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말
노년이 되면서 생활은 단조롭고 평안한데 생각은 깊어진다. 세월이 아까워 하루하루가 의미 있고 싶은데 생각일 뿐이다. 그런 생각들을 모아 아홉 번째 시집을 엮어 보았다. 꼭 마음에 드는 한 권이면 족한데 그게 어려워 자꾸 쓰나 보다. 나의 세월은 저만치 노을빛으로 흐르고 있는데.
노을빛이 짙어가는 서재 창가에서 김성순
■ 본문 중에서 *정원길
우리 아파트 정원길은 꼬불 꼬불 예술이다 천국을 닮은 꽃밭을 걷다 보면 어느새 나도 꽃이 된다 꽃 이름 공부하며 걷는 서당길 외진 꽃도 찾아보라는 뒤안길 벤치에 쉬었다 가라는 주막길 평상에 이야기 널어놓고 가라는 사랑방 길
창조의 섭리 오묘한 빛의 조화를 읽으며 꽃을 좋아하는 소처럼 어슬렁 똑같은 길을 퍼즐처럼 걷는다 고목이라고 해서 꼭 늙은 꽃이 피는 게 아님을 확인하며 오늘도 꼬불꼬불 정원길에서 보석을 줍고 있다
*소리 3 광화문에 가면 외치는 소리 여의도에 가면 싸우는 소리 세상은 온통 삿대질에 고함 귀 막고도 살 수 없는 생지옥 전쟁터다
잘 살아서 시끄러운 세상 먹을수록 더 먹고 싶고 가질수록 더 갖고 싶고 패거리 아우성에 귀와 가슴은 퇴화하고 입과 눈만 커지고 있다
외쳐대며 사는 세상 들으며 살 순 없을까 손잡고 살 순 없을까 욕심의 하수인 되지 말고 이제 그만 부끄러운 줄 알고
염치 찾아 조용히 세상 끝에서 돌아설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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