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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 햇살
서윤택
시집
국판변형/144
2020년 8월 10일
979-11-5860-872-9
10,000원

■ 서문


정적의 초침소리 삼경을 지나 사경으로 가는 시간의 경계는 누구한테도 간섭받지 않는 평화와 자유의 시간, 화폭을 채색해가는 화가의 마음처럼 시어들의 춤사위는 밤을 잊는다.

무엇을 써야 하나, 무엇이 쓰게끔 하나. 그 원동력은 자신의 빛을 찾아가는 행복한 시간이다. ‘노력한다고 글을 잘 쓰는 것이 아니라 많이 읽고 써야 풍성한 콘텐츠로 문장을 이룬다.’ 했듯. 쓰이지 않을 땐, 억지로 짜내기보다 환경의 변화를 찾고 남의 글을 읽다 보면 자신의 글도 탄생 되는 것 같다.

광산에서 원석을 발견한 광부의 감흥처럼 한줄기 글맛을 채색해가는 행간의 퇴고 과정은 긴 여정 홀로 걷는 고독한 나그네가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아가는 행로다

요즘 시집 읽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한다. 문자에서 벗어난 멀티미디어 시대의 패러다임 전환은 눈과 귀를 사로잡는 트렌드 시대다.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는 인터넷이 알아서 척척 답해주는 IT기술의 4차원 시대 인공지능(AI)은 머지않아 자동차 운전도 사람에게서 로버트가 대신 운전하는 시대가 도래 할 것이다. 인간의 편리성을 추구하는 ‘상상의 나래’가 어디 이뿐이겠는가.

시를 배운 적도 없어 귀동냥과 눈 팅으로 읽고 쓰는 일밖에 없었던 아웃사이더 필력의 시어들이 독자와 얼마만큼 공감을 누릴 수 있을지 사람마다 살아온 궤적은 다를 수 있어도 비록 한 분의 독자라도 미열을 느낀다면 큰 보람이 아닐 수 없다. 독자 앞에 첫 시집을 발간하는 심정은, 꽃가마 타고 시집가는 새색시가 마을 하객들 앞에 첫 대면을 하는 마음처럼, 마치 취업준비생이 면접관 앞에 선 심정이다.

아직 시인이라는 범주는 시안詩眼이 부족하다. 홍시가 되어가는 땡감은 풍상을 겪어내야 하듯, 아직은 배우고 익히기 위해 많은 공부와 노력이 필요한 과정, 비록 늦깎이 사고와 관념은 낚고 정체된 것이 아니라 늦게 피는 가을 녘 산국처럼 피워내고 싶다.

지난날 지도 편달하여 주신 대한시문학협회 모산 김진태 고문님, 첫 시집 출간에 앞서 졸시를 서평 해주신 정성수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님, 시집 표지 동양화 그림을 선사해주신 동양화가 설파(雪波) 안창수 화백님, 꼼꼼하게 편집해주신 청어출판사 이영철 대표님, 시를 공부하는 초심자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신 ‘뉴스 N 제주’의 이어 산 칼럼 ‘토요 시 창작 강좌’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독자 분들의 건승을 기원 하면서…

 

2020 늦봄
서윤택

 

 

■ 본문 중에서


*강경장날


싸리발지게에
한 짐 실려진 노란 참외
한 접 반

동트는 새벽녘
쉬~엄 쉬~엄
십여 리 길 발품 팔아

강나루 뱃길 건너
읍내 시장바닥 한구석을 차지했다

반나절 만에
애지중지 키워낸
널 장사꾼에게 넘기고

길모퉁이 국밥집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제값 받지 못한 아쉬운 속내
막걸리 사발로 벌컥벌컥 마음재우다

저물녘 해 걸음걸이
농부가 흥얼흥얼 갈지자걸음은
오 리 길은 십 리 길 되어

저녁때가 다돼서야
사립문 들어서시던
아버지 지게 발목엔

어김없이 소금절인
간 갈치 한 두름*과
고등어한 손 매달리고

누런 사각봉투 속엔
겹겹이 포개진 식은 풀빵 열 개가
담겨있었다

취중 말씀은 들리지 않고
봉투 속만 관심 많았던
어린 자식들 마음…
당신이 그립습니다

*두름: 한 두름은 20마리 조기, 짚으로 한 줄에 10마리씩 두 줄로 엮은 것

 

 

*날개


날고 싶다
날고 싶다
저 창공을

접었던 나래를 펴고
저 하늘을 날고 싶다

칡과 등나무처럼 얽힌
너와 나의 갈등을 걷어내고

저 푸른 하늘
솔개의 눈빛으로
그 성(城)을 날고 싶다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산속 어둠 짙다하나
내속보다 더하랴

보름달이 밝다한들
내속까지 비추랴

장미꽃이 붉다한들
내속보다 붉으랴

매화나무 잔설가지
속울음 쌓였는데

재 너머 봄소식은
언제 오려나

 

