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자신만의 삶의 길을 간다. 그 길 위에는 웃음도 있고 눈물도 있으며 예기치 못한 고난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을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결국 행복이라는 빛을 만나게 된다. 지금까지 시, 수필, 소설 등 열네 번째 책을 세상에 내놓으며 그동안의 길을 조용히 되돌아보았다.
완벽한 글을 쓰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남지만 하나하나 써 내려가며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느낀 순간들도 있었다. 그 울림들이 모여 책들이 되었으니 그 자체로 나에게는 큰 기쁨이자 감사한 마음이다.
이번에 출간하는 문집에 담긴 글들은 깊은 산속 산장에서 자연과 함께 벗하며 보고 느낀 것들을 사실 그대로 적었다. 시와 수필, 그리고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들에 공감했으면 좋겠다.
읽으신 분들께서 짧은 문장 속에서도 잠시 마음의 쉼과 따스한 위로를 얻으시기를 바란다.
이 문집을 함께해주시는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여러분의 삶에도 언제나 평안과 행복이 함께하길 기원드린다.
■ 본문 중에서
**<시>
바람이 묻고 숲이 답하다
바람이 숲속을
숨결처럼
훑고 지나간다
숲은 말없이
가지를 흔들어
바람 속으로
자신을 던진다
바람이 묻는다
숲이여 행복한가
숲이 대답한다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바람이여
잠시 스쳐가는
인연이 아니라
푸른 그리움으로
영원히 내 곁에
머물러 다오
**<수필>
꽃과 향기
사람들은 누구나 꽃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꽃에는 아름다움과 신비함이 있고 그 아름다움은 향기와 함께 마음속에 깊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나비와 벌이 꽃을 찾아드는 것도 결국 그 향기와 아름다움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대체로 다정함이 배어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한층 부드럽고 따뜻하다. 꽃은 오래 피어 있지 못한다. 피어나는 순간이 짧을수록 그 아름다움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우리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을까. 만개한 꽃은 열흘을 넘기기 어렵기 때문에 그 찰나의 아름다움이 더욱 귀한 것이다. 지나가는 것, 사라지는 것까지 사랑할 수 있는 마음, 꽃을 사랑하는 마음속에는 그런 삶의 철학이 배어 있다.
꽃을 가꾸고 곁에 두는 일은 결국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한 소망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나는 꽃 앞에서 늘 어머니와 의견이 달랐다.
어머니는 꽃을 무척 좋아하셨다. 꽃을 보면 그대로 두지 못하고 꼭 꺾어다가 꽃병에 꽂아 방 안 가득 향기를 채우곤 하셨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피어 있는 그대로 나무와 흙 위에서 오래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꽃은 꺾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시는 게 더 좋아요.”
그러면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아니야, 눈앞에 두고 향기도 맡고 예쁘다 예쁘다 하면서 보는 게 좋지.”
“꺾으면 금방 시들잖아요, 아까워요.”
“시들면 또 꺾어오면 되지, 시든 꽃도 미움 없이 보내고 새 꽃도 또 반갑게 맞으면 좋잖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으셨다. 그저 꽃을 사랑하는 방식이 확고할 뿐이었다.
어머니의 생각이 옳았을까?
그때의 나는 알 수 없었고 지금도 어떤 것이 맞는지 이해할 수 없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나는 내 방식대로 꽃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소설>
영혼을 찾아
외로운 밤, 창밖에서 들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 불씨를 다시금 확인하곤 했다.
세상은 너무 많이 변했다. 집안의 영광은 사라졌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수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나 서진의 기억 속에서 할머니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게 남겨진 삶은 무엇일까, 왜 나는 깊은 산속에 홀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그 대답은 단순했다. 세상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산장이 곧 작은할머니의 품속이었기 때문이다. 고단한 세상살이의 끝자락에서 구멍가게 앞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의 모습처럼 서진은 이곳에서 담담히 살아가며 그분을 기억하고자 했다.
어느 맑은 아침 산장을 둘러싼 안개가 천천히 걷히며 햇살이 스며들었다. 서진은 문 앞에 앉아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중얼거렸다.
“할머니, 손자는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당신이 주신 사랑 덕분에 지금도 외롭지 않아요.”
그리고 서진이는 굳게 다짐했다. 언젠가는 작은할머니를 다시 만나는 날이 온다면 세상 그 누구보다 당당히 고개를 들어 말씀드리리라.
“할머니, 제가 드릴 물이 여기 있습니다. 당신이 바라던 그 마음, 이제야 알 것 같아요.”
그의 눈가에 이슬 같은 눈물이 맺혔다. 그러나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감사와 그리움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그 순간에도 서진의 가슴속에는 작은할머니의 영혼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