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말
30년 전 춘천의 겨울은 지독히도 추웠다. 글을 쓴답시고 냉기가 거미줄처럼 옥죄는 자취방에 앉아 겹겹이 이불이며 옷을 걸쳐 입고 아무렇지 않게 버렸던 지난 봄날을 미련스럽게 집착하며 기다리곤 하였다. 가끔 친구 집에 들러 양손에 반들거리는 까만 연탄을 한 장씩 들고 올 때면 얼마나 행복하였던지 그렇게 기다리던 봄이 오자 제대로 된 글 한 줄 없이 그저 끼적거리던 연습장 몇 권을 던져 놓고 밖으로 뛰쳐나와 버렸다.
산다는 것은 둥근 달과 같지 않을까 모양을 바꾸어 변하지만 이내 반복되어 원래대로 돌아오기에 연정(누구인지 무엇인지를 그리워하고 설레다가) 불면(제풀에 꺾여 잠 못 이루는 밤은 얼마나 아픈지) 단념(달아나려 꿈틀거리는 마음을 다독이고 부여잡아) 귀향(다 해진 나를 마냥 품어주는 고향으로 돌아가려네)
이렇게 삶의 소금기 얼룩진 글 조각들을 처음으로 엮어 보았다.
혹, 지금 나의 겨울이 친한 척 어깨를 감싸고 있을지 모르지만 한 번 더 봄이라도 온다면 모든 것을 던져 놓고 다시 어디론가 멀리 뛰쳐나갈 참이다.
2020년 1월 전관표
□ 본문 중에서
*연정
산등 따라 불어오는 하늘 바람 푸르른 이파리 숲 내음 쉬이 담아 서산의 붉은 햇살 멀리 빗겨 가면 홀로인 내 마음 그를 따라가려네
사람들은 잠들어 밤은 고요한데 세상에 가득한 풀벌레 소리들도 크게 누운 산들과 맑은 공기도 애달픈 빈자리를 채울 수 없어
솔잎 사이사이 스미는 달이여 님의 살빛 내게로 담아올 때 별빛 가루처럼 고운 손길 그리워 휑하니 헤진 가슴 눈물 한 올 훔치네
*욕망의 정의
처음 욕심의 그물에 걸린 마음 물고기들의 담백한 맛으로 시작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향신료와 양념에 길들여져 점점 자극적 맛을 쫓다 결국 마음의 미각과 청각을 잃어버리게 하여 우리를 칭칭 동여매는 끈적끈적한 거미줄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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