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풀씨 바람에 떠돌다 떠돌다 내려앉은 자리 싹을 틔워 세상을 열어 비바람 함께 꽃이 되었습니다. 가끔 쳐다봐 주는 사람 있어 꽃은 이름을 달았습니다.
오늘 어쩌다 마주친 그대의 소중한 마음자리에도 살짝 머물다 가는 행운을 소망해 봅니다.
오래 전 삶의 화두로 다가온 시 한 편 그 의문이 시심되어 작은 묶음으로 이제 풀어놓습니다.
2019년 여름 김정희
--
숯가마에서
메아리도 잠을 자는 골짜기 세월을 온몸으로 털어내는 굴참나무 바라보니 내 찾아야 할 가슴에 말은 길을 잃는다
나는 보았다 쭉쭉 뻗어 키워 온 사랑 푸른 하늘 가슴에 안고 겹겹이 쌓인 세월의 아픔도 한낱 욕망이었음을
굴뚝을 타고 도는 연갈색 연기는 물결무늬를 그리며 숯으로 익어가는 그대의 삶을 위하여 춤을 추는데 묵언의 회한 같은 세월을 안고 너는 심홍의 꽃으로 뜨겁게 뜨겁게 죽는다
-
하얀 고무신
창가에 놓여있는 잎 떨어진 영산홍 분(盆)에 기대어 물기를 말리는 하얀 고무신 지난 여름 비 맞으며 아버지 꽃상여 뒤를 따라갔던 코 없는 고무신 가고 없는 세월이 하얗게 담겨 있다
삼간 집 마루 밑 대들보 받쳐주던 기둥에 기댄 채 하얗게 기다리던 십문 팔 그 웃음 한 뼘도 안 되는 흙발에 끌려 다니며 눈물처럼 깔깔대고 환희처럼 칭얼대던 그날의 그 논둑길 자꾸 눈에 고인다
|