타리 가시바람 정찰병만 서성거리네요
눈먼 나라 고래古來적 이야기인가 길보다 무서운 길 내려앉힌 서사 ‘삭제’ 버튼 눌러요 황무지에 쇠심줄 심어놓고 천 년 열매 기다리는 사랑 없는 꽹과리 무명 무당 손 붙들고 영혼 팔아넘긴 오페라, 씹히지 않는 선악과 읽어보세요 울리는 꽹과리는 사랑이요 용서는 B.C, A.D 십자가 종결이지요 창살 없는 가시 의혹만 자라고 태어나 먼 길 떠날 채비 중인
어른아이, 당신은 누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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