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말
시집 셋으로 마무리하려 했는데 네 번째 작업에 매달려 있는 까닭을 모르겠다.
우리 내외 오랜 병영(病營) 생활에 지쳤음에도 글이 써지는 것은 꺼져가는 필라멘트의 집착일까.
이 굿판은 엄살에서 시작하여 엄살로 끝낸 내 생애 발자국이라 여겨주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첨기(添記)
- 하나 문인화가(文人畫家)인 천성우(千聖雨) 시인에게서 시집 『한점 바람 되어』 출간 시 케리커쳐를 받아 책을 돋보이게 하였는데 이 번에도 그의 재능을 빌기로 하였다. 천 시인은 몸도 성치 않을 뿐더러 부인인 서린(徐麟) 수필가 또한 병고에 힘들 텐데 또 모몰염치(冒沒廉恥)한 일을 저질렀다. 고마운 마음 노오란 댄싱걸 꽃바구니에 가득 태워 보낸다.
- 둘 생애 마지막이 될 이 시집은 우리 부부의 오랜 병 간호에 온 정성을 쏟은 내 핏줄 준경 준용과 가족들, 저승에 있는 준범과 어려운 여건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준범의 가족을 위한 나만의 공간 핸드폰 작업, 미발간(未發刊)으로 남기려 했는데 고희(古稀)를 넘긴, 백발이 성성한 부산 해동고등학교(海東高等學校) 28동기회 애제자(愛弟子)들이 헌정(獻呈)해 주었다. 거기에 공대천 수필가, 정희장 회장, 최순용 회장이 축하의 발문(跋文)까지 썼음에랴.
맺힌 물방울 닦아버리면 후정(厚情)이 지워질까 저어 굳이 훔치지 않겠다. 고맙다는 말밖에 무엇이 또 필요하랴.
2020. 2. 박진섭
□ 본문 중에서
*낙엽 지는 날
바람이 나뭇잎을 몰고 지나면 이브몽땅의 음표(音標)가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진다
새들은 나뭇가지에서 깃털을 털며 계절을 전송하고
금 간 거울 속 얼굴은 지난날에 파묻힌다.
*입동(立冬)
겨울이 섰네 겨울이 오네 두터운 입성 챙겨 오네
나무는 바람에 옷가지 벗겨 부르르 몸서리치며 울고
여름 새 떠난 지 오래 그 자리에 까막까치 판을 메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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