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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선율
손정모
소설
신국판(152*225)
2020년 2월 20일
979-11-5860-735-7(03810)
13,000원

□ 작가의 말

 

한글(訓民正音)은 1443년 음력 12월 30일에 세종이 창제했다.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에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다. 세계의 언어들 중에서 실존 인물의 창제자가 밝혀진 언어로서는 유일하다. 인도의 고대 언어인 범어(梵語)도 창제자가 명시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창제자가 실존 인물이라는 근거가 없다.
초성과 중성과 종성의 결합으로 글자를 구축한다는 과학적 원리도 탁월하다. 게다가 세계의 언어들 중에서 가장 음향(音響)을 유사하게 묘사하는 언어이다. 한글을 제외한 어떤 언어도 자연의 음향을 실제처럼 나타내기는 어렵다. 이런 탁월한 언어가 사용되어 독창적인 문학 체계가 구축되었다. 가사(歌辭)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특유의 문학이 만들어졌다.
전라도 담양 출신의 문신(文臣)인 송순에 의해서 남부 지방에서 형성되었다. 송순은 한글이 창제된 50년 이후인 1493년에 출생했다. 11월 14일 오전에 전라도 담양부(潭陽府) 기곡리 상덕마을에서 태어났다.

옛날 선비들의 등용문은 과거(科擧)였다. 과거 시험의 교과는 유교경전이었다. 결국 한문 체계의 언어에 통달해야만 등과(登科)할 수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송순이 언급된 영역은 엄청나게 방대하다. 우리나라의 독창적인 문학 체계인 가사를 정립하여 세상에 보급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사는 정극인의 ‘상춘곡’으로 알려져 있다. 송순이 한 역할은 가사를 문학적으로 안정화시켜 널리 보급했다는 점이다.
오늘날과 달리 예전에 벼슬아치가 되기는 험난했다. 등과하여 대간(臺諫)이 되면 의무적으로 다른 선비들을 논핵해야만 했다. 이 업무를 소홀히 하면 곧바로 처벌받기 십상이었다. 대간들은 논핵된 선비들과 이후에 감정의 앙금이 생기게 된다. 그 결과로 타인으로부터 언제든지 탄핵의 대상이 된다. 삼사(三司)라 불리는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관리들로부터 항시 주목받게 된다. 송순도 이들로부터 탄핵되어 두어 차례나 귀양 생활을 하게 된다.

멀쩡하게 관직 생활을 하다가 배소(配所)로 내쫓기는 것은 참혹한 일이다. 예전의 선비들은 대다수가 유배를 당하곤 했다. 논핵하는 과정에서 생긴 관리들 간의 대립이 유배의 불씨가 되었다. 재능이 탁월한 송순도 두어 차례의 귀양 생활을 했다.
조선 왕조에서 수립한 대간의 체제는 나라의 발전을 위한 거였다. 하지만 누구든 탄핵을 받으면 감정이 뒤틀리기 마련이다. 벼슬살이와 유배 생활의 괴리가 송순에게 번민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남도 가사 문학의 주창자(主唱者)인 송순은 한시와 시조의 달인이었다. 한시와 시조로 정련된 정서를 한글의 시가인 가사로 승화시켜 보급했다. 시가를 자신만 지어서 만족하는 상태에서 벗어났다. 담양에 면앙정(俛仰亭)이란 정자를 세워 벗과 후진을 불러들였다. 이들과의 정감의 교류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가사를 문학적인 차원에서 보급했다. 참담한 귀양 생활의 슬픔마저도 고운 정서로 승화시켜 가사로 노래했다.
선율을 표출하는 수단으로서 가야금도 직접 익혔다. 시가를 가야금의 선율과 함께 표출하는 방식인 병창도 자유롭게 펼쳤다. 송순은 우리나라의 독창적인 문학의 체계인 가사를 발전시켜 보급했다. 27살에 관직에 나가서 77살에 조정에서 물러났다. 50년간을 나라를 위해 성실하게 일했다. 독창적인 가사 문학을 정립한 송순은 관리로서도 성실한 인물이었다.
송순은 가히 조선 왕조에서도 내세울 만한 인물이라고 여겨진다. 그리하여 조선왕조실록과 담양군 관련 사료를 바탕으로 송순의 생애를 조명했다. 상당한 준비 기간이 소요되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작업이라 여겨졌다. 역사의 흐름을 추적하여 송순의 업적을 조명하게 되어 보람을 느낀다.

