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CK

MENU

 Home > 발행도서 > 문학 > 소설
안개 여인 그녀의 정체
정다운
소설
신국판/336쪽
2021년 11월 15일
979-11-5860-994-8(03810)
13,000원

■ 저자의 말


아픈 현대사의 기록
『안개 여인, 그녀의 정체』는 수용소문학 창시자인 ‘콜리마 이야기’ 작가 바를람 샬라모프의 맥을 잇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샬라모프는 ‘소용돌이 속으로의 여행’ 작가 예프게니아 긴즈버그와 함께 전후 알렉산더 솔제니친에 앞서 악랄한 독재자 스탈린에 의해 자행된 인권모독 굴라그 실태를 고발한 바 있다. 필자는 이들의 문학궤도를 따라서 소련군의 붉은 씨받이 음모를 파헤치는 가운데 자신의 출생 의혹에 몸부림치며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조선 여인의 끈질긴 집념을 드러냄으로써 한민족 후예로서 올바른 자리 매김의 의의를 되새기고자 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붉은 조선 사생아의 인간 실존 드라마이자 시베리아 북극동 콜리마지역 죽음의 수용소로 내몰린 기구한 운명의 두 여인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해방 후 정신대, 이른바 데이신따이로 불리는 일본 종군위안부에 관한 논의는 늦게나마 활발하게 진행되어왔다. 이 활동은 그동안 시행착오가 있기는 해도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나타난 여권신장과도 맞물려 페미니즘 측면에서 새로운 인권운동으로 차원이 격상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그늘에 묻혀 있는 또 다른 여성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정부나 인권운동가나 할 것 없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1945년 8월 해방군을 자처하고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에 짓밟힌 여성들 문제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남북한을 막론하고 전혀 문제를 삼지 않았다. 소련이 후견인 역할을 담당하여 출범시킨 북조선 정권은 물론 소련군의 횡포에 짓밟힌 조선 여인들, 이른바 붉은 사생아의 인권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으로 면책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의 집권자들은 왜 또 그녀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해방 후 초기에는 신생 독립국가로서 국가 기반 다지기에 여념이 없었다 치더라도 1990년대 이후 여권신장과 인권운동이 전개된 시기에도 붉은 사생아에 대한 말이 없었다. 이 대목에서 늦게나마 우리는 동시대인으로서 의혹과 반발심을 갖게 될 것이다.
필자는 1945년 12월 29일 페드로프 중령이 소련군 25군 치스차코프 사령관에게 제출한 북한주둔 소련군 감사보고서에 주목했다. 그 무렵 이미 소련군의 횡포 소문이 북한 전역에 널리 구전되고 있던 중이었다. 이 와중에 나온 감사보고서는 소련군뿐만 아니라 북한에도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그러나 치스차코프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을 뿐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해서 여기서 모티브를 가져와 소련군의 붉은 씨받이 음모인 안개작전을 중심으로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

요약컨대, 한민족의 후예가 겪지 않으면 안 되었던 시대의 아픔을 되새기면서 거칠게 내달리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희생된 한 여인의 처참한 삶과 소련군 사생아로 태어난 후 생존의의를 확인하기 위해 정체성을 찾아 나서는 한 여인의 처절하고도 가슴 벅찬 절규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을 형상화했다. 그러나 단순히 개인의 고난을 추적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했던 어두운 생의 그림자를 통해 역사에 역행한 자들을 세상에 고발하고자 했다. 나아가 이 작품을 통해 거친 역사의 격량에 희생된 조선 여인의 상처를 치유함으로써 통일 이전에 민족통합을 달성하는데 일조가 되었으면 한다.
시대적 배경은 해방 무렵 소련군의 북한 진주와 소련의 일본군 시베리아 강제수용소 수용 시기와 이 시기에 일어났던 조선 여인의 고난의 삶을 붉은 사생아가 추적하는 시기, 즉 고르바초프의 집권시기에 해당한다. 그런 만큼 이 작품은 하바롭스크에서도 수천 리 떨어진 시베리아 북극동 콜리마지역 죽음의 수용소라던 엘겐수용소 생활 현장을 펼쳐 보이며 스탈린의 반역사적 인권모독적 굴라그 실태를 드러내고 있다.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 속 시체 무덤인 콜리마 백골도로를 따라간 수용소에서는 여성이 없는 무성의 여자 수인들의 참상이 드러난다.
이와 더불어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노선에 밀려나던 강경 보수세력의 고르바초프 암살음모를 비롯 과도기 공산종주국의 혼란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시기 한국에서는 근대화과정에서 붉은 사생아를 사랑했던 기자가 좌천성 퇴직과 해직기자가 되는 등 어려웠던 언론실상이 드러난다. 또한 강압적 통치체제에서 문민정부에 의한 민주체제로의 전환을 앞둔 과도기에서 주인공인 붉은 사생아는 바와 요정을 거쳐 지방 도시 맥주홀을 전전하다가 결국에는 소련 마피아와 연루되는 등 과도기 한국 사회상을 드러내고 있다.

