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천사
장수경 시인은 자기를 속일 줄 모른다. 思無邪, 그만큼 그의 詩가 진솔하다는 것이다. 무려 등단 20여 년이 지난 후 첫 시집을 내는지라 미상불 신산한 生을 견딜 만큼 견디고 난 후에 핀 흰 치자꽃 같다 하겠다. (「수육을 삶으며」에서) 시인은 항상 「초여름 단상」,「겨울 냉이」처럼 살아왔을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또한 장수경 시인에게 詩는 「가재가 있던 우물」 같은 것, 항상 「가재가 있던 우물」에서 하늘로 웃음을 날리기 바라며 한마디만 덧붙인다면 「이제는 다른 노래를 부르고 싶다」 했으니, 두 번째 시집에서는 다른 노래를 들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나석중 시인
뚜아에무아 장수경 시인님의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아마도 시인님 삶의 원동력이 되었을 맑고 온화함이 시 창작으로, 그리고 화음으로 제게 와 닿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앞으로 더욱 활발한 뚜아에무아의 활동을 기대하며, 아울러 음악회에서 종종 만날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김광수(전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총장, 현 미국캐롤라인대학교 한국담당총장)
한 사람이 詩가 되는 길을 지켜보았다. 고요하고 나지막한 야생화의 노래와 바람과 바다의 전언에 귀 기울이더니 마침내 詩가 되는 것을 보았다. 생의 오솔길에서 만난 작은 애벌레, 나비, 새, 꽃, 나무, 물결, 사람들, 산사의 종소리가 詩가 되고, 달개비꽃처럼 푸른 슬픔도 뭉근히 달여 달맞이꽃 한 사발을 피워내는 것이다. 가재가 있던 돌우물을 퍼내어 파란 하늘을 들여다보고, 여승의 두 귀에서 단풍잎을 보는 시력은 맑고도 귀하다. 일상에서 길어 올리는 詩의 샘물이 마르지 않기를 바란다. —황애수 시인
■ 시인의 말
연둣빛 새순을 보면서 생각했다. 삶은 서둘러 이해할 대상이 아니라 천천히 바라보는 풍경 같아야 한다고. 붙잡지 않아도 곁에 남게 되는 것과 떠나버린 것들 사이에서 시를 썼다.
돌아보면 모든 게 미완성이다.
삶이 아프다고 말할 때 연필을 깎는다. 삶이 귓속말을 걸어올 때 가볍게 여장을 꾸린다.
만만하지 않았지만, 이쯤에선 두렵지도 않은 삶의 행간을 시집으로 묶었다. 돌아보면 남해의 수평선은 나의 시선(詩線)이 되었다. 첫 시집이 많이 늦었다.
2026년 5월 장수경
■ 본문 중에서
*내가 만든 바다
삶에 숭숭 구멍이 뚫린 자리 돌아보니 구멍마다 바다가 생겼다
이쯤 살고 보니 알겠다 365일 바다가 그리운 건 바다가 생긴 그 자리보다 깊은 상처를 꿰매고 싶다는 것
내가 만든 그 바다에서 파도를 베고 누워 해가 가득 차오르도록 늦잠 자며 게으름을 피우고 싶다
*가재가 있던 우물
분주한 여름 볕도 잠시 노닐다 가는 산자락 외딴집에 산골짝 물이 흘러들어 고이는 작은 돌우물이 있었다 빨래를 하고, 밥을 짓고, 목욕을 하며 자꾸자꾸 퍼 올려도 아침마다 우물은 순정한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쩌다 억수 같은 장맛비가 밤새 숲을 핥으며 온 산을 울리고 난 아침이면 우물도 부연 눈물로 넘쳐흐르곤 했다 그런 날은 우물을 쳤다
바닥이 보일 때쯤이면 퍼 올린 물속에 그 예쁜 놈 가재가 있었다 딸아이는 좋아라 박수를 치고 세숫대야에서 발발대는 가재를 손끝으로 건드리며 하늘로 파아란 웃음을 날렸다 우물가 언덕배기 주저리를 이루던 달개비꽃도 덩달아 비눗방울을 날리고, 따라온 발바리는 영문도 모른 채 꼬리를 흔들어댔다 손때 반지르르한 나무의자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에 산바람을 타서 마시노라면 우물엔 다시 맑은 하늘이 고여 들었다
그 우물엔 햇빛보다 짠한 낮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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