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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새로운 마디
이연숙
소설
신국판/216쪽
2021년 1월 10일
979-11-5860-919-1(038100
13,000원

■ 작가의 말

 

2017년 8월말 평생 몸담고 있던 교직에서 퇴임했다. 40년 가까이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온 마음과 몸을 바쳐 치열하게 매진해온 일은 내 삶의 대부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일터를 떠날 즈음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 의무에서 벗어나는 홀가분함 뒤에 밀려오는 막연함이었다. 일이 빠져나간 자리를 무엇으로 메꾸어야 하나 생각하다가 퇴임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퇴임사를 작성하고 나니 마음이 안정되었다. 여러 생각의 가닥을 잡아 구성하느라 뇌가 진땀을 흘리긴 했어도 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기계적 행동이 산란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한 것 같다. 그러면서 퇴임 후 뭔가 쓰는 것을 하면 평정을 찾으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이때 여러 글쓰기 중에서 나를 심하게 유혹한 것은 소설쓰기였다. 그동안 해왔던 연구논문이나 전공서적을 집필하는 것과는 다른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드라마를 광적으로 좋아한다. 이는 미국유학에서 돌아와 김포 공항에 첫발을 내 디디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공항에 내리면서 가장 경이로웠던 것은 갑자기 주변에서 하는 모든 말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이었다. 모국어가 소통 수단이 아닌 나라에서 5년 가까이 살면서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경이로움은 드라마를 보면서 더욱 더 생생해졌다. 미국에 있을 때는 드라마 대사를 대충 들을 수밖에 없어 재미를 거의 못 느꼈는데 이게 웬일인가? 드라마의 모든 대사가 남김없이 들리는 것이 아닌가? 대사를 놓치지 않고 들으며 드라마를 보니 너무나 재미났다. 그 재미는 환희에 가까운 희열조차 주었다. 그 후로 드라마에 빠지게 되었다. 드라마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것뿐만 아니라 타인의 인생에 관심이 많은 나의 성향과 등장인물을 창조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이들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작가의 막강한 권력행사(?)에 대한 매력 또한 소설쓰기를 택하는데 한몫 했다.
칠순쯤에 등단하려했던 계획이 칠순이 되는 올해 첫 소설집까지 내는 것으로 발전했다. 그것은 2018년 『문예연구』에서 「순분의 봄날」로 신인상을 받게 되어 등단이 조금 앞당겨 졌기 때문이다. 되도록 일찍 등단하라고 용기를 주셨던 박영순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님이 계셔서 가능했던 일이다. 『문예연구』, 『한국소설』, 『작가교수세계(구 소설시대)』를 통해 이미 발표했던 5편 소설들은 내용을 보완하고 수정했다. 이에 미발표 소설 2편을 합쳐 칠순을 자축하는 의미로 첫 소설집을 내게 되었다.
가정생활이 연구대상인 가정학을 평생 연구하며 가르쳐 오다가 퇴임하고 칠순이 되고 보니 자연스럽게 가정생활과 노인이 맞닿아 있는 노인의 가정생활이 소설 소재로 제일 먼저 떠올랐다. 특히 노인이 되면 누구나 맞닥뜨리게 되는 사별이나 이혼으로 홀로 지내야 하는 상황에 가장 관심이 갔다. 이 상황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쇠퇴해가는 시기에 있는 노인들에게 가장 큰 시련이고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 가가 남은 생의 행·불행을 결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번째 소설집에 실린 7편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홀로 남은 고독한 노인들이다. 이들 주인공들은 혼자되는 과정에서 상처를 받았지만 그 후에 펼쳐지는 지난한 삶 속에서 지푸라기 같은 작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견뎌가는 애처롭지만 꿋꿋한 노인들이다. 이런 황혼에 홀로 남은 노인들 얘기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언뜻 언뜻 발견하고 공감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작가로서 이보다 더 한 영광은 없을 것이다.
소설 소재는 주변에서 경험했던 일들, 라디오의 사연, TV의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여러 포털사이트 등에서 얻었지만 이는 모두 소설 쓰는 과정에서 재구성되었다. 자신과 유사한 얘기가 있을 수 있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어디까지나 소설을 위해 창작 되었다는 것임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첫 독자가 되어 가차 없는 비평을 해 준 조혜경, 조귀현, 김광순 및 그 외 친구들, 박영순 교수님과 신완식 교수님을 비롯한 문우들 그리고 가족에게 감사의 마음 금할 길 없다. 초보 소설가 소설의 서평과 조언을 함께 해 주신 작가포럼 회장님이신 이덕화 교수님과 선뜻 소설집 출판을 맡아주신 청어출판사 이영철 대표와 편집진의 수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21년 칠순을 자축하며
이연숙

