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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게차 왕
정재무
장편소설
4*6판/224쪽
2021년 2월 26일
979-11-5860-925-2(03810)
13,000원

■ 작가의 말


힘들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하는 시간들의 연속이다. 하나의 작품을 기획하고 정리하고 또 완성시키는데 소요되는 인내 그리고 고통과 고뇌의 시간들. 이제는 그 인고(忍苦)의 시간들마저도 행복이고 기쁨이 되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의 마법에 걸린 듯한 황홀함에 취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잠시라고 생각했지만 십 수 년이 흘렀다. 고단했던 삶에 한 줄기 희망으로 다가와 나의 손을 어루만져주고 이끌어 준 아름다운 글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물류 밥을 먹으면서도, 점점 멀어지는 듯하면서도, 늘 가까이에서 은연 중 나의 등을 떠밀어 준 소중한 존재들이다.
애지중지 품 안의 자식 같던 글자들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손을 내밀어 주신 도서출판 청어 이영철 대표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볼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생각하고 싶다. 줄어드는 나의 뇌가 나약한 육체에 의해 잠식당하지 않는 한은 계속 그래야만 할 것 같다.
글을 쓰는 것으로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아마도 학생 시절 그 어딘가 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과연, 의문이다.
몸도 마음도 훌쩍 커버린 지금, 현실에 부딪히고 닳고 닳아 바짝 메말라버린 나의 몸뚱이는 여전히 길을 잃고 방황 중인가 보다.


