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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박미윤
소설
4*6판/280쪽
2020년 11월 30일
979-11-5860-911-5(03810)
13,000원

■ 작가의 말

 

이 소설은 제가 처음 쓴 장편소설입니다.
제1회 4·3평화문학상에 응모했다가 최종심에 올라 몇 줄의 심사평을 읽게 되는 영광을 주기도 한 작품입니다. 지금까지 고쳐오면서 처음에 쓸 때 4·3의 전반적인 것을 제 소설만 읽고도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겠다는 생각이 욕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개인이 마주하고 겪어낸 4·3에 주목해서 고진석과 양윤자의 이야기를 쓰게 됐습니다. 그것은 우연한 기회였습니다. 4·3 자료를 조사하다가 성산에서는 어떤 여교사가 약혼자의 석방을 위해서 서북경찰과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알게 되었고, 몇 년 후에는 신문에서 일본에 사는 여성이 4·3 때 헤어진 연인을 찾아서 제주에 왔다는 것을 봤습니다. 두 여성은 같은 사람이 아니었지만 내 상상 속에서 두 여성은 한 사람이 되고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였으나 ‘영실’이라는 가상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사건들을 재구성했으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상의 인물임을 밝힙니다.

4년 전에 첫 소설집을 낼 때 작가의 말에 ‘느리지만 꾸준히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을 썼습니다. 제가 내세울 것이 끈기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이 끈기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십 년, 이십 년 후를 상상해도 책상에 앉아 토닥토닥 글을 쓰고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는 가족들과 ‘애인’ 소설동인 회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 본문 중에서


1. 가까운 거리, 먼 그대

오사카 간사이공항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육지에서 바다로 곧게 뻗은 다리는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처럼 보였다. 컨베이어 벨트 위의 상자 같은 차들이 끊임없이 간사이공항을 향하거나 떠나고 있었다.
엄마는 자신의 집요한 응시가 착륙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단축할 수 있다는 것처럼 비행기 창에 머리를 붙이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엄마는 시선을 그대로 고정한 채 내 손을 꽉 잡았다. 엄마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가느다란 떨림은 한 마리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우를 일으키듯이 나에게 와선 태풍이 되었다. 이번 여행이 엄마 마지막 소원의 마침표가 아니라 시작점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마중 나오기로 한 신지가 혹시 마음이 바뀌어 오지 않았으면 어떡하나 걱정됐다. 신지가 알려준 전화번호가 있었지만 신지가 받지 않는다면 나와 엄마는 고진석 씨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일본까지 왔는데도 고진석 씨를 찾지 못한다면 엄마는 실망감에 전설 속 신부처럼 먼지가 되어 풀썩 사라질지도 몰랐다. 신혼 첫날에 대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자객이라 생각하여 도망간 신랑을 기다렸다는 신부, 몇 년 만에 신랑이 돌아와서 혼례 활옷을 여전히 입고 있는 신부를 안았을 때 먼지가 되어 폭삭 내려앉았다는 신부가 바로 엄마였다. 나는 투명인간처럼 허깨비가 된 엄마를 찾아 헤매는 상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천천히 걸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번 여행을 머릿속에 문신으로 남겨두려는 것처럼 보였다. 엄마는 간사이공항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나도 엄마의 시선을 따라갔다. 스테인리스 골조물들이 대칭을 이루며 지붕을 덮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푸른 하늘이 눈을 찔렀다.
“이게 일본 하늘이구나.”
엄마는 한국의 하늘이 다르고 일본의 하늘이 다른 것처럼 중얼거렸다. 엄마에게는 저 하늘이 일본에 입국하면서 바라보는 마지막 하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목구멍까지 꼬챙이가 관통하는 것 같았다. 목구멍이 알싸하게 아려왔다.

