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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보 씨의 초대
김신운
소설
신국판변형(152*205)
2020년 2월 20일
979-11-5860-736-4(03810)
13,000원

□ 작가의 말

 

다섯 번째 장편소설이다.
『소설가 구보 씨의 1일』은 박태원의 장편소설이다. 최인훈은 이를 패러디하여 70년대 초에 『소설가 구보 씨의 1일』 연작을 발표하였다. 나는 두 작품을 분석하여 『박태원과 최인훈의 「소설가 구보 씨의 1일」 비교 연구』라는 논문을 썼다. 나는 이 논문으로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몇 년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런저런 사연으로 이 작품 『소설가 구보 씨의 초대』를 쓰게 되었음을 밝힌다.

그동안에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렇지만 나는 이것을 물리적인 시간의 단위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약간의 유머나 풍자를 곁들인다면, 나는 이제
조금 농담을 해도 좋을 때가 된 것이다. 농담이란 어떤 농담이든지 그 농담의 대상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한다. 왜냐하면, 농담은 고귀한 것들을 야유하는 모든 비천한 것들의 역설이며 조롱이기 때문이다. 농담을 이런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나는 이제 지난 세월을 한걸음 비켜서서 바라볼 수 있게 된 셈이다. 그것은 추수가 끝나버린 논밭에서 농부가 모아들인 마지막 이삭이나 마찬가지다. 가난하고 늙은 농부라면, 그것이 그에게 기쁨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웠던 지난 생애에 비추어, 그러므로 나에게는 이 작품이 농부의 작은 이삭과도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주신다면 고마운 일이다.
자, 그러면 나는 이제 소설가 구보 씨의 초대에 따라,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떠나보려 한다.

2020년 이른 봄
김신운

□ 본문 중에서

1장. 풀밭 위의 점심

프랑스 후기인상파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작품 중에 「풀밭 위의 점심」이라는 그림이 있다.
소설가 구보(丘甫) 씨가 눈앞에 문득 그 그림을 떠올렸던 것은, 분향소 옆 식당 벽을 장식한 대형 편백나무 숲 사진 때문이었다. 조금 전에 그는 빈소에 들러 문상을 마치고, 지금 막 식당에 들어선 참이었다. 장례식장마다 분향소 옆에 식당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일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문상객들은 고인의 영정 앞에 국화꽃 한 송이를 바치고 두 번 절을 한 뒤에, 유족에게는 상심이 얼마나 크신지 어쩐지 하는 인사말을 하고는 식당으로 몰려가 처먹는 것이었다.
구보 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분향소에서 나오자마자 그는 자기가 왜 식당으로 가고 있는지 자문해 보는 것이었으나 알 수가 없었다. 편백나무 숲 사진 너머로 고인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임보(林寶), 소설가, 고교시절에 <예감>이라는 이름의 문학 서클에서 만나, 구보 씨는 오랜 세월 그와 함께 이 도시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임보는 며칠 전에 등나무 그늘 아래 바둑을 두고 있다가 머리가 어지럽다고 드러누운 뒤에, 영영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이른바, 행복한 죽음이었다.
주위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토론회를 시작하겠습니다!”
강당에서 토론회 시작을 알리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문 앞에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강당으로 몰려갔
다. 강당은 늙은 호박같이 생긴 머리통들로 가득 찼다. 그들이 내뿜는 입김과 때 이른 여름밤의 후끈한 열기 속에, 토론회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국민의례가 있겠습니다.”
사회자가 청중을 일으켜 세웠다.
“국기를 향해 서 주십시오.”
그런데 ‘국기에 대한 경례’와 같은 국가주의 색채가 짙은 의례에 반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인지라 탓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몇몇 사람은 일어나지 않는 또 몇몇 사람에게 힐끔힐끔 못마땅한 시선을 던지는 것이었다.
“후보를 소개하겠습니다.”
제1후보 A씨는 시인이었다.
얼마 전에 그는 『찔레꽃 그대』라는 시집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사람이었다. 시집으로는 드물게 10만 권쯤 팔렸다고 하니 대단한 베스트셀러였던 것이 분명하였다. 그것으로 그가 얼마나 우쭐대는 시인이 되었을 것인가는 묻지 않아도 환하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알려진 바로는, 예전에 병원 청소부로 일하던 그의 아내는 아이를 혼자 방 안에 끈으로 묶어두고 출근하는 일이 잦았던 모양이었다.
(…)
“작가가 되신 것을 축하해요.”
그녀는 소설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임보는 ‘작가가 하는 일은 쓰레기 줍기나 마찬가지다. 무엇이든 자기 눈에 띄는 것은 가리지 않고 이용한다.’라는 포크너의 말로 대답하려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제 막 신춘문예에 당선한 풋내기작가로서는 좀 건방진 대답이 아닐까 머뭇거리고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소설가라는 사람은 새로 나온 후배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너그러움이 있는 듯이 보이지만 실상은 항상 그들을 발로 차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시지요?”
하고, 여류작가는 옆에 앉아 있는 다른 심사위원에게 생글거리며 말을 걸었다. 반백의 머리가 중후하게 보이지만 이마에 새겨진
주름살들이 세월의 풍상을 느끼게 하던 원로소설가였다. 입가에 알 수 없는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만 떠올리면서,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소설가란 칭찬에 인색한 족속들이라고 그녀가 또 갑자기 말한 것이 그 다음이었다.
“특히 다른 작가에게는요.”
소설가는 절대로 남을 칭찬하지 않는 족속이라고 하던 그녀의 말은 옳은 것이었는지 몰랐다. 임보는 그것을 나중에 깨달은 것이
지만, 아무튼 작가인 자기로서도 남의 작품을 칭찬해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은 분명했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
작가 김신운은 흔히 풍자가가 취하게 마련인 도덕적 우위의 입장에 서지 않는 풍자가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구보를 자신의 분신으로 작품에 등장시키되, 그에게 그 어떤 도덕적 우위도 부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풍자 특유의 공격적 웃음을 잃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실상은 잃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노년에 더욱 갖추기 힘들다는 ‘균형 감각’, 말수를 줄이되 관찰을 멈추지 않는 ‘지혜로운 침묵’ 등이다.

작가의 말

 

1장. 풀밭 위의 점심
2장. 토론회 풍경
3장. 라라의 테마
4장. 정복자들
5장. 언덕 위의 하얀 집
6장. 추운 나라에 온 신부
7장. 섬으로 가는 길
8장. 위원회 풍경
9장. 섬의 초대

 

해설
― 유머와 풍자 사이, 그리고 고향학 _ 김형중(조선대 교수, 문학평론가)

김신운(金新雲)

 

1944년 전남 화순 출생.

197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장편소설 『땅끝에서 며칠을』 『청동조서』 『율치연대기』 『대필작가』 『소설가 구보 씨의 초대』, 소설선집 『귀향』 등을 발표하고, 제6회 광주문학상(1984) 제4회 한국소설작가상(2014)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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