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중에서
수요일은 언제나
‘수요일은 언제나’ 젊은 시절에 보았던 연극의 대사처럼 수요일은 언제나 미룰 수 없는 일이 있다. 벌써 4년이 다 되었다. 오늘도 나는 남편과 함께 안산에 있는 한 노인 요양 병원에 간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 미로의 끝과 같이 자신의 의지로는 돌아 나오기 힘든 곳이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비까지 주룩주룩 내리는 수요일 우산을 썼어도 젖어버린 옷을 탁탁 털며 병원으로 들어섰다.
어머니께서 이곳에 오시게 된 이유는 노인들이 흔히 겪을 수 있는 고관절 골절 때문이었다. 평생을 자식들 뒷바라지하시며 가족을 위한 기도로 새벽을 여시던 어머니께서는 옅은 치매기가 있었다. 어느 날 아침밥을 짓겠다고 일어서다 어머니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어머니는 뼈가 부러져버렸다. 병원에서는 워낙 연로하셔서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며 수술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돌아가셔도 좋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어머니는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그 후로 의사들은 뼈가 너무 연약하고 부서져 있으며 골다공증이 심해서 조금도 움직이면 안 된다고 당부하였다. 만약 움직이다 다치는 날에는 수술도 못 하고 심한 고통 속에서 생활하게 된다고 겁을 주었다. 나는 할 수 없이 간병인이 상주하는 요양병원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 후로 병문안하러 다니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몹시 마음이 아팠다. 당장 돌아가셔도 억울할 것 없는 연세라고 말들을 하였지만, 살아계시는 것이 죄가 아닌데도 너무 오래 살았다는 것이 무슨 큰 죄인 것처럼 수군거리는 모습이 몹시 마음에 걸리고 괴로웠다. 집에서 모시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나 급한 경우 응급조치가 쉽지 않고 온종일 당신 곁을 지킬 수 없는 환경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지금에 이르러 다시 생각해 보니 어쩌면 그것도 병원에 모실 수밖에 없다는 자기변명의 합리화였을 수 있었으리라. 병원에서 제공하는 식사나 신체적 치료는 견딜만하셨으리라 생각되지만, 늙어가는 외로움과 고통에서야 어찌 자유롭고 편안하실 수 있으셨겠는가? 오늘도 우리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병실로 들어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