 

■ 본문 중에서


*순분의 봄날
희미한 달빛이 어둠을 가까스로 밝히고 있는 산. 팔순을 훌쩍 넘긴 순분이 힘겹게 산에 오르고 있다. 숨이 가빠지면서 턱턱 막히고 오래 동안 고생했던 무릎 통증이 밀려와 걷기 힘들었다. 야생 동물들의 울음소리도 간간히 들려오고 누군가 자신의 등덜미를 잡아당기는 것 같아 몸이 오싹 거리며 식은땀이 나기도 했다. 무서움을 이기기 위해 순분은 평소 즐겨 부르는 ‘봄날은 간다’ 노래를 웅얼거렸다. 낮에 봐두었던 산등성이 아래 있는 무덤을 찾았다. 낮에 봐두기는 했지만 어두운 가운데 잡목과 덤불이 우거져 있어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동안 돌보는 사람이 없었는지 무덤 위의 잔디는 거의 다 헤어져 있고 봉분의 형태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찾아내는 것이 더욱 더 어려웠다. 서너 번 이리저리 헤매다가 간신히 무덤을 찾았다. 무덤 앞에서 가쁜 숨을 진정 시킨 순분은 가져온 호미로 무덤 주변을 파기 시작했다.
―대체 어디 있지! 내가 꼭 찾고야 말거야. 찾아야 되고말고.
결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한참동안 땅을 파헤치자 호미 끝에서 무언가 걸리는 것이 느껴졌다. 흙을 걷어냈더니 찾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순분은 그것에 묻은 흙을 조심스럽게 털어낸 후 배낭 속에서 깨끗이 빨아 곱게 다려 온 헝겊을 꺼내어 펼쳐놓고 정성스럽게 쌌다. 이를 비닐 봉투에 다시 담아 가져온 배낭 속에 넣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다 가진듯한 뿌듯한 마음으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원하는 것을 찾은 순분은 아픈 무릎 통증과 어둠의 산이 주는 두려움도 모두 잊어버리고 산을 내려오다가 동네 청년을 만났다. 동네 청년은 한 밤중에 등에 배낭을 지고 산에서 내려오는 순분이 너무 수상했고 더욱이 등에 진 배낭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하는 것에 갑자기 의심이 생겼다. 그래서 의심스러운 눈길을 순분에게 떼지 못하면서 물었다.
―할머니, 야심한 시간에 어디 다녀오세요? 이상하네, 근데 배낭에는 뭐가 있어요?
―별걸 다 물어보네. 내가 찾은 것이니까 내 거야. 상관 하지 말고 가던 길이나 가봐!
하며 청년을 쏘아붙였다. 청년은 순분의 완강한 태도와 기세에 질려 가던 길을 갔다. 순분은 휴우 하며 바삐 집으로 들어가 마당에 허름하게 지어진 창고를 찾았다. 창고는 허름했지만 문에는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있었다. 순분은 바지 주머니에서 열쇠를 찾아 창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 안에는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여러 개 있었다. 순분은 그 중 한 항아리의 뚜껑을 연 후 무덤에서 가져온 것을 조심스럽게 넣고 조용히 닫았다.
*아버지의 두 얼굴
퇴임을 앞두고 연구실 정리하느라고 정신없는데 경희 전화를 받았다. 경희는 어린 시절부터 이웃에 살며 같은 학교까지 다니다 보니 숟가락 몇 개 있는 것조차도 아는 듯 우리 집안일을 훤히 꿰고 있는 친구다. 경희가 서재에 어지럽게 쌓여 있는 물건을 치우다 우연히 우리 아버지 얘기가 쓰여 있는 수필집을 발견했는데 내가 꼭 봐야 될 것 같다며 만나자고 했다. 경희의 전화로 돌아가신 지 20년 가까이 지난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첫 자락은 언제나 ‘미운 아버지’였다. 그리고 왜 엄마는 이런 아버지와 이혼 안하고 살았을까 하는 의문이다.