 

 

□ 본문 중에서

 

<유년의 온기>

쏟아진 폭설로 천지가 백색의 운해(雲海)처럼 드리워진 1493년의 겨울철이다. 11월 14일 아침의 햇살이 산안개처럼 슬며시 퍼질 무렵이다. 전라도 담양부(潭陽府) 기곡리 상덕마을의 19살의 유생(儒生)인 송태(宋泰)의 집 안방에서다. 갓 출생한 아기의 울음소리가 산야의 적막을 내몰며 산울림처럼 퍼진다. 안방에는 송태의 팔촌 형수와 송태의 어머니가 산모를 돌보고 있다. 송태의 어머니와 팔촌 형수가 방문을 열며 송태를 부른다. 들뜬 기류에 휩쓸리듯 단숨에 송태가 산실로 내닫는다.
팔촌 형수는 장성에 사는 37살의 송흠(宋欽)의 아내이다. 송태의 아내에게 산기(産氣)가 내비치자 송태의 어머니가 그녀를 불렀다. 송태의 팔촌 형수가 송태를 향해 경이로운 정감을 내뿜듯 말한다.
“아기가 시아주비를 닮아서 눈부시게 고운 옥동자예요. 사내 아기라 울음소리도 얼마나 우렁찬지 마음이 흔들릴 정도예요.”
송태가 고맙다는 표정으로 갈대처럼 경건하게 허리를 숙여 응답한다.
“형수님께서 돌봐 주셔서 정말 감사하외다.”
송태의 눈에 비친 아기의 용모도 눈부실 정도로 훤하다. 송태가 중얼대듯 마음속으로 속삭인다.
‘천지신명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처럼 소중한 아기를 보내 주셔서 말입니다. 정성을 다해 잘 키우겠습니다.’
송태가 기쁨을 드러내듯 새끼줄에 고추를 끼운 금줄을 사립문에 내두른다. 세상에 통지하듯 사내 아기가 출생되었음을 알리는 표시물이다. 외부인들의 사사로운 출입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물이기도 하다. 가마솥에는 아기를 목욕시킬 끓인 물이 가득 채워져 있다. 살갗이 얼어붙을 듯 매서운 추위임에도 송순(宋純)의 출생으로 훈훈한 분위기다. 사립문에 금줄을 두르고서도 송태는 취한 듯 경이로움에 잠겨 있다.
(…)
호반 서쪽의 일부에 하얀 모래가 은가루처럼 펼쳐져 있다. 모래 위에 송흠이 손가락으로 커다랗게 한자(漢字)를 줄줄 쓴다. 신선이 선동에게 말하듯 송흠이 송순을 향해 말한다.
“내가 모래에 손가락으로 쓴 것처럼 너도 손가락으로 써 봐. 완전히 모양이 비슷해질 때까지 반복해서 써 봐. 이 글들은 ‘논어’라는 책의 제1편 학이(學而)의 첫 구절이야. 오늘 하루의 공부는 이게 전부 다이니 정신을 집중시켜야 돼. 위의 3줄은 한자이고 아래 3줄은 언문이야. 언문은 세종 임금이 만드신 우리 글자야.”

學而時習之 不亦說呼(학이시습지 불역열호)
有朋自遠方來 不亦樂呼(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呼(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친한 벗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면 군자가 되지 않겠는가?