필자는 신문기자 시절 봉급투쟁에 가담했다가 후배 기자와 함께 좌천성 퇴직을 당한 후 막걸리를 마시며 울분을 토했다. 통금시간이 되어 찾아 든 여관방에서 한 여인의 수기, ‘이 여인의 옷깃을 들추지 마라’를 발견, 밤새 읽고 울적한 기분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로부터 40여 년만인 2009년 가을 남북문제를 천착하기 시작하면서 페데로프의 감사보고서와 함께 기억의 한편에 잠재해 있던 그녀의 수기를 바탕으로 작품 구상에 착수하여 2010년 4월 탈고했다. 작품은 ‘붉은 사생아’였다. 그러나 출간은 하지 않은 채 두고두고 퇴고를 거듭해왔다. 그러다가 2019년에 우연하게도 신문사 옛 동료로부터 일본 여인의 정치범 재판과 콜리마지역 강제수용소행을 다룬 책을 입수하게 되었다. 거기에는 공범인 조선 여인들이 함께 재판을 받았다는 얘기만 언급되어 있었다. 여기서 모티브를 가져와 기존 작품에 활용하여 2020년 5월 개작을 완성했다.
제목은 ‘붉은 사생아의 행로’였다. 그 후 1년 3개월 동안 거듭 퇴고를 한 끝에 이 작품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제목도 처음에 ‘콜리마수용소 조선 여인의 사생아’라고 했다가 붉은 씨받이 음모인 안개작전의 상징성을 고려하고, 남녀 주인공이 만나게 되었던 계기와 붉은 사생아의 정체성 찾기에 방점을 두어 ‘안개 여인, 그녀의 정체’로 고쳤다. 따라서 이 작품은 실제 모델에다가 픽션을 가미하여 팩션이라고도 할만하지만 큰 줄기는 어디까지나 픽션이다.
10년이 넘는 기간은 작품이 숙성할 만큼 긴 시간이 되지만 과연 이 작품이 암울한 시대상과 저 멀리 콜리마지역 죽음의 수용소로 내몰린 조선 여인의 고난, 출생의 의혹에 몸부림치며 정체성 찾기에 나선 붉은 사생아의 절규 등 그늘에 파묻힌 여인들의 고된 삶이 제대로 발효되어 무르익은 것인지, 그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이 작품이 나오는데 협조해준 옛 국젠신문 동료와 북한망명펜 이사장 김정애 작가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신문사 동료는 일본인 원산 유곽녀에 관한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주어 개작에 도움을 주었고, 김 작가는 장또순의 구수하고도 감칠 맛 나는 함경도 사투리를 재현해주어 현장감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이 자리에서 문제의 수기를 접하게 된 계기를 함께 했던 후배기자 신영수 전 경향신문 주베이징특파원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베이징저널 대표로 활동하다가 귀국한 그는 자신이 등장하는 소설을 출간할 예정이라는 말을 듣고 매우 반가워했다. 헌데 직지소설문학상 응모작을 쓰느라 작품의 출간이 늦어지는 사이, 그는 2018년 12월 위암이 재발하여 세상을 하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자리를 빌어 고인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고 싶다.
끝으로 작품 출간에 여러모로 협조해 주시고 남달리 작가의 노고를 함께 하려는 자세를 잃지 않는 청어 이영철 대표와 편집진에게 감사를 드린다.



