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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봄 5년 후
안승빈
소설
4*6판/224
2020년 7월 20일
979-11-5860-869-9
13,000원

■ 작가의 말


상담실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내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나지막이 털어놓는다. 상담자는 잠자코 듣고 있다가 그동안 내담자가 조심스럽게 보호해 온 마음 상처의 딱지를 부드럽지만, 주저 없이 떼어버린다. 뜻밖의 공격에 왈칵하고만 내담자는 눈물과 콧물을 훔치기 시작한다. 이때 모든 것을 다 이해한다는 다정다감한 표정을 유지하며 되도록 천천히, 여유 있게 내담자에게 화장지 상자를 건네며 비로소 상담자로서의 존재감을 느끼던 초보 상담자 시절이 있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직장 생활은 늘 결과물을 원했고 추상적인 숫자와 통계로 평가받았다. 그런 무정서의 디지털 생활이 싫어 사람을 살리겠다고 인생의 전향을 감행했다. 하지만 심리상담도 기대와는 달리 마찬가지로 질보다는 양, 그리고 5점 척도의 만족도 점수를 요구했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마무리한 상담도 5점 혹은 1점이었고, 완전히 망한 사례일지라도 이따금 자애로운 내담자 덕에 같은 5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내담자 100명이 흘린 진정한 치유의 눈물방울을 유리병에 가득 채우면 위대한 상담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환상 속 목표를 설정했을지도….

이제 시작한 글쓰기는 내게 또 어떤 숫자를 요구할지 두렵다.

내담자 100명의 눈물 속에 탄생하는 상담자 신화를 별 뚜렷한 계기도 없이 벗어나자 내담자 각자가 자신의 삶에 대한 선한 주인이라는 믿음이 상담의 원동력을 대신했다. 이 깨달음 또한 전적으로 올바른 것은 아닌 줄 안다. 그러나 그 믿음은 도통 답이 보이지 않는 상담에서 내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혹시 나를 마지막이라고 다짐하고 찾아온 이에게 지지부진한 상담의 책임을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믿음이 있어 내담자를, 그리고 사람들을 조금 더 지켜보고 기다리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그 조금이 조금 어렵다는 건 사실이다. 덕분에 굳이 각 잡고 마주 앉아 서로를 탐색하는 데 온 힘을 쏟지 않고도 시간을 갖고 소통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누구라도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누고 싶어 책을 쓰기로 했다.

한국인들에게 더는 이국적이거나 특별하다고 할 수 없는 몽골의 푸른 초원.
보통의 아버지와 아들들.
그리고 말(馬), 별(星), 불(火).
이쯤 되면 저절로 힐링 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졌다.
생소한 경험과 육체적 피곤함, 느릿한 시간, 실재적 위험.
이곳에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의지가 성장한다. 자연스럽게 대화는 상담이 되고 상담은 따뜻한 위로가 된다.
말에 대해서, 별들에 대해서, 생명에 대해서, 기억에 대해서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 이 모든 것, 그리고 상담이 이야기가 되었고 소설이 되었다.

이 글이 거친 광야를 함께 달려 준 친구들과 아들들에게 좋은 기록이 되길 염원한다.


바이러스에 계절을 뺏긴 다시 그 봄에
안승빈

 

 