 

*해설

 

산 자와 지상과의 포옹

정성수(丁成秀)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서윤택 시인의 첫시집 『요양원 햇살』을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지구인, 그 생활의 보편적 다반사를 다룬 시, 즉 ‘생활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평생 살아오면서 스스로 체험하고 보고 들은 수많은 세상사들이 모두 그의 시속에 다양하게 용해되어 있다. 따라서 그의 시는 기교가 승하다기보다 소박하고 진정성이 있는 시적 리얼리티가 따뜻하게 살아 숨 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어느 시를 읽어도 기교를 위한 기교, 지나친 시적 제스처에 의한 거부감이나 조작된 난해함이 느껴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초연한 모습으로 평화롭게 다가온다. 말하자면 그의 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세상과의 불화가 아니라 화해의 시이다.
이미 생에 대한 해답을 얻은 자로서의 지혜가 엿보이는 시편들, 즉 가족애, 내세에 대한 탐색, 삶의 덧없음, 노인 문제, 자연에 대한 외경, 고독, 추억의 스케치 등 여러 가지 소재들을 노래한 작품들이 선을 보인다. 즉 화자의 생애와 세상에 대한 진솔한 접근이 보편적 휴머니티와 함께 평화로운 정서적 여운을 거느리고 있다.

다음 시를 살펴보자.

 

싸리발지게에
한 짐 실려진 노란 참외
한 접 반

동트는 새벽녘
쉬~엄 쉬~엄
십여 리 길 발품 팔아

강나루 뱃길 건너
읍내시장바닥 한구석을 차지했다

반나절 만에
애지중지 키워낸
널 장사꾼에게 넘기고

길모퉁이 국밥집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제값 받지 못한 아쉬운 속내
막걸리 사발로 벌컥벌컥 마음재우다

저물녘 걸음걸이
농부가 흥얼흥얼 갈지자걸음은
오 리 길은 십 리 길 되어

저녁때가 다 돼서야
사립문 들어서시던
아버지 지게 발목엔

어김없이 소금절인
간 갈치 한 두름과
고등어 한 손 매달리고

누런 사각봉투 속엔
겹겹이 포개진 식은 풀빵 열 개가
담겨있었다

취중 말씀은 들리지 않고
봉투 속만 관심 많았던
어린 자식들 마음…
당신이 그립습니다

 

-「강경 장날」 전문

 

새벽녘에 ‘강경 장날’에 나가 참외를 팔고 저녁때에 돌아오는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 따뜻하고 인간적이다. 시 전체가 가감 없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어서 마치 동영상을 보는 듯하다.
특히 후반부, ‘저녁때가 다 돼서야/사립문 들어서시던/아버지 지게 발목엔//어김없이 소금절인/간 갈치 한 두름과/고등어 한 손 매달리고//누런 사각봉투 속엔/겹겹이 포개진 식은 풀빵 열 개가/담겨있었다’에서는 가장의 노고와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듬뿍 묻어있다.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실감나게 하는 대목이다.
시가 조금도 난해하지 않고 상황 표현이 적절하여 그 누구에게나 쉽게 감동의 파장을 전해줄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1부  /  당신

 

강경장날
삯바느질
백일 꽃
문상(問喪)
외갓집 가는 길
고향 가는 길
성묘회한
추석 그림자
부모 마음
요양원 햇살
고독 사
하늘 그리움

폐지 줍는 노파
갈대꽃 필 때면
바느질
새끼
부모자식
기일(忌日)
백사장에 핀 그리움
사랑은 저울이 아니야
거리의 잔상
산 그림자
산사(山寺)
할미꽃이 된 할매

 


2부  /  내 곁에

 

꿈자리
자리
당신 떠난 후
독주(獨酒)
벚꽃 향연
정적
장미
사람이 그리운 날은
달무리
그리움의 반추
정적의 빗소리
내 안의 너
놀빛 부부
뫼산의 사계
네 속/내 속
빛바랜 연서
청산에 묻혀

그림자

 


3부  /  바람

 

너에 잔영
월세방
술향
혼술
분재의 아픔
나이
그 속내
바람 불면 떠나라
존재의 유무
늙마와 주름
고사리
위선자
거꾸로 가는 시계
소유의 회전
사람 사이
생사는 어디에 있나
구름인생

 


4부  /  희망

 

야생화 슬픔
거리의 노숙자
날개
기도의 제목
로드거리의 생명력
민들레 꽃씨
외모
운명
내가 거한 곳
권력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참새 떼
홍수
올빼미는 잠들지 못했다
매미소리

생사관
초(草)
소생
이 봄날
자아


130 해설_산 자와 지상과의 포옹
 정성수(丁成秀)(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서윤택(徐潤澤)

 

충남 부여 출생
한맥문학 詩 등단
한국문인협회 국제문학교류위원
대한시문학협회 이사

<시집>
『요양원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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