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말
하고 싶은 말들을 마음에만 담아두기 싫었습니다. 해야 할 말은 꼭 해야 한다는 다짐이 수첩을 들고 다니게 했습니다. 내 눈에 보이는 정의로움과 부정함, 용기와 두려움, 살기 위한 몸부림과 열정, 거짓과 야만과 폭력 그리고 억울함을 보이는 그대로 사진 찍듯 썼습니다. 이 시집은 그야말로 사진첩인 셈이지요. 내가 보고 듣고 읽고 경험한 것들이 심상에 맺힌 장면 그 모양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꽤 긴 세월 동안 쓴 것들 가운데 잃어버리면 안 된다 싶은 시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 모아 보았습니다. 2026년 10월 문기훈
■ 본문 중에서
**고용되었어
아둥바둥 치열하게 매달리고 공부해서 몇 명을 떨어뜨리고 고용되었는지 몰라 기출 문제 풀고 죽어라 눈 비비며 밤잠 줄이고 공부해서 고용되었어 입사 통지서 받았지 기뻤지 목에 패찰을 걸고 출입구 통과하는 것 기쁨이었어 아— 근데 그게 노예 신분증이었어 노예가 되려고 애쓴 사람들 떨어뜨리고 나는 노예가 된 거야 내가 고용되었어 내가 팔렸단 얘기지 내 노동력을 회사가 샀어 그동안 코피 흘리며 공부한 능력을 이제부터 나의 노동으로 인한 잉여가치를 회사가 착취하게 될 거라는 얘기지
**감천동 송전탑
감천동 송전탑 저 높은 곳에 빨래가 널렸다 점퍼 바지 신발 그대로 자기가 자기를 널어 지나온 생 말리고 있다 저 높은 곳까지 무슨 생각을 하며 올라갔을까 일제강점기 공동묘지에 6・25 피난민들 밀려 내려와 비석들을 주춧돌로 지은 집들 하늘 높이 송전탑끼리 손잡은 감천동 산동네 마을 지금은 벽화 마을 빨래 하나 말라가고 있다 여기저기 마음대로 터 잡아 지은 집 집들이 만든 미로 골목 자신이 다니던 미로 골목길을 바람에 흔들리며 내려다보는 빨래 산 아래 하루 몫의 노동을 끝내고 용케도 미로 속 제 집을 찾아가는 매일의 등산 미로의 사람들은 빨래를 쳐다보지 않는다 이 미로에서 길을 잃으면 저기 널린 빨래에 눈길 주면 저기서 저렇게 말려져야 하니 쳐다보지 말고 그렇다고 땅만 보지 말고 힐끗힐끗 살길을 찾아야 한다 낮은 임금 갚아야 할 이자 미로의 사람들이지만 굳센 노동자의 힘줄로 의지로 서로 기대고 뭉쳐 사람이 살고 있음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아무도 거두어 주지 않는 빨래가 되지 말고 사람의 삶을 드러내어야 한다 떠밀려 올라온 삶 끝까지 버텨야 한다
■ 해설
문기훈 시인의 시집 『황금 슈크림 붕어빵』에는 노동에 관한 시가 34편, 환경에 관한 시편이 4편, 그리고 통일에 관한 시가 14편, 그리고 반미의 입장에서 쓴 시가 10편 수록되어 있다. 그에게 노동자 계급은 중요하다. 노동자 세력이 전위가 되어 노동문제나 환경문제, 반제운동 그리고 통일운동의 주역이 되길 그는 바라고 있다. 문기훈 시인이 시집을 내게 된 이유는 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시집을 내며’에서 시집 출간의 배경을 삶의 현장에서 그의 사진 앵글에 들어온 현실의 상황을 찍듯이 썼으며 그리고 보고 듣고 읽고 경험한 것들이 융합되어 어떤 심상 풍경으로 마음에 떠오른 것을 시로 썼다고 한다.
“내 눈에 보이는 정의로움과 부정함, 용기와 두려움, 살기 위한 몸부림과 열정, 거짓과 야만과 폭력 그리고 억울함을 보이는 그대로 사진 찍듯 썼습니다. 이 시집은 그야말로 사진첩인 셈이지요. 내가 보고 듣고 읽고 경험한 것들이 심상에 맺힌 장면 그 모양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심종숙(시인·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