아버지는 전남 무안에서 태어났다. 그곳에 있다가는 평생 농부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아 14살 때 가출해 원산으로 갔다. 낯선 곳에서 제대로 할 만한 일을 찾을 수 없어 가출 후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어느 미국 선교사집에서 허드레 일을 해주며 지냈다. 그 집에서 생활하던 중 공부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전기 값을 아끼느라 선교사가 저녁 일찍 전등을 꺼버리면 전기불이 켜있는 인근 공중화장실로 가서 그 불빛으로 새벽까지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공부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아버지는 전교 수석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공부를 잘해 경성사범학교에 무난히 들어갔다. 아버지는 내가 공부를 소홀이라도 할라 치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인데 왜 공부를 안 하느냐.”고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공부만 잘 했으면 뭐해. 돈도 못 버는데.”하며 무능력한 아버지를 무시하며 원망했다. 그러니 아버지의 탁월했던 학업에 대한 성취는 흥미가 없었고 재미있는 엄마와의 연애 얘기만 잊혀지지 않고 있다.
*며느리의 비밀서랍
선영이 시계를 흘끗 보니 11시가 다 되어 간다. 빨리 서둘러 나가야 점심 약속에 늦지 않을 것 같다. 일본여행 갈 때 면세점에서 샀던 프라다 지갑과 폴로 티셔츠와 청바지를 쇼핑백에 챙겨 넣었다. 며느리 현지와 손자 상윤에게 줄 선물이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점심 약속이 있는 날인데 식사 후 상윤을 봐주러 C시에 내려가야 한다. 외아들인 민호가 대학생일 때 남편과 사별 한 후 선영은 홀로 민호 뒷바라지를 했다. 민호가 대학 졸업 후 유학을 떠났는데 아직 공부가 끝나지 않아 미국에 머물고 있다. 민호는 같은 대학교에 다니던 현지와 연애 끝에 결혼했다. 결혼 후 현지도 미국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민호보다 먼저 공부를 마치게 된 현지는 C시에 있는 국책 연구소에 취직이 되어 두 살 된 상윤을 데리고 혼자 귀국했다. 선영은 그동안 모아 놓은 돈을 모두 털어 C시에 아파트를 사 주었다. 전세를 살게 되면 현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2년 마다 이사를 가게 되어 번거롭고 힘들 것 같아서였다.
현지는 뒤늦게 얻은 아들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 아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한다. 유기농 식재료를 사서 손수 음식을 장만해주고 천연섬유로 된 명품 브랜드 옷을 사 입히고 교육에 좋다는 장난감과 책 사는데도 돈을 아끼지 않는다. 상윤이 TV에 일찍 노출되어 빠지는 것을 염려해서 TV를 구석방에 놓기도 했다. 현지가 무엇보다도 고집하는 것은 기본 성격이 형성되는 만 6세까지 만이라도 아이는 가족이 돌봐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선영이 강의 요일을 조정해 C시를 오르내리며 상윤을 돌봐주었다. 선영이 3년여 가량 상윤을 돌보다가 갑자기 어깨 수술을 받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집안일도 하면서 상윤을 돌 볼 도우미를 구해 몇 개월 동안 선영이 해왔던 일을 맡겼다. 어깨수술 부위가 거의 완치되자 일주일에 절반씩 선영과 도우미가 번갈아가며 상윤을 돌보기로 했다.
*토탈커플 The Total Couple
―경란아, 우짜노. 우리남편이…….
명희는 울면서 거의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무슨 일인데? 왜 그래?
―우리남편이 죽었대이.