2021년, 추운 겨울의 시작점에서
정재무



■ 본문 중에서

“지난 한 달간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물류센터의 전 사원들이 모이는 전체 조회가 있는 날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센터장의 지난 달 안부를 묻는 인사로 조회가 시작됐다. 한 달만의 전 직원들과의 만남인데 처음 내뱉는 말에 그리도 할 말이 없는지. 매번 똑같은 인사말의 조회 시작이다. 물론 애써 지어보이는 듯한 센터장의 밝고 어색하게 빛나는 얼굴 표정을 덤으로 볼 수도 있었다.
평소엔 유난히도 뻣뻣했던 그의 그 허리가 반쯤이나 되려는 듯 억지로 앞으로 숙여졌다. 그 모습을 받아들여야 하는 영재는 물론 거북하다.
‘평소에나 저렇게 잘 할 것이지. 무슨 정치인도 아니고.’
영재는 속으로 생각했다.
더욱이 그 앞을 마치 호위라도 하는 듯 둥글게 원을 그리고 서 있는 관리자들을 보고 있자니 영재는 조회 시작 전 벌써부터 짜증이 밀려왔다.
“오늘 여기 모이신 여러분들을 보니까 저절로 힘이 나네요. 제가 이렇게 전체 조회 시간마다 우리 사원님들께 항상 강조하는 말이 있죠? 기억들 하시나요? 우리는 한 가족이라고…… 일을 하기에 앞서 우리는 가족입니다. 여러분들이 건강하고 또 여러분들의 가정이 평온해야…….”
여기까지 들은 뒤 영재는 발길을 돌렸다.
‘그냥 올라갈 걸. 역시 괜히 왔네.’
매달 돌아오는 전체 조회 때마다 되풀이되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뭐라도 있나싶어 항상 조회 중간 즈음까지는 들어보고 발걸음을 돌리곤 했지만 오늘은 왠지 시작부터 짜증이 확 밀려왔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때문이었을까.
-다들 불만 섞인 투정에 신 회장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항상 제 자리를 지키려 발버둥 쳤다. 전자 상거래 회사로서 동종 업계 최고라는 자부심. 수억에서 수십억에 이르는 연봉과 성과급. 임원들만을 위한 온갖 사내 복지와 부수적인 혜택들. 바로 일반 사원들에게는 베일에 가려져 있는 온갖 특권들이 그들의 발목을 꽉 쥐고 있던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 웬만한 중견 기업 이상의 임원들 사이에서는 알게 모르게 신 회장의 성품에 대해 소문이 나 있는지 이미 오래였다. 그리고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위 임원들만의 세계에 금방 퍼져 제대로 인식이 박혀 있는 임원들에게 신 회장이 버티고 있는 회사는 늘 기피 대상 중의 하나였다. 외국물을 먹은 사람들이나 업계 소식엔 둔하지만 능력 있고 고지식한 임원들이 간혹 스카우트되었다가 신 회장과 맞닥뜨리고 난 뒤 학을 떼고 줄행랑치는 경우들이 간간이 있을 뿐이었다.
영재가 근무하고 있는 물류센터의 센터장 역시도 외국에서 스카우트 된 케이스였다. 어떠한 인맥으로 인해 스카우트 되었는지는 알려진 바 없었으나 센터장은 매월 첫 주에 있는 월례 조회 때마다 본인이 미국에서 왔다는 점을 유난히 강조하며 어깨를 세우곤 했다. 원래 혀가 짧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발음도 유달리 꼬부라지게 흘리는 듯 했고 미국은 어떻다는 식의 쓸데없는 비교를 많이 해서 듣고 있는 사원들로 하여금 종종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면서 국내의 작업 환경이나 노동 실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점을 부각시키고 접목시키려고 시도해 현장에서 일하는 사원들의 짜증을 초래하곤 했다.
-‘저런데 쓸 돈 있으면 근로자들 열악한 근무 환경이나 처우에 대해 개선을 좀 더 해 주던가.’
영재는 잠시 이렇게도 생각해 보았지만 영재가 사는 세상은 그들의 삶 속으로 녹아들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아니었다. 그들의 생각은 달랐고 다른 영역이었다. 만약 영재가 그들 중의 한 부류였다면 영재는 달리 생각하고 또 달리 행동했을까. 영재는 그것에 대한 확신 또한 없었다. 그저 맞닿을 수 없는 평행선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 이상의 이하의 것도 아닌 그저 그런 삶일 뿐이었다.
갑자기 어딘 가에 누워있을 덕수가 생각났다. 스스로는 앉아 있을 수조차 없는…….
곧 퇴원할 것 같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쉽게 다시 가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결국 현장 관리자들을 통해서만 간간이 소식을 전해 듣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 덕수 보상은 제대로 잘 받았는지 모르겠네…….’
덕수를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왔다. 이제 마음잡고 결혼해 잘 좀 살아보겠다는 청춘인데 그런 끔찍한 사고를 내려주시니 하늘도 참 무심하다고 생각했다.
-영재는 다른 지게차 사원들의 눈에 띄지 않게 휴게 시간 지게차를 잠시 충전해 놓은 곳으로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지게차는 ‘윙’ 하는 둔탁한 충전 소리와 함께 여전히 충전이 되고 있었다. 문득 충전 단자를 지게차에서 빼내어 그 모양새를 요리조리 유심히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업무가 끝나면 빠르게 집에 갈 생각에 혹은 한시라도 피곤한 몸을 빨리 쉬게 해주고 싶은 생각에 아무 생각 없이 급하게 충전기만 끼고 빼봤지 지금처럼 그 생김새를 세밀히 관찰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았다. 이 작고 가느다란 전기선으로 사람이 탈 수 있는 거대한 고철 덩어리에 생명을 불어넣어 준다고 생각하니 그 모습이 달리 보이고 신기하기만 했다.
지게차에 올라 탄 영재는 자신이 잠들었던 한 시간 동안 계속해서 일을 해 온 것처럼 태연히 움직였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연하게 지게차를 운전해 나갔다. 다행히 아무도 모르는 눈치였다.

오늘도 영재는 달린다
지게차 사고
물류센터
도난
A.I.
지게차 왕

정재무


서울 출생. 양정 고등학교와 한성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Full Sail University Entertainment Business 학과 졸업, New York University Entertainment Media Management 과정 수료 후, 2010년 작사가로 데뷔, 대표곡으로 MBC 드라마 ‘구암 허준’의 메인 테마 <달빛사랑>, <미리내 길> 등이 있다.
5년간 전국 굴지의 물류센터를 돌아다니며 입·출고 사원, 지게차 사원, 현장 관리자로 근무했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장편소설 『지게차 왕』을 집필하였다.
현재 직장 생활을 하며 틈틈이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아들바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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