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말
오늘날 시는 언제부턴가 모르게 늘어지고 길어졌다. 그런데 그 늘어지고 길어진 만큼 독자들과도 멀어지고 말았다. 자유시와 산문시의 확장은 분명 형식의 자유를 가져왔지만, 현대시는 구절구절이 복잡해졌고 의미는 겹겹으로 숨겨졌다. 그리곤 그 난해한 해석은 독자의 몫이라며 줄곧 방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는 긴 설명이 아니고 정갈한 울림이다.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구절보다는 읽는 순간 가슴에서 먼저 반응하는 언어가 시의 본래 모습일 것이다.
지금 세계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하이쿠>를 굳이 인용치 않더라도 이젠 시가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여백이 존재하며 여운이 피어나고 울림이 깊어야 한다.
나는 그간 일천 수의 시를 썼다. 모두 활자화되지는 못했지만 나름 자신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번 네 번째 시집을 엮으면서 위에서 말한 취지를 시도하려 한 줄에서 다섯 줄이 넘지 않는 형식으로 쓰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내 글재주가 일천 한지라, 정갈하고 간결하며 여백과 여운 그리고 울림이 깊은 글을 쓰지 못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미래의 시는, 설명하지 않되 혼자 가지 않고, 어렵지 않되 가볍지 않은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 어쩜 짧은 시는 친절한 것이다. 작가가 독자에게 친절할 때 독자들이 돌아오고 독자들이 돌아와야 비로소 시가 살아나고 우리의 문학이 다시 숨을 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행복
넷이 앉아 밥을 먹었다
*시작과 마무리
비 오는 날 우산이 되고 싶었다
비 오는 날 비 맞는 이 되었다
*그놈은 도처에 있다
미련은 젊은 날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놈은 도처에 남아 있더군
■ 평론 중에서
모든 예술은 형식과 내용에 따라 다르며 그 속에서 불가분을 만드는 사유의 간절함이 묻어나는 것이다. 시인은 그 간결한 향을 풀어내고 있다. 가을꽃이 마르고 서리가 내리면 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다. 인간도 자연의 이치에서 보면 입체적으로 태어났다. 저토록 간절한 반짝임을 간직한 종결의 모습조차도 미학의 절정에 도달하는 것이다. 시의 소재가 해탈・탈각(梲却)의 경지가 아니고는 저런 법고(法古) 소리는 낼 수 없다. 시인의 자아가 애초에 자연 안에 서정적으로 몰입된 시공에 서 있음이다. ― 이청진(시인·《글의 세계》 주간)
시인이 일상에서 느낀 삶의 깨달음 같은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는 독자로 하여금 ‘그래, 그렇지.’ 하고 말을 하게 한다. 또한, 시인은 시의 공간을 자연이 펼쳐진 강원도 횡성과 거주하는 구리시를 오가며 시의 외연과 내연을 확장하고 있다. 그 과정 선상에 있는 『떠남은 서낭이다』에 수록된 시에서도 볼 수 있는데, 시 「메꽃」은 산속에 홀로 핀 꽃 한송이에게 먼저 말을 걸고 대화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양하게 넓히며 내용이 깊어지는 시를 쓰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이번 짧은 시편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시인은 각 시편에 화두를 던져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걸고 독자에게 말 걸기를 하고 있다. ― 김한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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