입국심사장에서 입국 심사원은 간단히 방문 목적을 물어보고 5일간의 일본 체류를 허락했다. 나는 캐리어를 찾고 입구 쪽으로 걸어나갔다.
큰 키에 몸은 호리호리하다는 게 신지가 설명해준 자신의 인상착의였다. 신지는 자신을 잘 알아볼 수 있게 빨간색 옷을 입겠다고 했다. 자동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맨 앞에 빨간 셔츠를 입은 남자가 강렬하게 눈에 들어왔다. 신지를 찾아 두리번거릴 필요가 없었다. 호리호리한 몸을 인식하기 전에 빨간 셔츠와 스케치북에 ‘양윤자님, 이혜수님, 웰컴’이라고 쓴 글이 보였다. 색색의 형광펜으로 쓴 피켓 속의 글자들이 수백 개의 노란 리본이 돼 내 눈에 들어왔다. 엄마가 숨을 한 번 크게 쉬었다. 신지가 성큼성큼 걸어와 내가 잡고 있던 캐리어를 건네받으며 말했다.
“이모님, 혜수 씨, 제가 신지입니다.”
엄마는 신지의 얼굴에서 누군가의 얼굴을 찾아내는 것처럼 그의 얼굴을 뚫어질 정도로 바라보았다. 신지가 캐리어를 들지 않은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을 마주 잡자 억센 손아귀의 힘이 느껴졌다. 신지에게 빨간 옷은 어울리지 않았다. 사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신지는 보통 땐 무채색을 즐겨 입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가 빨간색 옷을 입은 건 오직 나와 엄마의 눈에 잘 띄게 하기 위한 연출 같았다. 신지의 빨간색 셔츠는 금방 사서 가격표만 떼고 걸친 것처럼 새 옷의 냄새가 났다. 나는 그가 고지식한 사람일 거라 단정했다. 자신을 잘 볼 수 있게 튀는 옷을 입겠다고 하고 스케치북에 엄마와 내 이름도 대문짝만하게 쓰는 남자는 내 경험에 비춰 봤을 때 매사에 염려가 많은 재미없는 남자였다.

먼저 차에 타고 있던 엄마와 나는 신지의 동선을 눈으로 조심스럽게 따라갔다. 신지는 캐리어를 트렁크에 싣고 차를 출발했다. 침묵이 어색하여 내가 말을 꺼냈다.
“한국말을 잘 하시네요.”
“아버지가 가르쳤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에게 매를 맞으며 배울 땐 반항하는 마음으로 배우기 싫었습니다. 그러나 덕분에 지금은 한국기업 일본지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신지의 억양엔 한국말을 자주 쓰지 않는 사람 특유의 어색함이 있었다. 그에게선 지적인 면이 보였고 엄마를 처음 부를 때의 호칭으로 ‘이모님’을 쓸 정도로 한국 정서에도 능통해 보였다. 엄마는 신지와 나의 대화에는 관심 없는 척 자동차 옆으로 빠져나가는 풍경만 계속 보고 있었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컨베이어 벨트 같던 다리 위를 신지의 자동차가 달렸다. 다리 옆은 바다였다. 엄마는 바다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꼭 한번은 만나야 할 사람의 아들인 신지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 악착같던 엄마의 시선이 자동차 옆으로 흩어졌다.
“먼저 아버지에게 갑니다. 가는 동안 불편하면 말해주십시오.”

작가의 말 4

 

1. 가까운 거리, 먼 그대  /  8
2. ‘나의 기억’ - 징용  /  37
3. 기억 안의 그대  /  45
4. ‘나의 기억’ - 귀향  /  61
5. 사랑의 인사  /  78
6. ‘나의 기억’ - 고문  /  101
7. 그대는 푸른 바다에 별로 뜨고  /  126
8. ‘나의 기억’ - 암흑의 전조  /  158
9. 몽근년 / 176
10. ‘나의 기억’ - 광풍  /  191
11. 목련이 지네  /  209
12. ‘나의 기억’ - 양길성의 죽음  /  232
13. 거짓과 욕망  /  248
14. ‘나의 기억’ - 밀항  /  259
15. 환상과 진실 사이  /  268

박미윤

 

제주 애월 출생
2009년 제주신인문학상 2016년 소설집 『낙타초』 2020년 장편소설 『연인』 백록문학상, 영주문학상 수상
제주문인협회 회원
제주펜 회원
애월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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