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말
나의 정서를 키워준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사해 광화문 교보문고를 찾을 때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글귀를 읽으며 늘 고개를 끄덕인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수많은 글은 오늘날의 나를 만드는 데 분명 일조하였다는 생각에서다. 시간만 나면 도서실로 달려가 책꽂이에서 책을 꺼내 읽었고 용돈이 생기면 서점을 찾아서 읽고 싶어 눈으로 찜해두었던 책을 아낌없이 사서 나왔다. 그렇게 책은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강원도 동해시의 조그마한 시골 마을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것은 글을 쓰는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주변에 늘 나무와 꽃이 있었고 조금만 걸어가면 드넓은 바다가 일렁이는 해수욕장이 있었다. 언니, 오빠, 때로는 친구와 손잡고 온 동네와 바닷가를 쏘다녔다. 사철 내내 돌아가면서 이름 모를 꽃들이 피고 졌고 풀밭에는 온갖 곤충들이 폴짝거렸다. 단풍이 물든 산은 황홀하게 아름다웠고 겨울에 눈이 내리면 집 앞 언덕이 놀이터가 되었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작은 내 마음을 넓게 키워주었다. 이처럼 자연은 나를 이끌어주는 스승이었고 글쓰기의 원동력이 된 보고(寶庫)였다. 덕분에 나는 사계절의 변화무쌍함을 느끼며 감수성 많은 소녀로 자라났다. 아버지가 우리 7남매 모두에게 매일 일기를 쓰게 하신 것 역시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른 형제들은 일기 쓰는 것이 고역이었으나 나에게는 자연스럽게 글쓰기를 두렵지 않게 만들어준 최고의 과외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꽤 오랜 기간 사춘기 앓이로 방황했다. 이후 고등학교 2학년 무렵, <농민신문>에서 공모한 ‘가족 이야기’에 아버지의 부재를 그립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쓴 수필 「농부의 얼굴」이 당선되는 영광을 안았다. 어머니는 내 글이 실린 신문을 들고 다니시며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하셨다. 그때 보았던 어머니의 환한 미소는 이후 내가 글을 쓰게 되는 또 하나의 동기를 만들어주었다. 뒤돌아보니 삶은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어려움과 우여곡절을 겪으며 세월의 풍파 속에서 나의 내면은 피폐해졌다. 늘 글을 쓰고 싶은 갈망에 목말랐으나 글을 쓸 기회는 점점 더 사라지고 있었다. 학원을 운영하고 식당을 경영하는 짬짬이 어느 귀퉁이든 앉아 노트에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글을 쓰는 순간 고단한 나의 생활이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2017년 첫 번째 장편소설 『하얀 민들레』를 펴내 무원문학예술상 대상을 수상하면서 용기를 조금 얻었다. 그리고 2019년 그동안 썼던 글들을 『묵호댁』으로 묶어냈고 2013년에는 장편소설 『두메꽃』을 출간했다. 부끄럽지만 이 작품으로 세계문학상과 올해의 작가상을 받았다. 세 작품의 무대가 강원도를 배경으로 한 것이 많아서인지 어느새 나에게는 강원도 작가라는 타이틀이 따라붙었다. 물론 지금은 고향 묵호를 떠나 인천 영종에서 살고 있으나 뼛속 깊이 망상과 묵호의 정서와 감성을 안고 살아가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강원도에서 들려오는 이런저런 가슴 아픈 소식이나 기쁜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남달리 가슴이 뭉클해지는 신체적 변화를 겪는다. 앞으로도 고향 사람들의 진한 삶의 모습과 애틋한 정서를 써 내려갈 것을 약속드린다. 이번에 표지가 새롭게 단장된 『묵호댁』을 내면서 나 역시 감회가 남다르다. 그동안 사랑으로 용기를 다져준 가족들과 지인들, 그리고 청어출판사 대표님과 편집부 선생님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모쪼록 『묵호댁』의 어느 한 구절이나마 누군가에게 잠시만이라도 삶의 위로가 되는 소설이 되었으면 좋겠다.
2023년 8월 전정희
■ 본문 중에서
그래도 남편의 그늘에서 살 때가 참 행복했던 시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묵호댁은 고단한 몸을 무덤에 기대었다. 멀리 산 아래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묵호댁 눈에 고스란히 들어왔다. 묵호댁은 눈을 감았다. 아련했던 그 옛날, 행복했던 한때가 묵호댁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묵호댁' 중에서 얼마나 기다려왔던 순간인가? 화려한 날개를 활짝 펼치고 원 없이 드넓은 하늘을 날아올라 너울거리며 춤추고 싶었다. 훌쩍 뛰어올라 눈부신 태양을 향해 힘차게 날갯짓을 하려던 그 순간 섬광이 번쩍였다. 우레와 같은 천둥, 빗발치는 소낙비가 사납게 쏟아졌다. 날아올라 허공을 맴돌 사이도 없이 무참히 날개가 꺾이어 추락하고 만 것이다. ‘이게 아니었는데, 정말 이런 게 아니었어.’ -'평정 찾기' 중에서 오늘따라 두꺼운 가면을 뒤집어쓰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데 한층 익숙해진 아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녀가 가면을 뒤집어쓰는 것에 더욱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무너지기 직전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보호본능처럼 가면을 뒤집어쓴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가면을 쓰고 자신을 대하는 게 오히려 감정을 더 알기 쉽다는 걸 모르는 걸까? 아니면 그런 걸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는 뜻일까? -'의심' 중에서
사실 나는 백합꽃봉오리와 잎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칼처럼 자라난 잎 사이에서 무언가 혹 같고 뭉친 근육 같은 것이 부풀어 오른다 싶으면 그것에서 꽃이 피어났다. 백합의 꽃봉오리는 꽃봉오리라기보다는 오히려 기형적인 잎 같았다. 나는 뒤틀린 것 같은 꽃봉오리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난다는 것이 못내 신기하고 좋았다. 혹처럼 솟아난 꽃봉오리가 점점 벌어져 풍선처럼 터질 때까지 자꾸자꾸 들여다보았다. 꽃이 피어나는 동안 꽃봉오리는 아프지 않을까? 그러나 기다리다 보면 어김없이 커다란 혹에서 꽃이 터지듯 피어나오곤 했었다. -'설화' 중에서 이제는 백지처럼 투명해졌다고 자신했었다. 그렇게 자신했던 믿음이 깨진 쪽박처럼 흉측하고 처참하게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그것은 표백하듯 덧입힌 한쪽 모서리에 얄밉게 박혀서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아 죽은 듯 웅크리고 앉아있었을 뿐이었다. 그의 믿음을, 자만을 통쾌하게 비웃으면서 말이다. -'유리병 하얀 새'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