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숨비의 환생』은 다섯 번째 작품집이다. 그러니까 작가의 말도 다섯 번째로 쓰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책을 출간하려 할 때마다 늘 망설여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의 창작 동기와 소설에 담은 메시지가 독자들께 제대로 전달될지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가슴을 뛰게 하는 창작에 대한 희열이 있을망정, 삶의 감동이 담긴 수작을 쓰겠다거나, 독자의 반응을 전제하지는 않는다. 매번 내면에서 저절로 분출하는, 그래서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간절함에 응답하는 심정으로 펜을 들곤 한다. 이 장편소설도 그렇게 시작하고 맺었다.
장편 『숨비의 환생』은 처음부터 연작으로 구상했다. 4부로 나눈 장마다 화자를 달리했다. 제1부는 4·3사건의 희생자 가족인 제주 토박이 할머니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끌어간다. 제2부는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자 딸이 화자가 된다. 제3부는 권력으로 국민을 겁박하는 가해자 아들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마지막 제4부에서는 세월호 사고로 딸을 잃은 부모가 화자가 된다. 그렇게 각 장마다 다른 화자들이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세상을 비판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 소설을 쓰던 때에 회자되던 말이 ‘이것이 나라냐’였다. 지금까지 국가가 국민에게 어떻게 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수많은 사건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했다. 그 많은 고난 속에서도 국민은 참으로 오랫동안 견디어 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겪어낸 삶의 고난과 갈등에 초점이 맞춰졌다.
“용서란 단순히 있었던 일을 없는 것처럼 덮는다거나, 피해자가 아픔을 간직한 채 힘겹게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세간의 오해와 달리 용서는 부당한 행위에 대한 기억과 비판, 분노를 전제한다. 정의롭지 않은 일이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생각하고 정의를 세우기 위한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강남순 『용서에 대하여』에서)
그런데 저들은 세월호 참사를 일개 교통사고라며 이제 그만 잊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국가폭력에 대해 유족들은 아직 비판도 분노도 다 표출하지도 못했는데 덮어버리라고 윽박지른다. 원인을 파헤치고 정의를 세우려하는데 이제 그만 모두 잊으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하나도 거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가해자 국가를 피해자 국민이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성찰적 분노 없이 어찌 화해를 꺼낼 수 있는가.
“처참한 모습으로 떠오른 선체를 차마 마주보지 못한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인 것만 같아서다. 좀 더 일찍 정신을 차리고, 눈을 부릅뜨고 세상을 살펴야 했다. 그러지 못해서 우리는 지금 많은 불행을 겪고 있다. 어머니가 겪은 4·3사건, 내가 겪은 세월호 참사, 그리고 아이의 엄마가 당한 가습기살균제 사건들이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되풀이되는 국가권력의 횡포는 깨어 있는 국민만이 막을 수 있다. 그래야 내일의 세상은 진실이 힘을 얻는 사회로 바로 설 것이다.”(본문 중에서)
제4부를 끌어가는 화자, 미소의 아버지 오진국은 처절하게 반성한다. 이렇게 깨어있는 국민만이 건강하고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건강한 국가 사회를 이룰 것이라는 희망을 공유하고 싶다.
소설에 묻힐 때마다, 그 소설책을 낼 때마다 항상 힘을 보태주는 油然 님이 고맙다. 그리고 내 삶의 울타리가 되어 주는 아들 내외, 사랑스러운 손주들 璘·多·朗도 바르게 자라주어 고맙다. 좋은 책으로 엮어주신 ‘청어출판사’ 이영철 대표님과 편집진에게도, 아울러 소설집을 낼 수 있도록 마중물을 부어준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에도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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