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만 십 년 만에 시집을 낸다. 그 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고등학교 교사로서 삼십 년 이상의 경력을 쌓았고, 두 아들을 성인으로 키웠고 꾸준히 시를 발표하면서 바쁘게 살아왔다.
언제부터인가 지인들을 만나면 그들은 내게 약속이나 한 듯이 시집 언제 낼 거냐고 묻는다. 내 게으름과 무기력함을 질책하는 것 같아 부끄럽고 당혹스러웠다. 시집을 내야 하는가? 고민스러웠다. 자그마치 십 년 동안 고민해 왔다. 시집을 내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사실 지금 이 순간까지 이 고민에 대한 정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집을 내기로 결심한 것은 지인들에게 마음의 부채를 다소나마 갚고자 하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이 부끄러운 시집이 나오기까지 가장 큰 자극을 주신 문학평론가 장병호 선생님과 김효태 시인께 깊이 감사드린다.
2020년 코로나19가 존재감을 더해가는 어느 날
김혜련
야식 일기
외로움이 너무나 무거워
어깨 빠지는 듯한 밤이다 싶으면
야식을 찾는 버릇이 생겼다
남편을 그 섬으로 보내고
아이들을 컴퓨터에 빼앗기고
안방에 홀로 남겨진
불혹에 익숙한 여자
칠오이에 구구빵빵 눌러
평소 쳐다보지도 않던
환장하게 매운 불닭을 시키며
매운 시를 쓰는 여자
앞 동 불빛이 사라지면
거북한 배를 움켜쥐고
밤새 썼던 시를 닭뼈와 섞어
쓰레기통에 쳐 넣는
뱃살 볼록한 여자
외로움의 무게만큼 밤은 깊어간다
아버지의 구두
썩은 양파처럼 쿨럭쿨럭 내리는 빗물이
아버지의 고방에 마실 나왔다
가난이라는 소금기에 절여진 아버지의 한평생에는
변변한 구두 한 켤레 없었다
때 묻은 흰 고무신이나
태생부터 까만 검정고무신이
아버지와 함께 칠십 평생을 걸어왔을 뿐이다
작년 생신 때 반강제로 백화점에 모시고 가
검은 구두 한 켤레 사드렸더니
“농사짓는 놈이 구두는 무슨…….” 하시더니
집에 손님이 올 때마다
친구 분들이 놀러 오실 때마다
고방에 고이 모셔둔 구두를 꺼내 선보이시며
“우리 딸내미가 선물헌 거여.”
입꼬리가 귀에 걸리도록 자랑을 늘어놓았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며
소금물 들이킨 것처럼 울음을 토해내야 했다
“아이고, 불쌍헌 양반아!
막둥이 장개갈 때 신는다고 고방에 모셔두더니
한 번도 제대로 신어보지도 못허고
황천길 가시게 되었으니 원통해서 어쩐다요?”
어머니의 통곡으로 저린 가슴을 쓸며
썩은 양파 같은 빗물을 내가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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