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의 말
나는 지방에서 활동하는 촌년, C급 작가다. 그래서 촌이야기를 촌말로 썼다. 무릎을 꿇어야 잘 보이는 채송화 같은, 낮은 이야기가 쓰고 싶었다. 내가 아니면 쓸 수 없다는 자만이 여간 과하다. 쓰레기 양산 안 하려고, 20년간 준비해 첫 책을 낸다. 2023년 8월 염천 경주 자옥산
■ 본문 중에서 도덕산(道德山)이 붉다. 산 이름에 ‘도덕’이 들어가는 건 경상도 지방의 완고한 유교문화 까닭일 것이다. 도덕이란 인륜의 바탕이며, 마땅히 지킬 도리로 규범되었다. 특히 여성에게만 강요되던 부도덕의 질책은 견고하고 잔인했다. 활활한 산등성이를 달래듯 소나무들이 군데군데 다독이지만, 가을은 날이 갈수록 제 몸에 겹다. 하루를 여는 아낙들의 첫 두레박질은 조신스러웠다. 새벽 어스름 빛을 더듬어가며 밤새 흐트러진 쪽머리를 참빗으로 빗어 비녀를 꽂은 후 문지방을 넘었다. 다른 식구들이 깰세라 살며시 내디딘 걸음으로 소리 없이 두레박을 내렸다. 집에 일하는 이가 있어도 이 일은 주로 안주인 몫이었다. 마치 유치가 돋는 잇몸처럼 구겨 앉은 팔다리가 근질거리고, 마당을 넘어오는 새소리에도 가슴 속에 이랑이 일고, 추녀에서 댓돌 아래 구르는 빗방울 소리도 가슴을 적신다. 한숨이 자주 터지고, 본 적도 없는 어머니 얼굴을 새겨보느라 자주 사진첩을 열었다. 색이 누런 단 한 장뿐인 결혼사진 속 새끼손톱보다 작게 희미한 윤곽의 여인은 아무리 보아도 낯설다. 그 낯설음은 늘 상금 스스로 천애의 고아임을 재확인한다. 누가 몰래 뚫은 듯 가슴에는 맞바람이 지나간다.
몸을 섞진 않았지만 혼례를 올려 엄연히 남편의 자리에 있었건만 자신은 매사 너무나 소극적이었다. 낯선 시집살이에서 연이가 느낄 고충을 알면서도 짐짓 못 본 척 외면했다. 비겁함에 관한 호야의 자책은 잘 벼른 송곳처럼 깊이 아팠다. 농악대 악기 중 가장 큰 울림을 내는 징은 혼자서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누군가 그 숨은 징채를 빼앗아 치면, 번쩍번쩍 동네방네 소문으로 퍼져나가고, 상금은 일생 불행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대보름 밤 달빛 아래, 어느 가여운 달꽃 비밀 하나를 위해 갑산댁은 이튿날부터 장독 위에 아침저녁 정화수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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