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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널며
라현자
시집
국판변형/136쪽
2021년 11월 25일
979-11-5860-991-7(03810)
10,000원

■ 시인의 말

시조집 갯메꽃을 묶고
그래도 채워지지도 비워지지도 않는
그 무엇인가를 갈망하다가
한 권의 시집을 상재합니다
가족을 비롯해 고마운 분이 많습니다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2021년 깊어가는 가을밤에
라현자



■ 본문 중에서


*생일 이별


당신의 생일이 오면
나는 하늘을 걷습니다
당신이 날아간 그 창공에
넋이라도 혼이라도 체취라도
스칠까 싶어서
당신의 생일이 오면
나는 날개옷을 짓습니다
서늘한 비석 앞에
성경책 한 권 세워놓고
당신이 그토록 좋아했던
에델바이스 닮은 보랏빛 향기들을
연기로 피워내며
자오록한 당신을 뵈옵니다
그 날이면 양수 범벅인 자궁 속 구석구석
헤집고 나온 당신을 밤새도록 분만합니다

그날만은
당신의 생일을 하염없이 경하합니다



*우렁각시


이런 날이면
우렁각시 생각이 간절하다
우렁각시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엄마 생각에 닿는다
휴일이든 명절이든 무슨 날이든
밤이 어찌되든
새벽이 어찌되든
흥청망청 마음의 나사들이 빠져서
캄캄한 밤을 하얗게 새며
식구들은 군기 빠진 채 밤을 새고 노는데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지쳐 곯아떨어질 때마다
서리가 사나워진 새벽 미명
군불 지펴 시원한 속풀이 국을 준비하시던
우렁각시가 엄마였음을…
속풀이 국 한 사발에 목 메이는 아침

그 우렁각시가 시리도록 그립다



*말만하면 시를 쓰라고?


뻐엉 하고 뻥튀기 튀겨지듯
시가 절로 나오는 줄 아나 봐
세상 시인은 할 게 못 된다고
어느 누가 그랬던가
어려서 할머니와 방을 같이 쓰며
밥상머리교육 대신 밤마다 옛날얘기로
성교육을 받고 컸다면
그걸 시로 한번 써보라고
씨도둑 못한다고 자식들에게
지 아버지하고 어쩜 그리
똑같냐고 하였더니
그것도 시로 한번 써보라고
시를 써보고나 하는 말인지
시가 뭔지나 알고 하는 말인지

에라 모르겠다
난 지금 내 앞에 술잔에 예의를 다할 뿐


■ 해설 중에서


겹눈으로 바라본 둥근 세상
-라현자 시인의 시집 『빨래를 널며』를 읽고

김부회(시인, 문학평론가, 수필가)


1. 들어가며

시를 쓴다는 것은 그 목적이 명확해야 한다. 시의 목적성을 말하는 것이 시를 쓰는 이유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이유를 말하는 것이다. 시를 쓰는 것은 세상을 보는 눈이며 자신만의 눈으로 시적 대상을 관찰하고 대상에서 얻어진 심상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삶을 반추하거나 성찰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 밖의 우주는 하나일 수 있지만, 삶 속의 우주는 저마다의 또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 대략 78억 인구가 사는 세상에는 78억 개의 우주가 존재하는 것이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분명 타인의 눈과는 다른 관점과 다른 느낌과 다른 감정이 있으며 동시에 공유하기도 하는 것이 세상이다. 풍경을 바라보는 각도의 다양성에 의해 대상은 평가되고 저울질 되는 것이기에 모두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또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는 말과 다른 말이 아닐 것이다. 어느 가을 저물녘 갓길에 차를 세우고 노을을 바라본다고 가정할 때, 그 노을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모두 같을 수도 있으며 또 다를 수도 있는 것이기에 세상은 평형과 개성을 동시에 포용하며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에 따라, 성별에 따라, 살아온 날의 학습효과에 경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느낌의 편차가 동일하지 않기에 삶의 무게는 반드시 다른 법이다.
시를 쓴다는 것이 그런 것이다. 같은 사물에 대한 같은 온도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온도를 느낀 그 무엇이 존재하기에 시적 질감이 다른 것이며 채색의 농담이 사람마다 다른 것이 글이며 시다. 종교를 가진 사람과 갖지 않은 사람이 느끼는 삶의 모습은 전혀 다를 수 있다. 이해와 배려심이 깊은 사람과 옹졸한 사람의 깊이는 다를 수 있기에 세상의 온도는 때론 차갑거나 때론 따듯하거나 양면성을 가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름을 다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인정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것을 인정할 때,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만들어지는 것이며 시에 대한 예의가 갖춰지는 것이다.

서두에서 시의 목적을 이야기했다. 목적성이 아니라 목적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시를 쓰다 보면 관성에 의해 시를 쓰는 경우가 가끔 발생한다. 중요한 것은 시는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선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보여주는 것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목적이다. 환원하면 솔직해야 한다는 말이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다는 것을 배경에 두고 시를 쓰면 시의 겉모습은 화려한 수사와 교언영색의 행간으로 치우칠 경향이 많다. 하지만 자신에게 보여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시를 쓰면 가장 솔직해진다. 그립다고 말하며 더 그리워질까 봐 그립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하지만 입 밖이 아닌 입속의 말로 그립다고 말하는 것은 백번, 천 번, 가능한 일이며 가장 솔직한 그리움에 대한 표기라고 생각한다. 솔직하게 언술한 작품은 타인과의 공감을 교류하기 쉽다.

시인의 말   2


1부. 저버림에 대하여


10 비밀에 대하여
12 죽음이 반가운 이유
14 오렌지 사건
16 아무 일도 없는 듯
18 생일 이별
19 다 그년, 그놈인 세상
20 이 남자가 사는 법
22 우렁각시
23 지갑으로 낳은 자식
24 쉰셋
25 세상의 딸들이 흘러내렸다
26 아리송한 쇼
28 비밀번호
30 아버지가 보고 싶다
31 저버림에 대하여
32 어쨌든
34 ‘ㅎ’과 ‘ㅇ’



2부. 너를 가두다


36 잔치국수 먹는 날
38 딸을 기다리며
40 가신 그 후 이 가슴엔
41 짝사랑에 대하여
42 중독
44 말만하면 시를 쓰라고?
45 악역
46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48 경력자
50 애인 1
52 수양버들을 보면서
54 홀로 고독하던 날
55 열녀와 악처 사이
56 위험한 선택
58 너를 가두다
60 세상에 공짜는 없다 1
62 어제는 그런 날



3부. 아름다운 기도


64 사건의 전말
66 미치다
68 당신을 그리다가
69 능이의 전설
70 추어탕 집에서
72 선돌 앞에서
73 꿈꾸는 사람들
74 그렇게 살자
75 유전의 법칙
76 양다리
77 술, 술 나오는 시
78 세상에 공짜는 없다 2
79 인생이 그런 것을
80 대비마마만 왜 몰라?
82 아름다운 기도
83 성님
84 고향 떠나던 날



4부. 귀를 세울 때


88 뒤꼭지에게 진 뒷담화
90 평범이라는 거
91 유월의 밤
92 다른 사랑
93 상원사 가는 길
94 그 남자 집에는 상어가 산다
96 감자의 그것
98 빨래를 널며
100 연두가 좋다
101 몸살
102 시간과 환경
103 귀를 세울 때
104 책망하지 말아요
105 담보
106 버려짐에 대하여
107 너의 비명
108 용서

112 평설_겹눈으로 바라본 둥근 세상_김부회(시인, 문학평론가, 수필가)

라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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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빨래를 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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