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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바람에 무너지다
최종암
소설
신국판/352쪽
2019년 05월 20일
979-11-5860-647-3(03810)
13,000원

서문

 

문화재청은 공주 공산성에 대한 ‘2014년 제7차 발굴조사’에서 백제시대 완전한 형태를 갖춘 대형 목곽고와 당시 저수지에 수장된 화살촉, 철모, 갑옷과 칼, 창, 마면주, 마탁, 깃대와 깃대꽂이 등 다량의 전쟁 도구들이 발견돼 백제 멸망 당시 나당 연합군과의 치열한 전쟁 상황이 추론된다고 밝혔다. 또한 저수지에서는 수상한 두개골 한 구가 추가로 발견되었는데, 학계는 그 두개골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목이 잘려 수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그 두개골, 양 옆이 심하게 깨져 있었던 그 두개골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였을까.

지난 2008년부터 문화재청이 공주 공산성에 대한 발굴을 시작한 이래 수많은 유물과 유적이 발견됐다. 위의 내용처럼 신문은 그때마다 당시의 문화와 역사를 기록하듯 기사화했다. 그 중 작가는 지난 2014년 9월 24일 각 언론매체에 일제히 보도된 위의 내용에 주목했다. 그리고 백제 멸망시기, 그러니까 서기 660년 7월 10일 계백이 황산벌에서 김유신에게 패배를 하고 난 뒤의 역사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매우 흥미로운 내용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의자는 계백이 패하고 3일 뒤인 서기 660년 7월 13일 밤, 당시 웅진성(현 공주 공산성)으로 파천 내지는 피신을 한다. 그리고 5일 후인 18일 석연치 않은 항복을 하고 만다. 혹시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는 계백의 황산벌 전투 이후의 일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황산벌 전투 이후 의자는 곧바로 항복을 하고 백제는 패망한 것으로만 알고 있다.
작가가 뒤져본 자료를 보면 의자는 황산벌 전투 이후 사비성 남쪽으로 군사를 보내 나당연합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의자는 그 전투에서마저 패하자 웅진성으로 피신해 지방군을 기다린다. 당시 중앙군보다도 훨씬 큰 세력이었던 지방군이 합세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의자가 단 며칠 만에 맥없이 항복을 한다. 당시 지방의 귀족 및 성주들은 일부나마 의자와의 합세를 위해 움직이고 있었고, 나당연합군이 웅진성을 강제로 함락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계백이 황산벌 전투를 치르고 의자가 공산성에서 항복하기까지 8일 동안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야기는 당시의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개연적 상상을 한 것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가공의 인물은 주석에 따로 표기를 했다. 이야기의 주인공도 가공된 인물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당시 목이 잘려 저수지에 수장된 두개골이다. 작가는 이제부터 그 두개골의 주인공을 ‘국담’이라고 명명하고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계백의 패전

 

서기 660년 7월 9일, 황산벌에 잠자리들이 낮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의자는 당나라 군대가 신라군 없이는 섣불리 싸우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계백을 급파했다. 5천의 결사대를 이끌던 계백은 적당한 성을 보루로 신라군의 진격을 지연시키려 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백제에게 유리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의자는 친고구려 반당노선을 선택했기 때문에 버티면 고구려의 원병이 곧 도착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의자의 패착이었다. 나당연합군은 공성전을 택하지 않고 우회하려 했다. 중간의 방어성들을 무시한 채 곧바로 사비성을 치겠다는 작전이었다.
―적군이 많이 모여 있는 거점 성(城)을 점령한 후 주변을 평정하며 목표지점으로 차근차근 진군한다.
나당연합군은 당시의 이런 보편적인 전술과 전투의 기본 틀을 깨버렸다. 목표는 영토 확장이 아니라 나라를 통째로 먹는, 즉 백제의 멸망이었기 때문이다. 신라군은 백제 땅 중간 중간에 있는 성들을 과감히 포기하고 진격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이 전술은 지극히 위험천만했다. 후방에 적을 남겨두고 한 나라의 심장부로 들어갔다가 포위라도 당하게 되면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유신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당의 대군을 믿고 무리수를 두었다. 다급해진 계백은 성을 포기하고 황산벌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성충의 말대로 탄현에 진을 치고 신라군을 기다렸다면 중과부적의 전투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성충은 죽기 전 의자에게 이렇게 간언했다.
―충신은 죽어도 임금을 잊지 않는 것이니 한 마디만 하고 죽겠습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 나당 연합군과의 전쟁은 피할 수 없습니다. 당군은 숫자가 많을 뿐만 아니라 군율이 엄하고 분명합니다. 당군은 신라군과 함께 우리의 앞뒤를 견제하고 있으니 평탄하고 넓은 들판에서 마주칠 경우 적은 군사로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무릇 전쟁에서는 지형을 잘 선택해야 하는데 백강과 탄현은 적을 방어하기에 가장 적합한 요충지입니다. 그곳에서 적을 방어한다면 한 명의 군사가 한 자루의 창만으로 수백의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충과 흥수를 싫어하던 백제의 신하들은 의자에게 이렇게 고해 올렸다.
―성충과 흥수는 오랫동안 옥중에 있어 형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옥에 갇혀 어라하(於羅瑕)와 나라를 원망했을 것입니다. 그런 자들의 말을 믿을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나당연합군에 백강과 탄현을 내주십시오. 백강으로 들어온 당나라 군사들은 강의 흐름에 따라 배를 나란히 하지 못할 것이고, 탄현을 넘은 신라군은 평지가 아닌 좁은 길로 들어설 것입니다. 이때 군사를 풀어 일제히 공격한다면 닭장 속의 닭이나 그물에 걸린 고기를 잡는 것과 같이 수월하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서문

 

제1부. 파천


계백의 패전
국담
결사항전
파천

 

제2부. 수성


웅진성
역모
흥망계절의 정신
전쟁의식

 

제3부. 배신


소정방의 회유
운명의 장난
최후의 결전
백제의 한

최종암

 

1965년 강원도 양구 출생. 유년 시절을 충청북도 가덕면 ‘머리울’이라는 두메산골에서 보내며, 널브러진 자연을 통해 상상력을 키워왔다. 그때의 상상력은 기억의 저장고에 남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유용한 재료가 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30여 년간 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은 충청권을 대표하는 일간신문사에서 근무를 하며 틈틈이 소설을 쓰고 있다. ‘저출산 고령사회 복지행정’으로 충북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관련 서적과 논문도 꾸준히 쓰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내 인생은 기사 쓰고, 소설 쓰고, 논문 쓰는 ‘글쟁이 인생’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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