대학 시절 만나 지금까지 친구로 지냈던 명희 전화를 받은 경란은 너무 놀라 주저앉았다. 손이 떨려 전화기를 제대로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부리나케 옷을 갈아입고 택시를 타고 명희가 얘기한 병원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명희는 남편 영정 앞에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연유를 묻는 경란을 붙잡고 명희는 눈물범벅이 되어 경황없이 얘기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여행사의 1일 관광을 다녀와 늦게 집에 돌아와 보니 설거지 그릇은 쌓여있고 집안 곳곳이 많이 어질어져 있었다. 다녀 온 날은 너무 피곤해 손도 못 대고 있다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식사 준비하고 어질어진 방 정리하면서 청소하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청소기 돌리는 소리가 시끄러울 것 같아 안방 문을 닫고 청소하느라 남편이 안방 욕실로 들어가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관리실에서 사람이 와서 아랫집 안방 욕실 천장에서 물이 샌다는 신고가 들어와 보러왔다고 했다. 관리실 사람들과 같이 안방 욕실에 가 보니 남편이 뜨거운 물을 틀어 놓은 채 숨져있었다. 남편이 돌연사하면서 뜨거운 물을 계속 틀어놓아 실리콘이 녹아 아래층 화장실 천장으로 물이 샌 것이었다. 시신을 부검하는데 시간이 걸려 이제야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부검 결과 남편의 사인은 심장마비로 밝혀졌다.
―명희야,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있니. 얼마나 놀라고 힘들었겠어. 네가 너무 충격 받았겠네.
경란은 명희의 어깨를 감싸며 이렇게 말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갑자기 갈 줄도 모르고 그 인간 그 인간 하면서 미워만 한 것 같아 후회스럽대이. 잠자리만 밝히고 돈에 인색하게 굴며 마치 아랫사람 부리듯이 나를 대하는 것이 너무 싫었대이. 그런데 죽고 나서 이것저것 정리하다 보니 내 앞으로 거액의 연금보험 들어 놓은 게 있더라. 죽고 나서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자식들한테 얹혀 지내며 서럽게 살까 봐 들어 놓은 것 같았대이. 더욱 더 가슴 아픈 것은 빼다지에 있던 약병을 자세히 보니 심장병약인 기라. 내가 걱정할까봐 심장병에 대하여 한마디도 안 하고 그냥 건강을 위해 먹는 약이라고만 했나봐. 그것도 모르고 나는 지 몸만 아낀다고 약 많이 먹는 것도 미워했대이.
이 얘기를 들으니 그동안 만나기만 하면 끊임없이 이어지던 명희의 남편 험담에 익숙했던 경란은 다소 혼란스러웠다.

 

 

작가의 말


작품 스케치

순분의 봄날
아버지의 두 얼굴
며느리의 비밀서랍
토탈커플
사랑의 미망
생선가시 발라 주는 남자
인연의 새로운 마디
한 시대의 자화상

해설
한 시대의 자화상_이덕화(작가포럼 대표, 평론가)

이연숙(李蓮淑)


필명: 연숙희(蓮淑熙)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및 동 대학원 졸업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철학 박사
고려대학교 사범대학장 및 교육대학원장, 고려대학교여교수회 회장, 고려대학교 양성평등센터장, 성북구건강가정지원센터장, 한국가정과교육학회 회장, 한국가족자원경영학회 회장, 한국가정과교육단체총연합회 회장 등 역임
현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가정교육과 명예교수
현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작가교수회 회원,
작가포럼 운영이사

<소설집>
『인연의 새로운 마디』
<저서>
『가정과교육의 이론과 실제』
『성인을 위한 가족생활 교육론』
<공저>
『가정관리학』 『가계재무관리의 이해』
『인간과 생활환경』 『가족과 함께하는 자원봉사』
『가족과 문화』 『다문화 사회의 이해』
『중·고등학교 기술·가정 교과서 및 교사용 지도서』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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