■ 본문 중에서


그런데 이런 결심을 하자 마음 한구석에서 스치는 그림자 같은 것이 있었다.
‘그토록 자랑스럽던 엄마는 왜 무엇인가를 숨기려 했을까?’
정옥은 어른이 되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문득문득 고개 드는 이런 의문에 잠시 심란해지곤 했다.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자신에게 던지는 호기심 어린 시선이랄까, 이물질을 보는 듯한 표정 같은 것이 자신에게 무엇인가, 그들과 다른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것같아 출생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게 되었다. 당연히 엄마에게 물어봤다. 물론 엄마는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에 곧 응답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녀의 질문에 반응이 없었다. 침묵으로서 응답할 거리가 안 된다는 것을 알려 주려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럴수록 더 궁금했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까 으레 그렇거니 하고, 엄마의 태도에 별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정옥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의문을 가진 채 살아왔다.
오늘따라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못다 푼 응어리 때문이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부산을 떠나 진주에 제2 터전을 잡았을 때 ‘인자 제 자리 잡은 것 같데이.’ 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던 모습이 눈에 밟혔다.
단칸방에 누운 미정, 아니 정옥은 기가 막혀 울고만 있었다. ‘황금마차’를 피하고 나니 ‘명기 집’이 그녀를 덮쳤다. 생존을 위해 스스로 몸을 판 것보다 더한 모욕과 굴욕감에 충격을 벗어날 수 없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몸뚱이 하나로 살아가려는데 그 몸뚱이가 말썽이 되는 것을 참아낼 수 없었다. 이런 저주스런 몸뚱이를 가지고 어떻게 한국에서 살아갈 수 있나? 회의에 빠져들수록 대성이 생각이 간절했다. 그만이 자신을 한 여성으로서 사랑해 주지 않았던가? 그를 거부한 죄인가?
이제는 대성을 찾을 명분도 사랑도 없는 몸, 죽어서 엄마 곁으로 가는 것만이 자신을 지킬 수 있으리라 믿었다. 때마침 일어났던 YH여공사태가 결심을 굳히게 했다. 때는 1979년 8월 14일, 해방 34주년 하루 전이었다. 8월 6일 폐업신고로 생업을 잃게 된 YH여공들이 9일부터 마포 신민당사 4층에 자리 잡고 이틀째 농성을 계속하며 생업을 보장해 줄 것을 애처롭게 부르짖었다. 그러나 경찰은 11일 새벽 1시 50분 신민당사에 침입, 강제 해산을 시작했다. 이때 대열에서 따로 나와 창가에 섰던 여공 김경숙은 “경찰이 쳐들어 온다!”고 외마디 고함소리를 남긴 채 몸을 날렸다. 꽃다운 스물한 살 처녀의 결사항전이었다.
정옥은 모스크바에 와 보고서야 철통같았던 공산제국의 쇠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몸소 깨달은 순간 자신의 정체를 보다 뚜렷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갈 길이 어딘지 방향이 잡히는 것 같았다. 한시 바삐 서울로 돌아가서 제 갈 길을 가야되겠다고 다짐했다.
대성을 만난 후 정옥은 십자가를 목에서 풀어 들고 기도를 했다. 엄마가 남겨준 유일무이한 유물인 십자가, 그것은 모녀가 걸어온 형극의 길에 힘을 실어준 수호자였다. ‘엄마,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엄마와 나를 세상에 내동댕이친 그 잔혹한 비밀을 밝혀내고야 말겠어요. 엄마가 준 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오르는 듯 꾸준히 헤쳐나가겠어요.’
통증을 밖으로 토해내는 울음소리가 커지면서 정옥은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자신을 지탱해주던 자아 찾기 집념이 허물어지자 그녀의 몸을 받쳐주던 다리마저 힘이 풀려 버렸다. 카페트에 널브려진 그녀는 난생처음으로 통곡하며 몸부림쳤다.
조선 여인이 드나들 장소가 아니었다. 헌데 조선 여인, 그것도 저함경북도 부령 시골 여인 장또순이 엉겁결에 그 무서운 행선지로 가려고 왔다. 1860년대 초 굶어 죽을 바에야 낯선 곳이나마 가보자고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 포세트로 갔던 선조들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었다. 또순의 강제 이송은 그들의 러시아행과 달리 소련의 악랄한 강제노동수용소로 가기 위한 것이었다.
그동안 팽개쳐 두었던 하꼬방은 낡을 대로 낡아 있었다. 뿌옇게 먼지를 둘러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폐가였다. 그 모습에서 자신의 정체를 잃어버렸던 지난날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휴지로 먼지를 털어 내고 문손잡이를 돌렸다. 마루로 올라서서 실내를 둘러 봤다. 20년 전 떠났을 때 그대로였다. 단간 방에 조그만 옷장 하나 달랑 놓여 있었다.


추천사 4


소설가의 탐구 정신이 돋보인 작품_이영철(소설가, 한국소설가협회 부이사장)


작가의 말 7


아픈 현대사의 기록

프롤로그 15


1. 내 속옷을 들춰라 17
2. 하나꼬, 나타샤, 정옥 42
3. 고발 수기 발표 61
4. 좌절된 극적 만남 97
5. 정옥의 변신 129
6. 20년 만의 해후 159
7. 붉은 씨받이 음모 184
8. 블랙 마리아를 탄 조선 여인 231
9. 위기의 기자회견 284
10. 충격적인 사실 310


에필로그 326

참고문헌 332

정다운(본명 정대수)


진주고교, 경북대 사대, 서울대 신문대학원 석사(언론학), 성균관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언론학)
경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광주대 조교수, 서울대, 계명대 강사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독립지사 최재형기념사업회 홍보대사(2015~2019)
한국기자협회 부회장 및 기자협회10년사 편찬주간, 국제신문 정치부장, 대한일보, 코리아 타임즈 기자, 마당여론홍보연구소 대표, 해운대 장산포럼 대표, 해운대소식 신문 발행인, 유네스코 서울지식인선언 기초위원 대표

번역
『위철리가의 여인』, 로스 맥도날드(1978) 소설집 『낙엽 위에 서린 우수』(2014) 『동토의 탈주자들』(2017)
장편소설
『고서 사냥꾼, 광야를 달리다』(2020) 『평양 누아르』(2021) 『안개 여인, 그녀의 정체』(2021)

수상
제6회 직지소설문학상(2018)

저서
『신문원론』(공역) 『정치부 기자』 『선거와 홍보전략』 『미디어정치론』 『정치권력과 언론의 관계』 『동유럽의 변혁과 언론의 역할』 『선동가 노무현, 김대중 둥지에서 날다』 등

회사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출간문의 찾아오시는 길 사이트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