송흠이 장검을 휘두르듯 백사장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써서 송순을 지도한다. 손가락으로 글을 쓰는 게 신기한지 송순이 연신 즐거워한다.
(…)
<상충하는 기류>
여름철의 열기가 들끓는 냄비처럼 따가운 1519년의 6월이다. 길가의 수양버들의 가지마다 매미가 매달려 울음을 쏟아 낸다. 용소(龍沼)에서 목욕하듯 들을수록 귀와 마음이 후련해질 지경이다.
송순은 이틀 전인 초순에 종9품인 승문원 권지부정자에 제수되었다. 승문원은 외국 교류의 숨결 같은 외교 문서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송순은 과거에 급제하면서 3살 연하의 설 씨와 혼인했다. 아내의 본관은 풍경이 그림처럼 수려한 전라도 순창이다. 경복궁에서 남쪽으로 2.3리 떨어진 청계천 부근인 서린동에 주거지를 마련했다. 공기의 흐름이 호수의 물결처럼 부드러운 곳에 집을 구했다. 퇴직한 선비로부터 구입했기에 가옥이 잘 닦인 거울처럼 깔끔한 편이다.
안채와 사랑채로 이루어진 집 둘레로는 돌담이 성곽처럼 펼쳐져 있다. 집 뒤란에는 맑은 우물이 자리 잡고 있다. 두레박으로 푸면 남실대는 맑은 샘물을 언제든 접하게 된다. 빨래터는 집에서 0.5리 거리의 청계천에 넓게 마련되어 있다. 하늘의 공기처럼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곳이다. 원래의 집 주인이 가꾸던 화초들이 화단 곳곳에 물결처럼 남실댄다.
이제 갓 조정에 드나드는 햇병아리 같은 관리인 송순이다. 송순의 마을은 농촌에 가까울 정도로 논밭이 잘 발달되어 있다. 아마도 인근에 흐르는 청계천 탓인 모양이다. 바람의 길목을 제공하듯 집들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다. 그리하여 언제든 귀가하면 송순의 마음이 탁 튀고 평온해진다.
송순은 상승기류로 다가드는 매처럼 조광조 주변의 기류에 관심이 끌린다. 자신보다 11살의 연상인 신진 사림의 영수이지 않은가? 나이와 취향까지 도토리의 키처럼 비슷하여 왕으로부터 잔뜩 신뢰받지 않는가?
훈구파 중신들에게 맞불을 놓을 듯 대적할 세력을 찾는 왕이었다. 반정의 공로로 조정을 차지한 신하들이 왕을 불편하게 한다. 비상시에 대비하려는 듯 견제 세력은 필요하다고 여기는 중종이다. 연산군 때에 산사태에 깔리듯 사화로 많은 사림이 피해를 입었다. 공격당한 사림들이 유배를 가거나 사사되어 목숨을 잃었다. 중종은 반정 이후의 정치적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저자의 말

 

유년의 온기

장성에서의 수련

담양의 산하

꿈꾸던 등과

상충하는 기류

사가독서

당당한 풍도

면앙정

휘감기는 먹구름

가야금을 벗하여

순리의 흐름

자연으로의 회귀

 

손정모

 

1998년 월간 ‘문학 21’ 소설 부문 신인상 당선
시인, 평론가, 이학박사(서울대)
한국소설가협회 이사 역임, 서울대 총동창회 종신이사
연구원 생활 6년, 고교 교사 22년 후 정년퇴직
노원문학상, 경기도문학상, 서울시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대상, 직지소설문학상 대상 수상

장편소설
『달그림자』, 『섬과 나그네』, 『황색 갈매기 날다』, 『별난 중국 천지』, 『불사조』, 『태평양의 소용돌이』, 『비상의 회오리』, 『쌍홍문』, 『꿈꾸는 바다』, 『떠도는 기류』, 『굽이치는 대양의 선율』, 『무심 공간』, 『절의의 표상』
소설집
『일몰의 파동』
평론집
『이상과 김시습 및 기타 작품론』
시집
『새벽 바다』, 『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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