■ 본문 중에서


그 봄 5년 후


상만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두 달 전이었다. 장마가 막 시작된 어느 날, 학부 시절에는 친한 편이었으나 졸업 후에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서로의 안부 정도나 알고 지내던 기태형이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왔다. 형도 참 별나게 경기 남부 어딘가에서 젖소 농장을 운영하면서 축산업자로 산다는 정도를 알고 있었기에 농장은 잘 되는지 묻고 안부를 전했다.
“이야! 소가 한 마리에 얼마야? 형이 또 이렇게 부자가 될 줄은 몰랐네.”
“부자 같은 소리 하지 마라. 맨날 소똥이나 치우는 고충을 니들이 알기나 하겠니?”
“난 그래도 부러운 걸. 내가 비록 이러고 살고 있지만 꿈이 정신없이 몸 쓰는 직업 갖는 거잖아. 나중에 나 좀 일이나 시켜 줘요. 그나저나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주셨을까요?”
학부 졸업 후 제법 알려진 다국적 기업에 취업해 무난히 지내던 나는 어느 날 뜬금없이 대기업의 부속품 생활을 접고, 대학원에 입학했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실천에 옮기려는 나의 도전이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는 젊은 시절의 치기 정도로 비쳤는지 다들 혀를 찼다. 나 역시도 말은 그럴듯했지만 사실 그다지 굳은 의지도 없었고 확실한 목표도 없었다. 차마 말은 못 했지만, 그저 똑같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는 것이 더 적절한 이유였다. 상담심리를 전공하고 대학원을 졸업한 후, 현재는 시간제로 청소년 개인 심리상담과 때때로 강의를 하면서 소위 프리랜서 상담자로 지내고 있었다. 짧지만 결혼생활도 했었다. 별로 왕래는 없었지만, 워낙 학부 전공과는 동떨어진 일을 하다 보니 동문 사이에선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입소문이 빠른 편이었다.
대충 안부 인사가 끝나자 이윽고 형이 어렵사리 이제 중학교 2학년인 아들 상만이의 이야기를 꺼냈다. 내 또래들이 대부분 자식 문제로 고민하는 나이인지라 요즘 뜬금없는 지인들의 전화는 대부분 내가 청소년 상담사라는 말을 오랜만에 전해 듣고 가볍게 시작하는 자식들에 대한 하소연이 태반이다. 게다가 그 서슬 퍼런 중2병이라니. 늘 사례로 만나게 되는 내담자들에 비하면 그들의 걱정은 정말 배부른 고민이랄 수밖에 없는 것들이기에, 대개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라는 그들 입장에서는 영양가 없는 위로를 하게 된다. 아마도 내 지인들에게 난 별 볼 일 없는 상담자로 소문이 났을 것이다. 막상 심각하니 병원이나 전문적인 상담자를 찾아가서 상담 받아보라고 하면 애를 보지도 않고 섣불리 그런 소리 한다고 성부터 내는 사람들이 말이다.
형이 전하는 상만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집에서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아 도대체 속을 알 수가 없고, 제 방에서 휴대전화 게임에 빠져 산다는 것이 요지였는데, 사업상 들어온 주문을 확인하느라 집에서도 휴대전화를 놓지 못하는 아빠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 아들의 상태는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위로랍시고 ‘형, 밝은 낮에 얼굴 볼 수 있는 애들이면 걱정할 거 없어요.’라고 상담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리를 설파했으나 그게 부모에게 먹힐 리는 만무했다. 내 변변치 않은 조언에도 불구하고 형은 중요한 부탁을 했다.
이번 여름 방학에 상만이 휴대전화 중독을 끝장내려고 하는 데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형의 계획은 간단했다. 휴대전화가 안 터지는 곳-이를테면 몽골의 초원-으로 상만이를 보내버리는 것이었다. 억지로라도 휴대전화 금단증상을 이겨내야만 하는 혹독한 환경으로 보내 금단증상을 극복하고 돌아오면 모든 것이 정상이 될 것이라는 ‘하면 된다’식 행동주의자들의 절대 진리. 형은 늘 그러했다. 학부 시절 나에게는 눈곱만큼도 찾기 힘든 그런 형의 막가파식 보스 기질과 추진력을 선망해서 따랐지만, 막상 끝까지 따라가기엔 너무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거리가 생겼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행동 치료적 관점에서 볼 때 형의 상만이 개조 계획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럴 리 없겠지만 상만이가 계획대로 따라준다면 말이다.
“애가 가고 싶어 한다고요?”
“아니 뭐, 여러 가지로 꾸며대긴 했지.”
단언컨대 진정 휴대전화 중독일 경우 부모의 이 같은 제안에 자발적으로 동의할 아이는 없다. 형의 주장에 따르면 상만이가 동의했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그 아이는 휴대전화 중독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상만이가 동물을 좋아하는데 몽골에 가면 말을 실컷 탈 수 있다는 사실에 어렵게 동의했다고 한다. 아버지인 자신은 여름 농번기라 같이 갈 수가 없으니 내가 보호자로 함께하길 부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빠는 소와 매일 그렇게 씨름하면서도, 자녀는 학업을 위해 시내 아파트에서 지내는 바람에 동물을 사랑한다는 아이가 그토록 소원하는 반려견 한 마리도 못 키운다고 하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었다.
“그런데 왜 나예요?”
“너 상담한다는 얘기 들었어. 오히려 부모보다 네가 같이 가주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너 프리랜서잖아. 솔직히 갑자기 그렇게 시간 낼 사람이 많지 않잖니?”
‘팩폭이군.’
직설적이기는 여전해서 지나치게 솔직해서 기분이 좀 상했다. 그렇담 한번 튕겨줘야 했다.
“방학 때는 상담 스케줄이 늘어나서 곤란하긴 한데…”
“그래? 상담 받는 애들이 많은가 보구나. 그렇게 이상한 애들이 많니?”
배웠단 사람들도 상담에 대해 무지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상한 어른’을 교육하기에는 적합지 않은 상황이라 대꾸하지 않았다.
“어쨌든 가기로 했으니 된 거 아니냐. 너 자존심 상할까 봐 그렇긴 한데 여행 기간 동안 상담한다 치고 일당 지급할게.”
한번 튕기길 잘했다. 뭘 그런 괜한 걱정을 하고 그러실까? 자존심 같은 것은 프리랜서 시작하면서 스트레스 없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위해 되도록 덮어두고 살고 있었다. 그나저나 부모는 참 단순하다. 자녀가 자기 뜻에 따라준다고 하면 그 동기는 전혀 궁금하지 않은가 보다. 상식적으로도 그 나이 또래의 청소년이 이름 모를 벌레로 가득한 척박한 환경에 낯선 보호자를 선뜻 따라나선다는 것은 어느 모로 봐도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님에도 부모의 뜻을 따라주겠다는 자녀의 결정에 앞뒤 가리지 않고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한다.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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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그 후…
1년 전, 그 봄 4년 후

에필로그

안승빈

 

어느덧 20년 가까이 청소년지도사와 상담사로 활동 중.
자녀들은 아버지가 소설가보다 상담사로 불리길 원함.
주목받지 않는 평범함을 원하지만 특이하다는 얘기를 들으면 흐뭇함. 주된 행동 동기는 귀찮음 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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